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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Jul 05. 2020

이기심만큼 정직한 인간의 본성이 있을까?

도서 <라쇼몬>을 읽고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소설 <라쇼몬>의 배경은 기근과 궁핍이 만연한 일본의 헤이안 시대이다. 라쇼몬은 도둑들이 잠시 몰려와 살거나 시체들이 버려진 문이다. 당시 일본의 상류층은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자 어쩔 수 없이 하인들을 내보내야 했다. 소설의 주인공 하인은 교토 주인집에서 쫓겨나 라쇼몬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수입이 끊기고 지낼 곳이 없어진 하인은 앞으로 먹고 살 일을 걱정한다. 그는 좀도둑이 되어 생계를 연명하려고 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하인의 절박한 심정은 다음의 대사에 잘 드러나 있다.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일을 어떻게든 하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릴 여유가 없다. 가리고 있다가는 담벼락 아내라 길바닥 위에서 굶어 죽을 뿐이다. 그리고 이 문위로 실려 와 개처럼 버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뭐든지 가리지만 않는다면...... 하고 하인의 생각은 몇 번이나 똑같은 길을 오가던 끝에 마침내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않는다면'이라는 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결국 '않는다면'에 머무를 따름이었다. 하인은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에는 긍정하면서도 이 '않는다면'의 매듭을 짓기 위해서 당연히 그 뒤에 따르게 될 '도둑놈이 되는 수밖에 없다.'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긍정할 용기를 내지는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적 갈등을 하고 있던 하인은 문득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자기 외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라쇼몬에 어떤 노파가 수상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는 노파가 시체들로부터 머리카락을 뽑고 있는 것을 보고 분노를 느낀다. 하인은 의협심에 불타 칼을 들고 노파를 추궁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좀도둑이 될 생각을 하던 하인에게서 갑자기 정의로운 사무라이의 기운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런데 하인이 노파의 말을 들어보니 그녀도 나름대로의 딱한 사정이 있다. 노파는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죽은 사람들의 머리를 뽑아 가발을 만들어 팔려고 했던 것이다. 이야기를 다 들은 하인은 노파의 처지에 공감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는 이내 마음을 바꾸고 노파를 협박해 옷가지를 갈취하고 라쇼몬을 떠난다. 하인이 어디로 갔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가 자신의 악행을 정당화 화며 노파에게 한 말은 다음과 같다. "그렇다면, 내가 좀 벗겨 먹어도 원망할 건 없겠군. 나도 그렇게 안 하면 굶어 죽을 테니까 말이야."


이기심만큼 정직한 인간의 본성이 있을까? <이기적 유전자>를 지은 과학자 리처드 도킨슨에 따르면, 모든 생물은 유전자를 보관하고, 운반하고, 전송하는 매개체에 불과하다. 인간도 유전자의 심부름꾼일 뿐이다. 우리는 생존에 최적화된 방향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생존 기계이다. 성공적인 생존을 위해서 유전자는 이타적이기보다는 이기적인 방향으로 작동한다. 유전자의 이타성은 제한적이거나 한시적일 뿐, 큰 그림에서 본다면 유전자의 이타적인 행위 역시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이타성 - 이를테면 부모가 자식에게 일방적으로 주는 사랑 - 역시 생존이라는 원초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기적인 유전자가 지시하는 명령을 수행하는 것에 불과하다.


인간이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점에 비추어보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도저히 말이 안 통하는 타인 (이를테면 부모, 자식, 형제, 직장 상사, 연인 등등)을 만나 '이 인간은 너무 이기적이라서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느끼는 것은 사실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대응하기 마련인데, 이 과정에서 서로의 이기적인 유전자가 지향하는 방향성이 빈번히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본인을 선의의 피해자로, 자신의 올바른 목적을 방해하는 상대를 이기적인 가해자 혹은 물리쳐야 할 적으로 규정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는 뇌가 빚어낸 착시이다. 우리의 뇌는 객관적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정의롭게 대응하는 디케의 저울이 아니다. 오히려 이기적인 유전자가 제공하는 필터로 객관적인 정보를 재조합해서 주관적으로 수용하고, 우리의 언행을 정당화하는데 이용되는 도구에 불과하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소설 <라쇼몬>에서 영감을 받아 동명의 영화를 만들었다. 해당 영화는 <라쇼몬> 뿐 아니라 아쿠사카와 류노스케의 또 다른 단편소설인 <덤불 속>까지 참고해 두 소설의 내용을 복합적으로 각색한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어떤 살인 사건을 두고 가해자, 피해자, 목격자가 각자 상황을 다르게 진술하는 것이다. 이때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이 (보다 정확히는 본인을 지배하는 이기적인 유전자가) 세계를 바라보는 대로, 믿고 싶은 대로, 보고 싶은 대로 상황을 꾸며내고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거짓을 진술한다. 영화에서 나오는 다음의 대사들은 큰 공감을 준다.


"인간들이랑 그런 법이야.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진실을 인정하지 않잖아 / 정직한 인간이 어디 있소? 자기 죄는 잊고 거짓말하는 거지. 그 편이 마음이 편하니까 / 인간은 다 이기적이다. 변명뿐이지."


나는 완전히 이기적이거나 완전히 이타적인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상황이 그를 이타적이거나 이기적으로 보이게끔 만들 뿐이다. 이기적인 유전자의 지시를 받고 나의 뇌가 만들어 낸 적의 환영을 보고 때때로 분노를 느낄 때면, 나는 가급적 그 상대를 미워하기보다는 상황을 미워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물론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본인 역시도 누군가에게는 지독히도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관용과 연민으로 친애하는 적을 대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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