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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Dec 13. 2020

추락하는 새는 날개가 있다

영화 <버드맨>을 보고 

*스포일러 주의*


슈퍼 히어로 버드맨으로 왕년에 잘 나갔던 스타 리건은 이제 다 늙어빠진 퇴물이다. (리건을 연기한 배우 마이클 키튼은 실제로 약 30년 전에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을 찍고 한때 아이돌처럼 인기가 있던 배우였다. 따라서 리건의 씁쓸한 처지는 마이클 키튼의 그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예전만큼의 돈과 명성이 없는 늙다리 배우 리건은 영화계를 떠나 새롭게 시작한 연극을 통해 재기를 꿈꾼다. 그러나 리건의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고, 연극에 함께 출연하는 한참 어린 후배는 그의 속을 긁는다. 그러던 와중, 누군가 리건에게 말을 건다. 그의 또 다른 자아이자 인생의 전성기를 함께 했던 친구인 버드맨이 말이다. 리건은 버드맨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착각을 하며 정신 착란증을 일으키고 사람들은 그의 기행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리건은 이렇게 살 바에 죽는 것이 낫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장난감 총을 실제 총알이 장전된 총으로 몰래 바꾸고 본인에게 발사하는 퍼포먼스를 행함으로써, 마지막 연극 무대를 픽션이 아닌 처절한 논픽션으로 탈바꿈시킨다.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우레 같은 박수를 치고 리건이 한 물 갔다며 연극에 악담을 퍼붓던 유명 평론가는 호평을 한다. 다행히 리건은 죽지 않고 병원에 입원한다. 그는 마침내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본인의 가슴에 아직 뜨거운 무엇이 남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남들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나 리건의 마음은 개운치 않다. 그는 창문으로 다가간다. 잠시의 휴지기. 그는 병원 밖으로 추락한다. 


영화를 보았을 때, 이상의 <날개>가 떠올랐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유명한 첫 구절로 시작하는 이상의 자전적 소설. 소설의 주인공은 매춘부의 기둥서방이다. 리건은 그나마 추억할 화려한 과거라도 있지만, 그 마저도 없는 <날개>의 주인공은 여자가 버는 돈으로 생활하며 무기력한 하루를 반복한다. 소설은 의식의 흐름대로 전개되는데, 주인공이 느끼는 극심한 자아 분열과 불안감을 보면 마치 버드맨과 대화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리건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버드맨>의 엔딩은 <날개>와 닮아있다. <날개>의 주인공은 정처 없이 방황하다 도착한 시내 백화점 옥상을 내려다보며 읊조린다. "날개야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리건 역시 병원에서 뛰어내림으로써 최후의 날갯짓을 한다. <날개>의 주인공이 실제로 옥상에서 뛰어내렸는지는 불분명하다. 마찬가지로 <버드맨>은 리건의 죽음을 카메라에 잡지 않는다. 대신, 뒤늦게 리건의 추락을 발견한 딸이 신기한 표졍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과연 리건은 버드맨으로 재림한 것일까? 추락하는 새는 날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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