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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Aug 21. 2021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영화<프리 가이>를보고

스포일러 주의


프리 시티는 전 세계 사람들이 즐기는 글로벌 액션 게임이다. 플레이어가 다양한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도시는 파괴되고 NPC들은 고통받는다. NPC란,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 캐릭터를 뜻하는데 쉽게 말해 인간 플레이어가 아닌 개발자가 창조한 코드이다. 프리 시티에서 은행원 역할을 하는 NPC 가이는 매일 무기력한 삶을 반복한다. 가이의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서 시리얼을 먹고 출근길에 똑같은 커피를 마신 뒤, 오후에는 은행 강도 미션을 수행하는 플레이어에 의해 얼굴이 짓밟히는 것이다. 어느 날 가이는 선글라스를 낀 여자 밀리를 보고는 한눈에 반하고 삶의 활력을 찾는다.


한편, 프리 시티에는 일종의 규칙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은 끼지 않은 사람들을 상대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글라스는 프리 시티 플레이어와 NPC를 구분 짓는 표식이기 때문이다. 선글라스를 끼면 온갖 기상천외한 게임 요소들로 도배된 "플레이어용" 화면이 눈앞에 뜬다. 인간 플레이어들은 NPC들이 어차피 가상의 캐릭터이기 때문에 그다지 흥미를 두지 않는다. 


밀리에게 다가가기 위해 고민하던 가이. 그는 용기를 내어 은행 강도 미션을 수행하고 있던 플레이어의 선글라스를 뺏는다. 선글라스를 처음 낀 가이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이질성을 체험하고는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여곡절 끝에 밀리와 가까워진 가이는 자신이 게임 속 NPC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충격에 빠진다. 제한적인 여건에도 불구하고, 가이는 자유의지를 실현하고 운명을 쟁취하기 위해 과감한 투쟁을 한다. 삶의 주체성을 회복한 가이는 단순한 NPC가 아닌 프리 시티의 혁명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세계의 영웅으로 거듭난다.


이 영화는 <트루먼 쇼>, <레디 플레이어 원>, <웨스트 월드>, <매트릭스> 세계관이 적절하게 버무려져 있다. 게다가 화려한 CG와 유쾌한 유머 코드 덕분에 상업용 영화로도 손색이 없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가이가 친구에게 선글라스 써볼 것을 권유하는 순간이었다. "너도 선글라스를 써 봐.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거짓이라는 것을 깨닫고 진실에 눈을 뜨라고! 우리도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어!" (정확한 대사는 기억 안 나는데 이런 뉘앙스) 머뭇거리던 가이의 친구는 결국 선글라스를 쓰지 못하고 진실을 외면한다. 그는 행복한 무지의 상태로 남아 NPC로 살아가기를 택한 것이다. 내게는 이런 상황이 무척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왜냐하면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한데, 이는 소수의 사람들만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보고 책 <죄와 벌>에서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신의 사상을 설명하는 대목이 떠올랐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정의에 따르면, 평범한 사람들은 게임의 재료인 NPC와 다를 바 없다. 그들은 사회의 배경이자 통계에나 잡히는 숫자일 뿐, 그 어떠한 인간적인 개별성을 지니지 못한다. "저는 다만 저의 주된 사상을 믿을 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 인간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대체로 두 부류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급 부류 (평범한 사람들), 즉 오로지 자신과 비슷한 자들을 생산하는 데만 기여하는, 말하자면 재료이며, 다른 하나는 본질적으로 사람들, 즉 자신이 속한 무리에서 새로운 말을 할 수 있는 천부적 재능이나 능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세분하자면 물론 끝도 없겠지만, 두 부류를 구분 짓는 특징은 상당히 명확합니다. 첫 번째 부류, 즉 재료는, 대체적으로 말해, 그 본성상 보수적이고 점잖은 데다가 순종하며 살고 또 순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그들은 순종할 의무가 있는데, 그것이 그들의 사명이며 그런다고 굴욕감을 느낄 이유도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전부 법률을 넘어서는 자들, 그 능력에 따라 파괴자이거나 그런 경향이 있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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