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세계사적 패배

진화하는 결혼 #2

우리는 농업 혁명이 태동한 시기가 비교적 최근이라는 것을 잊고 사는 경향이 있다. 600만 년 인류의 역사를 1년으로 압축한다면 농업혁명이 시작된 시기는 12월 31일 11시 40분이다. 원숭이와 진배없는 생활을 하던 호모 사피엔스는 이때부터 문명인의 면모를 갖춘다. 떠돌이 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한 곳에 정착하고 가축과 식량을 길들이기 시작했다. 안정적으로 식량조달이 가능해지자 잉여생산물이 생기고 계급이 출현했다. 인구가 증가하자 부락의 규모는 커져 국가로 발전했다. 농업혁명은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꾼 사건이었다.


농업혁명이 과연 바람직한 진보였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주목할만한 점은, 결코 적지 않은 수의 학자들이 농업혁명을 재앙이라고 평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식량의 세계사>를 지은 톰 스탠디지는 농업혁명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실수라고 주장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인위적으로 작물을 키우는 농사는 전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며 농업혁명 이후 인류의 식단은 건강하지 않은 형태로 바뀌었다. 인류가 수렵채집을 포기한 결과,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할 기회를 잃었고 각종 질환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렵채집 시대에서 농업으로 이행하던 시기의 유골을 살펴보면, 비타민 결핍, 성장 저해, 수명 감소 등의 증거가 관찰된다.


농업혁명이 야기한 근본적 변화는 잉여생산물과 계급이다. 농경, 목축, 가내수공업 등 모든 부분에서 노동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하자 인류는 당장 필요한 것보다 많은 생산물을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얻은 재산은 공동체가 관리하는 것에서 점차 특정 개인 혹은 가문에게만 한정된 사유재산으로 변해갔다. ‘의무’라는 명목으로 거의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는 기존 수렵채집 시절보다 훨씬 많은 노동량이 부과되었다. 은총을 받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타인의 노동력에 기대어 생산의 의무에서 면책될 수 있었다. 혈연적 유대관계에 기반한 원시공동체는 주인과 노예로 나뉜 계급사회로 바뀌었고, 이는 만연한 착취, 빈부 격차, 부조리, 전쟁 등을 초래했다.


농업혁명은 가족 관계와 결혼 제도의 변화에 대해서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원시적인 군혼제는 점점 자취를 감추었고 대신 대우혼 (對偶婚) 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대우혼은 군혼제와 일부일처제의 중간쯤 되는 단계로서, 혈족 간 성관계를 금하고 남녀가 한 사람의 배우자를 갖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관계의 강제성이 약하고 주기도 짧은 편이기에 일부일처제와는 구분된다. 또한, 남자는 배우자가 아닌 다양한 여자를 만나며 사실상 일부다처제를 실현할 권리가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농업혁명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이었다. 잉여생산물, 계급, 사유재산이 생기자 모계사회는 부계사회로 전환되었고 가부장제가 출현했다. 가부장제가 출현한 배경은 사유재산과 관련이 깊다. 계급이 높은 남성은 자신의 사유 재산을 자식에게 상속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전의 군혼제에서는 아이의 어머니만 알 수 있을 뿐, 아버지가 누구인 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남성이 부성 확실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성의 성을 배타적으로 소유하고 정조를 강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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