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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Sep 07. 2019

사랑의 가벼움과 무거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간략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상이한 성향을 지닌 네 남녀가 사랑과 이별을 하고, 계급의 변동을 체험하고,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미력한 개인은 극적인 변화를 겪고, 종국에는 주요 인물들이 허무하게 죽는다. 이 책은 얼핏 남녀 간 사랑에 대한 소재를 다루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랑뿐 아니라 삶과 존재의 의미에 대해 깊이 있게 고찰하는 철학책이라 할 수 있다.


니체의 팬으로서, 그의 영원회귀 사상이 책에 등장하는 것이 무척 반갑다. 작가는 영원회귀의 개념을 친절히 설명하는데 책의 첫 부분을 할애한다.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뒤집어 생각해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 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네 남녀는 삶을 가볍게 대하는 진영과 무겁게 대하는 진영으로 구분된다. 우선, 바람둥이 외과의사 토마시는 가벼움의 진영에 속한다. 이혼 경력이 있는 토마시는 누구와도 깊게 연결되지 않은 홀가분한 독신 상태를 만끽한다. 깃털같이 가벼운 관계만을 지향하는 토마시는 여자들이 은밀하게 감추고 있는 '백만분의 일의 상이성 (고유한 성적 매력 및 성적 취향)'을 메스로 벗겨내는 일을 즐기는 열성적인 탐구자다. 토마시에게 있어서 여자는 정복해야 할 대상이요, 연애와 결혼은 구속을 뜻한다. 토마시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고집스러운 면이 있는데, 나중에 이것 때문에 상당한 불이익을 받는다.   


그런 그의 인생에 어느 날 테레자가 등장한다. 시골 술집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테레자는 무거움의 진영에 속한 여성이다. 테레자는 우연히 술집에 들른 토마시에 호감을 느끼고, 이 둘 사이에 일어난 몇 번의 우연한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서 그와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지긋지긋한 집구석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테레자는 대뜸 짐을 챙겨 프라하로 토마시를 만나러 간다. 테레자가 토마시의 집에 방문했을 때,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안나 카레니나>는 지적 교양을 상징하는 그녀의 유일한 밑천이자 토마시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이다. 테레자는 토마시와 연애하고 결혼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의 지독한 여성편력으로 괴로워한다. 순박한 테레자는 도시에 사는 것보다는 소박한 시골 생활을 마음 편히 여긴다.


한편, 토마시에게는 사비나라는 애인이 있는데 그녀 역시 가벼움의 진영에 속한다. 토마시는 연인으로서 책무가 면책된 여자와의 관계를 '에로틱한 우정'이라고 칭하는데 토마시와 사비나는 오랜 시간 에로틱한 우정 관계를 유지한다. 사비나는 토마시의 애인 테레자를 만날 때도 별다른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사비나는 테레자와 스스럼없이 지내는데, 섹스와 사랑이 별개라고 생각하는 점이 토마시와 닮았다. 사비나는 토마스와 마찬가지로 속박을 싫어하고 가벼운 관계만을 추구한다. 자유분방한 성향의 예술가인 사비나에게 있어서 정착은 곧 죽음이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장소든 간에 사비나는 한 곳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 그녀는 에로틱한 우정 관계였던 프란츠가 좀 더 진지한 관계를 요구하자, 그를 두고 멀리 미국으로 떠나 버린다.


사비나에게 버림받은 프란츠는 무거움을 상징한다. 대학교수인 그는 샌님 같은 스타일인데 매력이 톡톡 튀는 사비나에게 강한 호감을 느낀다. 하지만 가정이 있는 프란츠는 사비나와 에로틱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죄책감을 느낀다. 결국, 그는 사비나와 정식으로 교제하기 위해 이혼을 결심한다. 그러나 사비나는 오히려 이를 부담스럽게 느끼고 프란츠로부터 도망친다. 프란츠는 그의 부인을 배신했고, 사비나는 그런 프란츠를 배신했다. 나중에 프란츠는 나이가 한참 어린 학생과 연애를 하지만, 평생 사비나를 잊지 못한다.


네 남녀 중 세 사람은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토마시와 테레자는 트럭에 깔려 죽고, 사회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캄보디아로 나간 프란츠는 현지인의 습격을 받고 죽는다. 미국으로 이민을 간 사비나는 낯선 땅에 묻히는 것이 싫어 만약 자기가 죽는다면 시신을 화장하고 재를 뿌려달라는 유언장을 작성한다. 밀란 쿤데라는 책의 말미에 '죽음'을 등장시킴으로써 허무주의를 환기시킨다. 니체가 말했듯이 삶은 원래 무의미하다. 그렇다. 우리는 태어나고 무의미한 짓을 어영부영 반복하다가 죽는다. 무력감이 지배하는 삶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능동적으로 이를 실현할 용기는 소수에게만 허락된 은총이다.


만약 삶이 이토록 가벼운 것이라면, 사랑 또한 가볍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다시 말해, 사랑의 성질이 반드시 진지하고 무거운 것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이와 관련, 오늘날 테레자와 프란츠가 속한 무거움의 진영은 토마시와 사비나가 대표하는 가벼움의 진영으로부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듯하다. 무거운 관계를 지향 (모노가미, 일대일 사랑) 하는 테레자와 프란츠는 '정상적인'인 반면, 가벼운 관계를 추구하는 (폴리아모리, 다자간 사랑) 토마시와 사비나는 '비정상적'이거나 혹은 변태로 취급된다. 사랑은 아름다운 구속과 소유욕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무거운 관계를 통해 완성되어야 하는가? 에로틱한 우정은 폐기되어야 할 악습인가? 관계가 가벼울수록, 어쩌면 서로에게 더 진실하고 솔직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봄직한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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