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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Aug 12. 2019

나는 그들을 장애우가 아닌 장애인으로 대하고 싶다

김원영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고

어릴 때 학교에서 장애우라는 표현을 배웠던 기억이 있다. 선생님은 장애를 가진 이들을 부르는 호칭으로 사람인 (人) 대신 벗 우 (友)를 사용해, 사회가 그들을 따뜻하게 감싸줘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장애우라는 표현이 무척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신체적 거동이 불편하거나 정신적 결함이 있는 사람들을 스스럼없이 친구처럼 대하는 것이 얼마나 정의로운 일인가! 그러나 당시에 나는 너무 어렸기에 충분히 사려 깊지 못했다. 장애우라는 표현이, 어쩌면 그 대상이 되는 이들과 여타 일반인들을 구분 짓는 바리케이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던 것이다.


장애가 있는 변호사 김원영은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책을 통해 사회에서 '인간실격'으로 치부되는 장애인의 입장을 대변한다. 그는 말한다. "나는 이 책에서 장애를 자아의 스타일로, 정체성의 구성요소로, 문화적 다양성의 한 측면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정상'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굳이 '정상'으로 바꾸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불편한 특징'을 하나의 '고유성'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상호존중과 권리의 쟁취를 위해 투쟁은 하지만, 일방적인 동정과 보호를 바라지는 않는다. 김원영이 원하는 정체성은 장애우가 아닌 장애인이다. 남에게 기대는 의존적 존재가 아닌, 인간이라는 지극히 보통의 존재 말이다.


내가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개인적인 친밀감을 형성하는 체험을 했던 것은 약 10년 전이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순전히 경제적 동기에서 - 봉사점수 혹은 취업 가산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비롯된 봉사활동을 위해 뇌성마비에 걸린 아이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에 매주 나갔다. 나에게 주어진 역할은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지수'라는 여자아이의 외부 활동을 돕는 것이었다. 지수는 말이 많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살가운 구석이 있는 미소가 예쁜 아이였다. 나는 지수의 휠체어를 밀면서 이따금씩 시답잖은 장난을 쳤고 그럴 때면 지수는 까르르 웃곤 했다. 그렇게 우리는 휠체어 밀어주는 아저씨와 도움을 받는 장애인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교감했다. 지수와의 교감을 통해 나는 장애는 단지 인간이 지닌 수많은 특질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수는 지금쯤 어엿한 성인이 되어 여타 사람들처럼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을 것이다.


특수학교에서의 경험을 계기로 나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더 이상 가지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딱히 불행하지도, 타인의 동정을 갈구하지도 않는다. 단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일 뿐이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장애인에게도 저마다의 삶이 있으며, 그 속에는 나름의 도덕과 죄악, 행복과 불행, 사랑과 증오가 담겨있다. 나는 장애인을 대할 때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거나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 다만, 사려 깊은 인간이라면 마땅히 상호적으로 행해야 할 사소한 배려를 할 뿐이다. 나는 그들을 장애우가 아닌 장애인으로 대하고 싶다. 보통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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