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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Oct 25. 2019

조크하는 이방인

영화 <조커>를 보고

**<조커> 영화 스포일러 주의**


평소에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이다. 좋아하는 영화가 있으면 몇 번이고 다시 본다. 그렇지만 최신 영화를 영화관에서 두 번 이상 보지는 않는다. 대형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대중 영화라면 더더욱 그렇다. 내가 다시 보는 영화는 주로 오래된 것들이다. 쏟아져 나오는 신작들에 의해 퇴적되지 않고 시간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고전. 다시 볼 때마다 새로운 울림을 주는 영화. 나는 이런 영화야말로 다시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나의 원칙을 깬 영화가 있다. 바로 최근 개봉한 <조커>다. 


<조커>가 개봉하는 첫날, 영화를 본 후 충격에 휩싸인 나는 곧바로 그 주에 다시 한번 영화관을 찾았다. 두 번째 볼 때는 이미 스토리를 알았기에 배우의 연기에만 집중해서 봤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전율을 느꼈다. <다크나이트>에서 조커를 연기한 히스 레저 이후 두 번 다시는 히스 레저만큼 조커를 잘 표현한 배우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보기에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히스 레저의 조커를 능가했다. 호아킨 피닉스가 조커를 연기한 것이 아니라 호아킨 피닉스 그 자체가 조커로 느껴질 정도로 그의 연기는 완벽했다. (다음 조커 역할을 맡을 배우는 얼마나 부담될까?)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코미디언이 되고 싶은 아서는 남을 웃기는데 재능이 없는 광대다. 그의 조크에 웃는 유일한 사람은 본인뿐이다. 세상은 아서를 철저히 외면하고 그의 삶에는 그 어떠한 희망도 찾아볼 수 없다. 집으로 가는 계단을 터벅터벅 오르는 아서의 어깨는 항상 축 처져 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살인을 저지른 아서는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폭력성에 친숙함을 느낀다. 뜻밖의 기회에 진짜 자기 모습을 발견한 아서. 위험한 자유를 느끼며 그는 그렇게 아서에서 조커로 변해간다. 계단을 내려가는 그의 발걸음은 한 없이 가볍다. 

조커 분장을 한 아서는 유명 TV쇼인 머레이 쇼에 출연한다. 그의 원래 계획은 조크를 가장해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권총 자살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서는 머레이와 말다툼을 하게 되고 극도로 흥분한다. 결국 아서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머레이에게 총구를 겨눈다. 탕! 잠시의 휴지기. 그리고 몇 번의 총소리. 나는 이 장면에서 <이방인>이 떠올랐다. 뫼르소가 아랍인의 심장에 다섯 발의 총알을 발사했던 것처럼, 아서는 머레이를 향해 수 차례 총을 쏜다. 평소에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인 아서가 갑자기 발작하며 화를 내는 것처럼, <이방인>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매사에 덤덤하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뫼르소. 사형선고를 받은 뫼르소를 찾아와 설교하는 신부에게 그는 격노한다.

 

그때 그랬는지 몰라도 속에서  무엇인가가  터져버리고 말았다나는 목이 터지도록 고함치기 시작했고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기도를 하지 말라고 말했다나는 그의 신부복 깃을 움켜잡았다기쁨과 분노가 뒤섞인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끼며 그에게 마음속을 송두리째 쏟아버렸다너는 어지간히도 자신만만한 태도다그렇지 않고 뭐냐그러나 너의 신념이란  모두 여자의 머리카락  올만한 가지도 없어너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너에게는 없지 않으냐나는 보기에는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자신에 대한모든 것에 대한 확신너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나의 인생과닥쳐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자신에 대한모든 것에 대한 확신고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그렇다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그러나 적어도 나는  진리를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생각은 옳았고지금도 옳고 언제나 옳다. (중략다른 사람들의 죽음어머니의 사랑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그의  하느님사람들이 선택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숙명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오직 하나의 숙명만이 나를 택하도록 되어 있고나와 더불어 그처럼 나의 형제라고 자처하는수많은 특권을 가진 사람들도 택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중략이런 모든 것을 외쳐대며나는 숨이 막혔다그러나 벌써 사람들이 사제를  손아귀에서 떼어내고 간수들이 나를 위협했다그러나 사제는 그들을 진정시키고한동안 묵묵히 나를 바라보았다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히 괴어 있었다그는 마침내 돌아서서 사라졌다.


아서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가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와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슬퍼하지 않은 남자. 태양이 눈부시다는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 남자. 우발적으로 총을 쏜 후 네 발의 총알을 더 발사한 남자. 법정에서 자기변호를 위해 유리한 진술을 거부한 남자.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위험한 자유를 선택한 남자. 권위와 위선에 반항한 남자. 거짓된 삶을 살 바에 진실한 죽음을 택한 남자. 타인에게도,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도 이방인이었던 남자. 


<조커>는 위험한 영화로 평가된다. 미국 FBI는 조커 관련 온라인 게시물을 모니터링하고 영화관에서는 총기 사건 방지를 위해 관람객들의 몸수색을 할 정도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조커는 반사회적인 영화라기보다는 단지 껍데기를 거부하고 마침내 본모습을 찾은 (비록 그것이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범주에 속하지만),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개인에 대한 이야기다. 아서, 관객 없는 무대에서 나 홀로 조크하는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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