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심리학자들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반론

섹스와 결혼의 충돌 #3

진화심리학은 성적으로 문란한 남성은 일부다처제를 지향하고 성적으로 소극적인 여성은 일부일처제를 지향하는 것이 태생적이라고 주장한다. 번식상의 이득을 위해 남성은 항상 되도록 많은 여성과의 섹스에 굶주린 상태이고, 여성은 자신과 자녀에게 자원을 꾸준하고도 독점적으로 제공할 남성의 능력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화심리학을 지지하는 자들이 대체로 남성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때문에 진화심리학은 남성 편향적이라는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롭기 어렵다.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은 이렇고 여성은 저렇다’는 진화심리학의 이분법적 사고와 전근대적인 젠더 프로파일링에 반발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진화심리학의 기저에는 여성을 남성의 번식을 돕는 소유물로 보는 심리가 깔려 있다고 비판한다. 여성의 정절은 가부장제가 만들어 낸 사회적 관념이며 여성이 성적으로 소극적이고 섹스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의 정절을 강제하고 성을 억압하는 성녀 이데올로기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의 저자 마리 루티는 남성의 바람기와 여성의 조신함을 정당화하는 진화심리학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화심리학자들이 한 목소리로 여성은 조신하게 타고난다고 되풀이하는 것은 여성이 조신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님을 우리더러 믿으라는 것이다. 나는 속지 않는다. 나를 냉소주의자라고 부른다 해도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여성들이 ‘타고나기를’ 조신하다는 증거가 거의 없고, 따라서 이 주장은 처음부터 이념적 조작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그 주장을 입증하는 데 쓰인 과학적 ‘방법’은 반복해서 말함으로써 사실처럼 들리게 하는 것이다.”


20세기 여성 해방 운동 및 섹스 혁명이 본격적으로 발발하기 전까지, 성녀 이데올로기 조장 및 여성의 성욕에 대한 거세는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조직적으로 전개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소위 전문가로 일컬어지는 이들이 ‘과학의 권위’를 앞세워 여성의 성욕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을 사회에 주입시켰다는 점이다. 마치 오늘날 진화심리학자들이 퍼뜨리는 ‘여성은 원체 날 때부터 성적으로 소극적이며 조신하다’는 생각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 19세기에 살았던 의사 윌리엄 액턴은 여성의 성욕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기며 여성의 자위행위가 삶의 에너지를 빼앗고 질병을 유발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여성들 대다수는 성욕으로 문제를 겪는 일이 없다. 남성들은 습관처럼 느끼는 욕구지만, 여성들에겐 예외적인 욕구일 뿐이다. (중략) 훌륭한 어머니, 아내, 가정 관리자들은 섹스에 탐닉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가정, 아이들, 집안일에 대한 사랑이 그들이 느끼는 유일한 열정이다. 일반적으로 보통의 여성은 자기 자신을 위해 성적 쾌감을 갈구하는 일이 좀처럼 없다. 단지 남편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순순히 응하는 것뿐이다.”


윌리엄 액턴과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의사 크라프트 에빙 또한 여성의 성욕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어떤 여성이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교육도 제대로 받았다면 그녀의 성욕은 작다.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은 온통 매춘굴로 변할 것이며 결혼과 가정이라는 건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크라프트 에빙은 여성을 성적으로 수동적인 대상으로 보고 성녀 이데올로기를 따르지 않는 여성을 잠재적 매춘부로 간주했던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윌리엄 액턴, 크라프트 에빙과 비슷한 시기를 살다 간 의사 호레이쇼 스토러는 어느 날 지나치게 솔직한 여성 환자를 맞는다. 그녀는 자신이 종종 간통하는 꿈을 꾸고 일상생활에서 남성들을 접할 때 참을 수 없는 성적 충동을 느낀다고 그에게 털어놨다. 그러면서 남편의 발기부전으로 인해 부부간의 성생활이 원활하지 않은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고 밝혔다. 환자의 고백을 듣고 의사가 내린 처방은 다음과 같은데, 정말 기가 막히다. 당분간 남편과 섹스하지 말고 떨어져 있을 것. 성욕을 식히기 위해 매일 차가운 스펀지로 몸을 닦고 관장을 실시할 것. 잠잘 때 성적인 자극을 줄이기 위해 깃털 매트리스와 베개 대신 털로 만든 제품들을 쓸 것.


여성의 성욕에 대한 의미 있는 학술적 연구가 촉발된 계기는 20세기 중반에 발간된 킨제이 보고서 덕분이다. 곤충학자 킨제이는 1만 8천 명에게 개인의 은밀한 성생활과 관련된 설문지를 돌려 동성애, 혼전 섹스, 혼외정사, 자위 등과 관련된 통계자료를 발표했다. 킨제이는 이 연구에 기반해 1948년 <남성의 성적 습성>을 , 이어서 1953년에는 <여성의 성적 습성>을 발표하며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킨제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여성 네 명 중에 한 명 이상은 혼외정사를, 다섯 명 중에 한 명 이상은 동성애를 경험한 바 있다. 킨제이 보고서는 여성의 성욕이 남성 못지않다는 사실을 학술적으로 입증한 전례 없는 시도였다.


한편, 심리학자 메러디스 치버스가 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포르노 연구의 결과 역시 흥미롭다. 연구진은 실험 대상자들의 성기에 성적 흥분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를 달고 다양한 포르노를 보여주었다. 그 결과, 이성애자 남성들은 주로 여성의 섹스 이미지에만 신체적 반응을 보인 반면, 이성애자 여성들은 대상이 누구든 (게이, 레즈비언, 이성애자 심지어 보노보까지) 섹스하고 있는 모든 생물의 이미지에 흥분했다. 남성 대비 여성이 성적으로 흥분할 수 있는 대상에 폭넓은 유연성을 보인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여성들 가운데 대다수가 자신이 흥분한 사실을 연구진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신체에 부착된 도구가 여성들이 느끼는 흥분 수준을 분명하게 암시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여성의 성욕을 거세하고 있는 사회적 압박이 암묵적으로 존재함을 시사한다. 여성은 성욕에 수치심을 느끼고 이를 되도록 감추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연구에 참여한 여성들은 본인의 흥분 여부를 깨닫지 못했을 뿐 아니라 어쩌면 이를 알아차리더라도 민망함으로 인해 쉽사리 밝히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남성이 포르노를 보며 흥분된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으로 여겨지지만, 여성이 보노보의 섹스 이미지에 흥분된다고 밝히는 것은 어

쩌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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