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중섭 Mar 08. 2020

연인 사이에 비밀이 없는 것은 권태만큼 위험하다

영화 <클로저>를 보고

**<클로저> 영화 스포일러 주의**


<클로저>는 네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내가 <클로저>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보통의 로맨스 영화가 사랑이 시작하는 과정에만 초점을 맞춘 것과는 달리, 이 영화는 사랑이 시작하고 끝나는 전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소설가 댄과 런던 도심에서 우연히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다고 믿는 뉴욕 출신 스트립 바 댄서 앨리스 (본명은 제인), 남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의사 래리와 결혼한 사진작가 안나. 사진 작업을 하다가 만난 댄과 안나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이들의 외도로 인해 앨리스와 래리는 상처를 받는다. 그렇다고 앨리스와 래리가 일방적인 사랑의 피해자인 것은 아니다. 앨리스와 래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복수하는 데 성공한다. 영화 속 네 남녀는 모두 적당히 이상하고, 적당히 찌질하고, 적당히 잔인하다.


영화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장면이 등장한다. 그중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앨리스가 스트립바 손님으로 온 래리에게 그녀의 본명을 밝히는 장면이었다. (래리는 앨리스의 본명이 제인인 것을 믿지 않는다) 왜 일까? 왜 앨리스는 댄에게 자신이 이름을 속였을까? 왜 가장 신뢰하고 사랑하는 연인에게는 거짓말을 하고, 스트립 바라는 수치스러운 공간에서 만난 손님에게는 진실을 말했을까?

앨리스가 본명을 말해도 믿지 않는 래리

내 생각에는, 타지에서 온 이방인 제인은 현지에서 우연히 만난 매력적인 남성에게 자신이 스트립바 댄서 출신이라는 비밀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녀는 우발적으로 이름을 속여 비밀을 만들었고, 나중에 댄과 관계가 진전됐을 때 자신의 거짓말을 해명할 기회를 찾지 못한 것이다. 그럼 래리는? 스트립 바에 들른 랠리는 앨리스가 일하는 모습을 봤고, 정체가 들통난 그녀는 래리와 딱히 진지한 관계를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밀을 감추지 않고 솔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완벽한 타인에게는 기꺼이 밝힐 수 있는 사실을 연인에게는 비밀로 하는 것. 이와 같은 아이러니는 사실 지극히 평범한 것이다. 연인은 가장 가까운 이방인이다. 비밀의 세계에 들어갈 입장권이 없는 이방인. 각자의 비밀을 간직한 채, 적당히 속고 속이면서 상대의 비밀을 '모른 척' 하는 것이 보통의 연인들이 사랑이라는 무대에서 수행하는 연기이다. 만약 연인 사이에 적당한 비밀이 없다면, 둘 사이에 타오르던 에로스는 빠르게 식을 것이다. 비밀은 질투와 더불어 사랑의 칵테일을 완성시키는 재료이다. 연인 사이에 비밀이 없는 것은 권태만큼 위험하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앨리스와 래리가 만난 스트립 바는 진실의 공간이다. 스트립바에 놀러 온 남성도, 이 곳에서 일하는 여성도 상대와 진지한 연인 사이로 발전해 미래의 페이지를 함께 채워나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일시적인 유흥 서비스의 구매자와 판매자로 서로를 사무적으로 대할 뿐이다. 스트립 바에 있는 사람들은 이 공간에서 함께 있는 사람들이 어차피 지금, 여기에서 한 번 보고 말 사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다 보니 스트립 바에서는 굳이 비밀을 감출 필요가 없다. 사랑하는 연인보다 스트립바에서 만난 상대에 더욱 솔직해질 수 있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존재가 원래 알면 알수록 모순 투성이다. 특히나 사랑이라는 분야에 대해서는 더더욱.


================================================

독서할 시간이 없는 분들을 위해 책을 리뷰하는 '21세기 살롱'이라는 온라인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3분만 투자하면 책 한 권의 개괄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독은 큰 힘이 됩니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https://www.youtube.com/watch?v=ay_RTiNuvdc&t=95s
















































매거진의 이전글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