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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Jan 17. 2021

친애하는 또라이, 기타노 다케시

긍정적인 영감을 주는 사람

"예술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예술가의 개성이 아닐까 한다. 예술가의 개성이 특이하다면 나는 천 가지 결점도 기꺼이 다 용서해 주고 싶다."
-윌리엄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中 -


긍정적인 영감을 주는 또라이를 일상에서 마주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반면에 부정적인 영감을 주는 또라이는 차고 넘친다. 애석하게도) 보통의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삶을 살기에 색다른 영감을 발산하지 못한다. 평범한 삶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매일 밋밋한 밥만 먹고살 수 없듯이 삶에는 적절하게 다양한 맛이 첨가될 필요가 있고, 긍정적인 영감을 주는 또라이들이 이런 조미료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라이들이 없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재미없었을 것이다. 맛에도 시큼한 맛, 달콤한 맛, 짠맛 등이 있듯이, 또라이들에게도 저마다의 개성이 있다. 개성은 또라이가 되기 위한 필수 전제조건이다.


가장 쉽게 또라이들을 접할 수 있는 통로는 예술을 소비하는 것이다. 이때, 모든 예술가가 또라이인 것은 아니다. 상당수는 진짜를 어설프게 흉내 내는 가짜이고, 더러는 부족한 재능을 엔터테인먼트로 벌충하려는 광대이다. 예술을 반복적으로 소비하다 보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안목이 생기고 자신에게 맞는 또라이가 어떤 기질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책과 영화를 통해 또라이들을 만나는 것을 선호한다. 영감을 주는 책이나 영화를 만나면 반드시 창작자를 확인하고 그가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는 편이다. 어쩌다 마음에 드는 작가나 영화감독을 만나면 마치 보물 상자를 발견한 느낌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가 구축한 세계에 접속하는 기쁨은 정말이지 끝내준다. (환상적이다, 황홀하다 처럼 점잖은 단어로는 도저히 '끝내준다' 만큼 이 기분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없다)

잔인하면서도 익살스러운 야쿠자 중간 보스의        모습을 다룬  영화 <소나티네> 中

작년에 내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준 또라이는 기타노 다케시였다. 그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영화 <소나티네> 였는데 이후 <하나비>, <기쿠지로 여름>, <피와 뼈>, <자토이치>, <키즈 리턴> 등의 영화를 연달아 보면서 그가 진짜라는 점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놀라운 점은, 기타노 다케시가 영화를 제작할 뿐 아니라 직접 연기까지 한다는 사실이다. 마치 클린튼 이스트 우드처럼 말이다. (클린튼 이스트 우드도 친애하는 또라이 중 한 명이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를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츤데레"이다. 그의 영화에는 서정성과 폭력성이 양면적으로 존재한다. 무뚝뚝한 어른과 장난꾸러기 아이 같은 모습을 동시에 지닌 캐릭터가 등장하고 (그런 캐릭터를 기타노 다케시 본인이 직접 연기한다), 폭력적인 장면과 평화로운 자연 배경이 대조적인 앙상블을 이룬다.


기타노 다케시는 영화 제작 및 연기뿐 아니라 <생각 노트>, <위험한 도덕주의자> 등과 같은 책도 썼을 정도로 다재다능한 예술가이다. 책을 읽어보면서 놀라울 정도로 나와 철학이 굉장히 유사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내가 그의 책을 통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기타노 다케시는 전반적으로 허무주의적인 사상을 가지고 세계를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또한, 그는 의리를 중시하고 감정 표현에 서투른 마초 기질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다. 무엇보다도 기타노 다케시는 굉장히 솔직하다. 그는 타인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기타노 다케시가 남긴 수많은 명언 중, 특히 다음은 구절은 상당한 영감을 주었다.


"연예인을 목표로 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다가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담담하게 살다 담담하게 죽어가는 쪽이 조금 더 편하지 않았을까 하고. 왜인가 하면, 역시 지금의 인생은 상당히 고통스러운 면이 있기 때문이다. 연예인이면서 영화감독이고, 비트 다케시이기도 하고 기타노 다케시이기도 한 지금의 인생은 정말로 지친다. 물체는 심하게 흔들리면 그만큼 마찰이 커진다. 인간도 심하게 움직이면 열이 난다. 옆에서 보면 분명 빛나고 있는 인간이 부러워 보일 것이다. 하지만 빛나고 있는 본인은 뜨거워서 견딜 수 없다. 하늘의 별도 몇천 광년 떨어진 먼 지구에서 보면 아름답게 빛나는 존재다. 좋겠다. 저 별처럼 반짝이고 싶어.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지 모르지만 그 별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몇억 도에 이르는 열로 타고 있으니까. 더욱이 다 타서 재가 될 때까지 그렇게 반짝거려야만 하니까. 이것은 정말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멋있는 척하는 게 아니다. 그간의 경험들에서 실감한 것이다. 그렇다고 죽는 ㅗ리를 하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어도 인생의 쾌감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성실하게 일하고, 가족을 지키며 자식을 키우는 삶.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생을 잘 살았다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유명해지건 좋은 영화를 만들건 그 만족감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걸 이 나이가 되어보니 알 것 같다. 그렇긴 하지만, 너는 어느 쪽 인생을 선택하겠느냐고 스무 살의 나에게 물었다면, 괴롭든 어떻든 뜨거운 인생을 선택하겠다고 대답했을 것 같다. 인생을 한 번 더 다시 산다 해도, 역시 나는 몇억 도의 고온으로 활활 타오르는 삶을 선택할 것이다."
-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 노트> 中 -  


내가 기타노 타케시에게 더욱 끌렸던 점은, 그가 엘리트 교육을 밭은 영화 제작자나 작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의 본래 정체성은 길바닥에서 출발해 자수성가한 개그맨이다. 대학교를 중퇴한 기타노 다케시는 택시기사, 주유소 직원, 클럽 웨이터 등을 전전하며 개그맨으로서 꿈을 갈고닦았다. 기타노 다케시는 '비트 다케시'란 예명으로 활동하며 일본의 국민 개그맨이 되는 데 성공했다. 상대방을 당황하게 하는 직설적인 막말이 그의 주특기였다. TV쇼에서 대중을 웃기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영화계 진출을 선언한다. 그러고는 호기롭게 작품성을 인정받고 영화계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천재란 이런 것일까? 남들은 하나도 잘하기 어려운 분야를 그는 다양하게 섭렵했고 예술적 경지를 인정받았다.


친애하는 또라이와 동시대를 산다는 것은 축복이다. 기타노 다케시가 살아생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리하여 내가 그로부터 긍정적인 영감을 받고 그의 작품을 "훔칠" 기회를 가지기를 희망한다. 그가 남긴 글을 보면, 아마도 그는 죽기 전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 틀림없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살아 있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가장 이상적인 것은 좋은 영화를 찍을 수 있을 때 죽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란 완성된 순간에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자꾸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자기 영화에 만족하는 일은 없다. 만족한다면 영화감독을 계속할 수 없다. 그래서 나도 살아가는 것에 흥미가 있느니 없느니 계속 이야기하면서도 막상 저승사자가 나타나면 이렇게 말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영화를 한 편만 더 찍게 해주지 않겠나? 인간이 나이를 들면 뻔뻔해지는 모양이다.
-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 노트>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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