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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Jun 06. 2020

영웅은 살인할 권리를 가지는가?

도서 <죄와 벌>을 읽고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고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이다. 
- 스탈린 - 

영웅과 살인마는 사실상 종이 한 장 차이다. 역사에 족적을 나긴 수많은 영웅들은 직간접적으로 수백, 수천, 수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들의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말이다. 영웅은 비범한 사람이다. 아무런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과는 달리 영웅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대의가 있다. 그리고 영웅은 대의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살인까지 말이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민족의 복수를 위하여, 조국의 번영을 위하여, 정의 구현을 위하여 등등. 영웅의 살인을 정당화하기 위한 다양한 명분이 존재하고 영웅은 '살인할 권리'를 가진다. 역사는 철저히 영웅 중심으로 쓰인, 승자들의 기록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와 벌>을 어릴 때 읽어봤거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가난한 청년 라스콜리니코프가 도끼로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뒤, 방황하다가 결국에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벌을 받는다는 스토리. 대충은 알고 있지만 등장인물 이름 외우기도 어렵고 책을 읽은지도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한 바로 그 책. 이 책을 성인이 되어 다시 읽어보니 내 생각에 도스토예프스키가 <죄와 벌> 을 통해 독자들에게 환기시키고 싶었던 주제는 바로 "영웅은 살인할 권리를 가지는가?"인 듯 하다. 


책의 간략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의협심이 있는 가난한 법대생이다. 그는 전당포 노파가 세상을 좀먹는 기생충이며, 노파가 가진 돈을 사회에 훨씬 유용한 방향으로 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공공의 대의를 위해 노파 개인의 목숨 따위는 없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노파를 죽이기 전, 어느 지인과의 대화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이러한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노파를 죽이고 그 돈을 빼앗아라. 그리고 그 돈의 도움으로 나중에 전 인류와 공공의 사업을 위해 헌신하라. 네 생각은 어때. 하나의 하찮은 범죄가 수천 개의 선한 일로 무마될 수는 없을까? 하나의 생명을 희생시켜 수천 개의 생명을 부패와 해체에서 구하는 거지. 하나의 죽음과 백 개의 생명을 맞바꾸는 건데, 사실 이거야 말로 대수학이지 뭐야! 게다가 저울 전체를 놓고 보면 이런 폐병쟁이에 멍청하고 못된 노파의 목숨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노파는 해로운 존재니까 이나 바퀴벌레의 목숨, 아니, 그만도 못한 목숨이야. 남의 목숨을 좀먹고 있거든."


전당포 노파를 도끼로 죽인 라스콜리니코프. 사회정의를 위해 큰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시종일관 불안감을 느낀다. 그러던 중, 예심판사 포르피리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라스콜리니코프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데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 그는 심문을 위해 예전에 라스콜리니코프가 쓴 범죄자의 심리 상태에 관한 논문을 언급한다. 그 논문은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을 구분하며, 평범한 사람과는 달리 비범한 사람은 대의를 위해 자신의 양심이 허락하는 한에서 범죄를 저지를 권리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뉴턴의 위대한 천문학적 발견이 다른 사람의 희생 없이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것이라면, 뉴턴은 자신의 발견을 인류에게 알리기 위해 사람을 제거할 권리, 아니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라스 콜리니 코프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그는 기본적으로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으며, 비범한 영웅은 평범한 사람과는 달리 법을 초월할 권리를 가진다고 믿는다. "저는 다만 저의 주된 사상을 믿을 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대체로 두 부류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급 부류 (평범한 사람들), 즉 오로지 자신과 비슷한 자들을 생산하는 데만 기여하는, 말하자면 재료이며, 다른 하나는 본질적으로 사람들, 즉 자신이 속한 무리에서 새로운 말을 할 수 있는 천부적 재능이나 능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세분하자면 물론 끝도 없겠지만, 두 부류를 구분 짓는 특징은 상당히 명확합니다. 첫 번째 부류, 즉 재료는, 대체적으로 말해, 그 본성상 보수적이고 점잖은 데다가 순종하며 살고 또 순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그들은 순종할 의무가 있는데, 그것이 그들의 사명이며 그렇다고 굴욕감을 느낄 이유도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전부 법률을 넘어서는 자들, 그 능력에 따라 파괴자이거나 그런 경향이 있는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범죄는 물론 상대적이며 그 종류도 다양합니다. 대개의 경우, 그들은 극히 다양한 성명을 통해 보다 더 나은 것의 이름으로 현재의 것을 파괴하길 요구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이념을 위해 시체라도, 피라도 뛰어넘어야 한다면 그는, 제 생각으로는, 내면의 양심에 따라 스스로에게 피를 뛰어넘는 것을 허용할 수 있으되 그건 어디까지나 이념과 그것의 규모에 따른 것이라는 점. 이점을 유념하십시오."


수사망은 점점 좁혀오고 라스콜리니코프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낀다. 시간이 흐르면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이 영웅의 그릇이 아님을 깨닫고 좌절하는데, 바로 이 점이 그를 가장 불행하게 만든다. 힘들어하는 그의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것은 순수한 마음씨를 가진 창녀 소냐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나폴레옹 같은 영웅이 되고 싶어서 사람을 죽였음을 소냐에게 털어놓는다. 노파를 죽여야겠다고 결심할 당시, 자신이 평범한 사람인 지, 비범한 사람인 지를 테스트 해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이에 불과한지, 아니면 인간인지를 알아야만 했어. 그것도 어서 빨리 알아야만 했지. 즉, 내가 넘어설 수 있는지, 아니면 그럴 수 없는지를! 감히 몸을 숙여 취할 수 있을까, 아닐까? 벌벌 떨기만 하는 피조물인가, 아니면 권리를 갖고 있는가" 라스콜리니코프는 죄를 자수하고 벌을 받는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입장에서 가장 큰 벌은 단순한 형량이 아니다. 바로 본인이 나폴레옹 같은 부류의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스스로가 그토록 경멸하던 전당포 노파 같은 기생충들과 자신이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사실. 이 준엄한 진실이 바로 그를 미치게 만들고 평생을 괴롭힐 것이다. 사회의 '재료'가 되는 과정에서 이따금씩 튀어나오는 자의식을 통제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겠지만, 그는 본인의 한계를 인식한 채 순종하고 타협하며 자신이 경멸해 마지않았던 부류의 사람들과 점점 닮아갈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미루어 볼 때, 히틀러나 괴벨스는 적어도 라스콜리니코프 보다는 훨씬 행복하게 살다 간 개새끼들이었다. 그들은 적어도 자신들이 비범한 영웅이라고 생각했고 나치가 행한 온갖 만행이 대의를 위한 투쟁이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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