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와 결혼의 충돌 #2
진화론으로 19세기 당시 유럽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다윈은 자연선택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에 의문을 느꼈다. 왜 공작 수컷은 쓸데없이 화려한 깃털을 가지게 됐을까? 깃털이 없으면 포식자에게 노출되어 죽임을 당할 가능성이 낮아질 텐데 말이다. 고민 끝에 다윈은 번식상의 이득에 주목했다. 다윈은 번식의 욕구와 종의 진화가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며 이것을 성 선택이라 이름 붙였다.
성 선택 이론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동성의 개체들이 이성에게 성적으로 어필하는 것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성내 경쟁이다. 두 마리 수컷 산양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뿔을 부딪치는 모습은 성내 경쟁의 대표적인 예이다. 동성 간의 경쟁에서 이긴 승자는 보다 많은 이성과 짝짓기를 해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린다. 또 다른 유형은 성간 경쟁이다. 성간 경쟁은 개체들이 일정한 특질을 지닌 이성을 다른 잠재적 배우자 대비 선호하는 것을 뜻한다. 가급적 이성에게 많은 선택을 받을수록 번식에 성공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개체는 이성이 선호하는 특질을 보존하고 발달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공작 수컷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깃털을 지닌 이유는 (비록 이로 인해 포식자의 눈에 띄어 죽임을 당할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암컷이 이러한 특질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다윈의 성 선택 이론은 배우자에 대한 선호와 배우자를 얻기 위한 경쟁의 메커니즘을 규명함으로써 종의 짝짓기 현상을 효과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성 선택 이론은 당대 주류 과학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왜냐하면 암컷이 짝짓기 과정에서 능동적으로 수컷을 선택한다는 생각은 당시 남성주의적인 세계관을 가진 과학자들에게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문화적인 측면을 제외하고 번식의 관점에서 인간의 짝짓기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인본주의자들의 눈밖에 났을 것임이 틀림없다.
다윈의 성 선택 이론은 한동안 퇴적되었고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성 선택 이론을 인간 사회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본격적으로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학자들은 남녀의 짝짓기 심리뿐 아니라 인간의 다양한 행동을 성 선택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가정을 세우고 무지의 장막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동물의 왕국에서처럼 인간 사회의 기저에도 번식의 법칙이 암암리에 작용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이론이 속속 등장했다. 이것이 바로 진화심리학이다.
남녀가 배우자의 덕목으로 중시하는 요소는 어떻게 다른가? 남녀가 이성을 유혹하는 방법은 어떻게 다른가? 남녀가 가정과 아이를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다른가? 남녀는 처음 보는 상대와의 원나잇에 어떤 차이를 보이는가? 남녀는 배우자의 외도에 어떤 차이를 보이는가? 왜 남성은 일반적으로 젊고 예쁜 여성을 선호하는가? 왜 여성은 일반적으로 권력 있고 돈이 많은 남성을 선호하는가? 성 선택 이론에 기반한 진화심리학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변을 제공한다.
본격적으로 진화심리학을 소개하기에 앞서, 진화심리학은 발칙하고 불편한 구석이 있다는 점을 미리 밝혀두고 싶다. 진화심리학의 대가 데이비드 버스는 <욕망의 진화>에서 다음과 같이 그의 견해를 밝힌다 “인간의 짝짓기에 대해 내가 발견한 사실들 가운데 대다수는 윤리적이라 볼 수 없다. 예컨대 성적인 목표를 무자비하게 추구하는 과정에서 남녀는 경쟁자를 깎아내리거나, 이성을 기만하거나, 심지어 자기 자신의 배우자를 파멸 시키키도 한다. 이러한 발견들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인간의 짝짓기에서 경쟁적이고, 갈등을 유발하고, 속임수에 능한 측면은 차라리 없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발견이 불쾌하다고 해서 그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궁극적으로 인간 짝짓기의 불순한 측면으로 인해 생기는 가혹한 결과들을 치유하고자 한다면 그들과 맞닥뜨리는 수밖에 없다.”
진화심리학에 의하면, 대체로 남성은 일부다처제 성향을, 여성은 일부일처제 성향을 지닌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여성 대비 섹스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가급적 많은 파트너와 잠자리를 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대학 캠퍼스를 거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처음 보는 매력적인 이성이 잠자리를 제안했을 때, 불쾌감을 표하며 거절한 여성 응답자들과는 달리 남성 응답자들의 75%는 이 당혹스러운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이 연구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남성은 여성 대비 원나잇에 개방적이며, 섹스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파트너와의 감정적 유대감 및 친밀도는 남성에게 최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요소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이 연구 결과에는 논란이 있다. 신원이 불분명한 낯선 상대와의 잠자리를 수락했을 때, 예상치 못한 위험에 (강간, 상해 등) 처할 확률이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연구 결과가 왜곡됐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화 심리학자 데이비드 슈미트의 또 다른 연구는 이러한 우려가 기우임을 나타낸다. 그는 6개 대륙, 13개 섬, 27개 언어, 52개 나라를 포괄해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남녀의 성적 습성에 관한 연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모든 문화권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성적 다양성에 대해 훨씬 더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 연구 결과가 시사하는 불편한 진실은, 사회적 규범과 도덕이라는 제동 장치만 없다면 남성들은 가급적 적은 노력을 들여 가급적 많은 여성들과 섹스하고 싶어 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와 같은 결과는 생식과 관련된 남녀 간 자원의 투자 차이에 기인한다. 예를 들어, 남성은 수 백만 개의 정자를 만들고 이는 매일 새 것으로 교체된다. 그러나 여성은 평생 400여 개의 정해진 수의 남자만 만들며 이미 만든 난자를 새로 교체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여성의 난자는 남성의 정자 대비 무척 희소한 자원인 셈이다. 또한, 남성은 한 번의 섹스로 임신이 될 경우 부성 투자를 다한 셈이지만, 임신한 여성은 10개월 간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며 출산 후에도 수유를 해야 한다.
20세기에 피임과 낙태 기술이 발달하기 전, 우리의 조상 여성들은 단 한 번의 섹스로 엄청난 자원을 투자해야 하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체내 수정, 임신, 수유의 짐은 전적으로 여성에게 주어진 짐이었다. 후대에 성공적으로 유전자를 남긴 여성은 배우자를 까다롭게 고르고 섹스에 신중한 여성들이었다. 반면, 약간의 수고만 하면 별다른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번식할 수 있는 남성은, 다양한 상대와 활발히 잠자리를 가짐으로써 후대에 유전자를 남길 가능성을 높였다. 배우자로부터 장기적인 헌신을 기대하는 여성 대비 남성이 단기적이고 찰나적인 관계를 맺는 것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이유는 바로 이 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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