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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Jun 12. 2019

블록체인 식민지의 미래

#6-6 블록체인 - 디지털 제국주의 2.0

블록체인 식민지의 미래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인터넷이 제국과 식민지 간의 역학 관계를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제국은 군사적으로 식민지를 정복해 노동력과 자원을 수탈했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에 디지털 제국은 식민지에 기업을 세우고 현지에서 고용한 엘리트로 하여금 데이터를 수집하도록 지시한다. 21세기 원유로 불리는 데이터는 고스란히 디지털 제국의 본거지로 귀속된다. 디지털 식민지에 본사가 있는 현지 기업은 경쟁에서 밀려 도산하거나 디지털 제국이 빅데이터를 빨아들이는 것을 보조적으로 돕는 하청업체로 전락한다.


인터넷이 지난 20년간 미디어 산업을 어떻게 붕괴시켰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좋은 참고가 될 것 같다. 인터넷 기업은 신문사가 차지하고 있던 광고 시장을 잠식하며 미디어를 자사의 플랫폼에 종속시키는 데 성공했다. 유튜브는 TV 방송사의 파이를 갉아먹으며 지구 상에서 가장 강력한 동영상 매체로 거듭났다. 사람들은 더 이상 신문을 읽거나 TV를 보지 않고 인터넷으로 콘텐츠를 소비한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미디어는 더 이상 예전만큼 광고 수익을 내지 못하고 인터넷 기업이 빅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을 돕는 보조적인 역할만 할 뿐이다.


인터넷으로 인해 미디어 산업이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에 종속됐듯이, 블록체인은 금융 산업을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에 귀속시킬 여지가 있다. 현재 금융 산업이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하는 방식은 단지 홍보용 목적으로 유튜브나 페이스북 계정을 생성해 구독자 및 조회수를 늘리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향후에는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이 직접 은행 역할을 수행하면서 현지 은행과의 경쟁이 격화될 수 있다. 또한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이 금융 상품 마켓 플레이스 기능을 하게 됨에 따라 (모바일 앱 스토어가 게임, SNS, 음악뿐 아니라 금융상품을 취급한다고 상상해보자) 현지 금융 기업이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에 막대한 수수료를 내는 하청 기업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자율주행 기술이 발전하면 이런 시나리오도 가능해질 수 있다. 우리는 수년 안에 로보 택시 (무인 자율주행 택시)가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목격할 것이다. 자율주행 OS를 담당하는 글로벌 플랫폼은 미국 기업이 과점할 가능성이 높은데 현재로서는 구글, 우버, 테슬라가 유력해 보인다. 물론 중국은 바이두, 디디추싱을 필두로 독자적인 자율주행차 생태계를 구축할 것이다.


이때, 다음과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고 상상해보자. 소비자는 로보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간 뒤 하차한다. 소비지가 설정한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 계좌에서 출금된 돈은 곧바로 자율주행차 글로벌 플랫폼에게로 입금된다. 연료가 부족해진 로보 택시는 인근 주유소나 전기차 충전소로 향한다. 연료 충전을 마친 로보 택시는 차량에 장착된 지갑으로 결제하고 유유히 다시 손님을 태우러 떠난다. 자율주행차 글로벌 플랫폼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로보 택시를 통해 확보한 돈을 월가의 금융기관에 위탁하거나 자체적으로 자동차 관련 금융 사업을 전개한다. 보다 많은 디지털 자산을 확보하기 위해 자율주행차 글로벌 플랫폼은 소비자로 하여금 자동충전을 유도하고 택시 사용이 잦은 소비자는 현지 은행 대신 자율주행차 글로벌 플랫폼에 돈을 맡긴다.


물론 블록체인 식민지 시나리오가 당장 실현되지는 않을 것이다. 기술적인 부분은 논외로 하더라도 엄격한 규제가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데이터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 대비 돈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은 직관적으로 파악이 가능할뿐더러 금융 시스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금융당국과 현지 금융기관이 연합해 만들어 낸 규제는 당분간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의 침입을 막는 방패가 되어 줄 것이다. 그러나 규제는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시민들은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요구하며 현지 기업보다 훨씬 수준 높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을 지지할 것이다. 결국 블록체인 식민지는 서서히 금융 시장을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에게 내줄 가능성이 높다.


지금 이대로 가다간 대한민국은 분명 블록체인 식민지가 된다. 물론 이것이 완전히 나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시민들은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이 제공하는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며 얻는 경제적 혜택에 만족할 테니까. 하지만 국내 금융 기업들은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나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뒤늦게 깨달을 때쯤, 국내 금융 산업 관계자들은 부랴부랴 ‘한국형 비트코인 은행’, ‘한국형 디지털 자산 플랫폼’ 따위를 논할 수도 있다. 부디 여기에 쓸데없이 정부 예산을 낭비하는 일은 지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터넷과 마찬가지로 블록체인도 국경을 초월한 글로벌 산업이다. 이미 우리는 ‘한국형 유튜브’, ‘한국형 넷플릭스’, ‘한국형 페이스북’을 만들려는 시도가 얼마나 무모한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다.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재 국내 상황을 지켜보고 있자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블록체인 식민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국내 규제환경과 금융 산업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바뀌어야 한다. 아니, 지금부터 바뀐다고 하더라도 사실 이미 너무 늦었다.


북저널리즘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7월에 책이 출간됩니다. 저작권 문제로 인해 내용을 일부 삭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bookjournali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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