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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Jul 14. 2019

노브라에 대한 단상

게르 브란텐베르그의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고

<이갈리아의 딸들>과 <거꾸로 가는 남자>는 남녀의 전통적 역할을 바꿔버린, 아주 유쾌하면서 뾰족한 풍자가 있는 작품이다. 남성인 본인은 작품을 보는 내내 여성이 겪는 사회적 부조리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공감할 수 있었다. 물론 남성에게 요구되는 맨박스 (남자다움)가 거의 조명되지 않은 채 마치 여성만을 문명의 희생양인 것처럼 다룬 것은 다소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남성에 비해 여성이 약자의 입장에 처했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여성의 입장에서 성 계급 문제를 조명한 것은 호소력이 있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갈리아의 딸들>에 나오는 "페호"다. 페호는 남성의 성기 가리개인데, 현대 사회 브라와 비슷한 기능을 한다. 책에서는 페호를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옛날에 럭스에서는 맨움들이 페호 따위는 입지 않았어. 그것은 근대의 산물이야. 상류계급의 고안물이라구. 그런데 지금은 사회의 전 계층으로 퍼졌지." / "만일 우리가 페호를 입는 것처럼 움들한테 바보 같은 삼각 붕대 같은 걸로 가슴을 감싸야한다고 말하면 뭐라고 할까? 만약 가슴을 받쳐주는 것이 없다면 축 처져서 보기 흉하고 매력적이지 않게 보일 거라고 말한다면?"


잠수부가 되고 싶은 맨움 페트로니우스는 가족의 반대에 부딪친다. 왜냐하면 고된 육체활동을 해야만 하는 잠수부는 맨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잠수복에는 페호가 달려있지 않다. 즉 '잠수부는 애초에 움의 직업이다'라는 사회적 편견이 존재하는 셈이다. 침울해 있는 페트로니우스를 위해 가족들은 잠수복을 선물한다. 그러나 잠수복 안에는 페호가 달려있고 페트로니우스는 다시금 편견의 벽에 부딪쳐 좌절한다.  


나는 페호와 페트로니우스의 사례를 보며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만약 사회가 지금 내게 페호 착용을 강요한다면 부조리하다고 여길 것임이 분명하다. 땀나는 여름에 거추장스러운 페호를 착용하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들은 매일 의무적으로 브라를 착용한다. 물론 본인의 미용과 패션을 위해 착용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회적 관습에 의해 억지로 착용하는 여성도 분명 있을 것이다. 노브라로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에게는 이를 음흉하게 바라보는 관음의 시선과 더불어 '문란하고 발칙한 여성'이라는 딱지가 따라다닐 테니까.


내친김에 궁금해서 브라의 역사를 찾아봤다. 놀라운 점은 브라의 역사가 고작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세기 초 미국 사교계의 여왕 메리 펠프스 제이콥스가 실크 드레스 착용을 위해 코르셋 대신 손수건 가슴 가리개를 착용한 것이 브라의 시초다. 물론 그 이전에 코르셋을 비롯해 브라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속옷이 존재했으나, 현대적 의미의 브라가 등장한 것은 이때부터이다. 미디어와 패션 업계는 브라를 입고 섹시함을 드러내는 모델을 전면에 앞세워 브라를 여성의 성적 매력을 암시하는 상징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 결과, 브라는 어느 사교계 여왕의 기호품에서 문명사회 여성들의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아름다움을 위해 감수해야만 하는 불편함. 여성이라면 마땅히 준수해야 하는 의무. 


<이갈리아의 딸들>에서는 맨움해방운동을 위해 맨움들이 페호를 불태우는 장면이 나온다. 예전에 여성 단체가 상의 탈의 퍼포먼스를 하는 것을 보며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는 그들이 어떤 의도였는지 이해할 것 같다.  브라가 미용과 패션이라면 (만들어진 지 고작 100년 밖에 되지 않은), 브라를 하지 않을 권리도 개인에게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화장을 할지 여부가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달렸듯이 말이다. 이런 점에서 비추어 볼 때, 노브라는 단지 개인의 선택이며 타인에 의해 비난받을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인다. 


역지사지 (之), 이 단순한 문구에 진실한 교훈이 담겨있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의 입장을 더욱 잘 이해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럼 점에서 볼 때, <이갈리아의 딸들>과 <거꾸로 가는 남자>는 여성이 처한 상황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언젠가 남성의 고충도 실감 나게 묘사하는 작품이 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남자다움을 강요당하는 것이 얼마나 성가신 것인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테니까. 모쪼록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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