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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Dec 06. 2020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영화 <더 헌트>를 보고

*스포일러 주의*


영화 <더 헌트>의 주인공 루카스는 작은 마을에서 이웃들과 오손도손 산다. 사려 깊은 유치원 교사인 그는 아이들과 격 없이 지내고, 소박한 가정을 꿈꾸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범 시민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거짓말이 발단이 되어 루카스는 아동 성추행범으로 몰린다. 루카스는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전후 맥락을 따지지 않고 그를 비난하기에 바쁘다. 가까웠던 친구, 이웃, 마을 사람들 모두 그에게 등을 돌린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사냥'당하는 과정에서 루카스는 인간 사회에 대해 환멸감을 느낀다. 훗날 루카스의 무고함이 밝혀지고 그는 일상으로 복귀하지만, 루카스의 이마에는 이미 '아동 성추행범 구설수에 올랐던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혀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피가 거꾸로 솟는 루카스의 심정이 십 분 이해가 됐다. 왜냐하면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예전에 함께 일한 여자 동료로부터 미투 협박을 당한 적이 있다. 참고로 우리는 일하는 사무실이 지리적으로 떨어져 잇어 99.9% 의 업무 시간을 비대면으로 일했고,  내가 그녀를 실제로 본 것은 그녀가 업무 인수인계를 받기 위해 본사로 출장 온 하루에 불과했으며 (아침에 커피 마시며 자기 소개하고, 점심에 업무 설명하고, 저녁에 상사와 가볍게 밥을 먹은 것이 전부이다. 술도 거의 안 먹었고 1차에서 일찍 자리를 파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는 그녀와 그 어떠한 사적인 연락 및 신체적 접촉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행히 문제가 공론화 되기 전에, 나는 그녀와 차분하게 대화해 오해를 풀었고 본인의 결백을 입증했다. 그렇지만 당시 나는 루카스처럼 분노했고, 억울했으며, 두려웠다. 사건이 일단락된 이후, 퇴사한 그녀는 내게 지극히 사적인 내용을 담은 편지를 여러 통 보내 나를 다시 한번 두렵게 만들었다.


내가 겪은 억울한 일은 이것이 끝이 아니다. 미투 협박과 편지를 보낸 이후, 그녀는 꾸준히 스토킹을 하며 나의 삶을 염탐했다. 그녀는 용의주도하게 복수의 SNS 익명 계정을 만든 뒤, 나의 SNS 지인들에게 근거 없는 헛소리를 퍼뜨려 본인의 사회적 평판을 추락시키려 했다. 친구 K가 SNS에서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이상한 메시지를 받았다며 내게 사실 확인을 요구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그녀가 뒤에서 나를 그런 식으로 음해하고 다닌지도 몰랐을 것이다. 또한, 그녀는 한때 내가 교제하던 여자 친구 SNS에 선을 넘는 메시지를 보내 우리의 관계에 흠집을 내고 정신적 상처를 줬다. 나는 그녀에게 나의 삶에서 당장 사라지지 않으면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다행히 그녀는 그 뒤로 사라졌다. 아니,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방식으로 나의 삶을 염탐하고 있을지 모른다. 만약, 그녀가 이 글을 본다면 나는 묻고 싶다. 대체 나한테 왜 그랬냐고.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하냐고. 어째서 한 마디 사과도 하지 않았냐고.


그녀와 불미스러운 일로 엮이면서 나는 한 가지 분명한 점을 배웠다. "나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타인이다" 예를 들어, 만약 그녀가 나를 협박한 것이 공론화되었다면, 나는 사실과 존재와는 무관하게 미투 가십에 소모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건의 진위 여부와는 관계없이 내게는 '성범죄 구설수에 올랐던 사람'이라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이 으레 주장하듯, 서로 합의하에 관계를 맺거나 호감을 느낀 사이 조차도 아니다. 맹세컨대, 아.무.일.도 없었다) 마치 루카스처럼 말이다. 또한, 그녀가 SNS에서 유언비어를 퍼뜨릴 때, 다행히 친구 K는 사실 확인을 통해 오해를 풀었지만,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해당 메시지를 받았다면 그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오해를 해명할 기회도 없이 그냥 그렇고 그런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아 참, 내가 그녀를 통해 배운 또 다른 삶의 교훈을 추가하자면 다음과 같다. "세상은 넓고 미친 X은 많다. 미친 X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이 일을 겪고 나서 나는 누군가를 알아가거나 특정한 사건을 판단할 때, 타인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수용해 편견을 갖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어떤 이가 A가 최악이라고 말해도, 제대로 알고 지내다 보면 A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닐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체로 평판이 좋은 B가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숨겨왔던 추악한 본성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혹은, 모두가 맹비난하던 하던 대상이 알고 보니 무고한 피해자로 밝혀져 "아님 말고" 식의 마녀사냥이 된 경우 역시 결코 적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미루어볼 때,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나 성급한 판단은 지양하는 것이 백 번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타인에 대해 너무 쉽게 말하고 특정 사건에 대해 함부로 판단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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