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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씨름선수들은 왜 모래판을 떠났을까?

테슬라의 사례가 시사하는 1인기업의 상대가치 (당신의 상대가치#4)

기원전 바퀴의 발명은 인류의 생활양식을 바꿔놓았습니다. 이후, 마차, 증기기관 등의 운송수단을 거쳐 1880년대에 독일의 카를 벤츠는 세계 최초로 가솔린 내연기관이 달린 가솔린 자동차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이후, 20세기에 접어들어 자동차 왕 헨리 포드에 의해 고안된 대량생산 컨베이어 시스템은 당시 자동차의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춤으로써, 자동차의 대중화를 촉발해 이제는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공산품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자동차 산업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는 규모의 경제가 요구되는 산업이기 때문에 높은 진입장벽을 가진 과점 시장입니다. 일본, 미국, 유럽 및 한국이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양상이며 최근에는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즉 자동차 산업은 성숙기에 접어들었고, 누구도 더 이상 자동차 업계에 새로운 업체 및 파괴적인 신제품 (마치 첫 가솔린 자동차의 출현이 마차를 붕괴시킨 것 같은)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실리콘 밸리에 기반을 둔 작은 스타트업이 자동차 산업의 판도를 흔들기 시작합니다. 이 스타트업은 기존 가솔린 내연기관 자동차가 아닌 전기 배터리로 작동하는 자동차를 선보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데 이 기업이 오늘날 유명한 테슬라입니다. 사실 그 이전에도 기존 자동차 업체들은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차등의 친환경차를 선보이기도 했지만 디자인이 다소 투박하여 전기차는 정보 보조금을 받기 위한 차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프리미엄 스포츠카 시장을 겨냥한 테슬라의 전기차는 매끄러운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고 2008년 테슬라 로드스터 (스포츠카) 출시 이후, 세단, SUV로 저변을 넓히며 자동차 업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2010년 CEO 엘론 머스크는 테슬라를 미국 나스닥에 상장시켰는데, 눈여겨볼 점은 테슬라가 1956년 포드 자동차가 상장된 이후 유일하게 상장된 미국 자동차 회사라고 합니다.


테슬라 Model S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출처: Micro batt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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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상장 당시 17불에 불과하던 테슬라의 주가는 2015년 말 기준, 240불에 육박하니 14배나 오른 셈입니다. 당시 전기차 및 테슬라의 잠재력에 투자한 투자자라면 엄청난 수익을 거뒀을 테죠. 흥미로운 점은 지난 6년간 테슬라의 실적을 보면 연간 기준으로 한 차례도 수익을 낸 적이 없으며 2015년 들어서는 오히려 적자폭이 커졌다는 점입니다. 아직 회사의 규모가 크지 않다 보니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해 예상외로 R&D, 감가상각비, 원재료 비용 (전기 배터리 등)등의 지출이 높아 적자폭이 커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만, 주가는 의외로 폭발적인 성장을 했습니다.


한편, 전통의 자동차 회사 현대자동차의 경우 같은 기간 견조한 실적을 이어가며 안정적인 실적 흐름을 보여줬습니다만, 주가는 테슬라 대비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입니다. 결국 2015년 말 기준 테슬라의 주식시장에서의 시가총액은 36조로 현대차의 33조보다 높은 수준이며, 현재는 자동차 업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기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테슬라 (좌) 와 현대차 (우) 의 상반된 주가흐름 (출처: Yahoo Fin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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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현대차와는 달리 꾸준히 적자를 내는 테슬라 (출처: 회사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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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주식의 시가총액은 테슬라가 현대차를 앞지름 (출처: Yahoo Finance)

Tesla vs. HMC (Share price).bmp



앞에서 다룬 절대가치의 개념을 잘 숙지하신 분들은 이러한 현상을 두고 의아한 생각이 드셔야 합니다. 절대가치만 놓고 보면 현대차 와 테슬라는 골리앗과 다윗입니다. 매출 규모, 자동차 판매대수, 수익 등 모든 절대가치를 측정하는 지표들에 있어서 현대차는 테슬라를 압도합니다. 하지만 왜, 이 작은 신생회사에 불과한 테슬라의 주가는 폭발적으로 상승했으며 (심지어 적자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국에는 주식시장에서 현대차보다 더 큰 영향력 (시가 총액 기준)을 가지게 된 것일까요?


정답은 바로 상대가치, 그중에서도 특히 성장성에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이 20세기 초에 포드의 대량생산 시스템에 힙입어 일반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할 때만 해도 자동차 산업은 블루오션이었습니다. 기존의 운송수단인 마차를 대체하면서 미국을 거쳐, 유럽, 아시아, 남미 등 전 세계로 뻗어가며 자동차 산업은 실로 고도성장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6.25 전쟁 이후, 나라가 본격적으로 성장기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의 경제생활수준이 나아지고, 과거에는 비싸서 구매 엄두를 못 냈던 자동차를 하나둘씩 구매하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한 가정에 복 수의 차량이 있는 경우도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여타 선진국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며, 신흥 시장에서도 점차 보급률이 높아져 자동차 산업에서 커다란 성장을 기대하기는 힘든 실정입니다. 마찬가지로 현대차의 경우도 자동차 산업의 전반적인 호/불황기의 사이클을 겪으며 해외시장에서 합리적인 가격 및 품질을 인정받아 지금은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만, 앞으로 과거만큼의 성장을 기대하기는 힘든 상태입니다. 실제로 2010년 이후 현대차의 매출 성장을 연간 성장률로 환산하면약 7%로 세계 GDP 성장률을 조금 웃도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테슬라의 경우는 기존 자동차 경쟁업체와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애초에 기존 가솔린 내연기관 자동차가 아닌 전기차 시장을 타깃으로 한 테슬라는 디트로이트가 아닌 실리콘 팰리에 둥지를 틀며 흡사 IT회사와 같은 면모를 보입니다. 비록 지속적으로 적자를 내기는 했지만, 테슬라의 상장 이후 연간 성장률을 환산하면, 약 103%로 매년 두 배씩 규모가 커진 셈으로 성장성은 전통적인 자동차 시장을 압도합니다. 전기차 시장은 차량 판매 대수 기준, 여전히 전체 자동차 시장의 1% 미만의 지극히 미미한 수준이지만, 매년 꾸준한 성장을 하고 있는 시장입니다. 특히나 2015년 9월 폭스바겐 디젤 차량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이 터지면서 전기차와 같은 친환경 차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상황인 동시에 테슬라에 대한 성장성에 기대가 모아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테슬라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은 테슬라의 현재 절대가치보다는 향후 성장성에 주목하여 투자를 한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적자를 내지만, 향후에 본격적으로 전기차 시대가 개화되어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게 되면 테슬라가 막대한 절대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말이죠.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전기차 (Electric Vehicle) 시장 (출처: Bloomberg New Energy Finance, Marklines)

EV growth (Bloomberg New Energy Finance, Marklines).jpg


이제는 왜 주식시장에서 현재 현대차 대비 절대가치가 현격히 낮은 테슬라의 주식 가치가 현대차보다 큰 지 이해가 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투자자들은 테슬라가 적자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기차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고 있기 때문에 뛰어난 성장성을 보일 것으로 기대하며 높은 상대가치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일반적으로 성장성이 높은 산업 및 기업은 상대가치를 높게 가지기 마련입니다. 통상적으로 IT, 헬스케어 등의 산업군에 속한 성장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되는 기업들이 성숙도가 높고 저성장이 예상되는 산업군 (음식료, 섬유, 가전제품 등)에 속한 기업들보다 비싸게 (절대가치는 낮지만 상대가치가 높아 주가가 높게 거래되는 현상) 거래되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저는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성장성이 높은 분야에 있는 사람의 주가는 동일한 절대가치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하에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높을 가능성이 큽니다. 예를 들어, 똑같이 어떤 분야의 1등이라 하더라도, 성장성이 높은 분야에 있는 사람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솟을 수 있는 반면, 성장성이 낮은 혹은 사양길에 접어든 분야에 있는 1등의 주가는 그에 못 미치거나 별 볼일 없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러한 점은, 향후 진로, 사업 및 인생 설계 등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일반적인 경우 어떤 일을 하더라도 기왕이면 상대가치가 높은 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죠. 하지만 지금은 성장성이 높아 보이고 상대가치가 높아 보이는 분야가 10년 후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며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어떤 분야가 유먕하며 높은 상대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를 내다보는 혜안이 필요할 것입니다.


만약 본인이 현재 주력하고 있는 분야의 상대가치가 본인의 절대가치 대비 낮으며 앞으로도 낮다고 생각할 경우, 다른 분야로의 전향을 고민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겠죠. 한 때 테크노 골리앗으로 불리며 씨름 천하장사 타이틀을 거머쥔 최홍만 선수가 K-1 이종격투기 선수로 전향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입니다. 1980년대만 해도 씨름은 전 국민이 오손도손 TV 앞에 앉아 시청하던 국민 스포츠였습니다. 당시 천하장사였던 이만기 강호동 같은 스타들은 최고의 인기를 누렸으며 천하장사에게는 적지 않은 상금이 부여됐었습니다.

씨름판 테크노 골리앗으로 불리던 최홍만 선수 (출처: 동아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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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국이 1997년 IMF를 겪으며 급격히 경제가 위축됐고, 끊임없는 씨름 업계의 내부분규는 밥그릇 싸움으로 비판받았으며, 급기야 2000년대 초부터는 프로씨름선수단이 점차 공중분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2004년 12월에 당시 3개 프로 씨름단 가운데 하나였던 LG 투자증권 씨름단이 팀을 해체한 직후, 팀의 간판스타였던 최홍만 선수는 K-1으로의 진출을 선언합니다. 최홍만의 K-1 진출 선언 이후, 김영현, 이태현 같은 프로 씨름 주요 선수들이 연이어 씨름 업계를 이탈하여 이종격투기 선수로 탈바꿈합니다.


K-1 이종격투기로 전향한 최홍만 선수 (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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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줄줄이 프로 씨름선수단이 해체되는 것을 지켜보며 이미 침체기를 겪고 있는 씨름 업계에서 (낮은 상대가치) 아무리 좋은 성적을 (높은 절대가치) 내봐야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절대가치와 상대가치에 따른 주가의 관점에서 본다면, 씨름 업계의 침체로 인해 유망했던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성장성이 높아 보이는 (높은 상대가치의) K-1 이종격투기로 전향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며 그들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개인의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그에 걸맞은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구조라면, 깊은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씨름의 침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고 현재는 다른 스포츠 대비 비인기 종목이 된 것이 사실입니다만, 어느 모래판 위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을 하고 있을 씨름 꿈나무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씨름 산업의 발전 및 부흥을 진심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이처럼 만약 당신이 지금 속한 조직 혹은 산업이 정말 비전이 없어보인다면 진지하게 탈출을 고민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당신이 아무리 해당 분야의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높은 절대가치) 성장성이 없는 쪽에 있다면 당신의 상대가치 및 주가는 낮을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네가 열심히 노력해서 실력을 인정 받는다면 (높은 절대가치), 저 1등칸에 가서 많은 것들을 향유할 수 있다고. 하지만 명심하세요. 성장성이 없고 비전이 없는 조직 및 산업은 침몰하는 배와 같습니다. 영화 타이타닉을 보신분들은 알겠지만 배가 침몰 했을 때 1등칸이나 2,3등칸이나 상관없이 대부분의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물고기밥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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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상대가치에 관하여 https://brunch.co.kr/@finance102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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