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을 하며
최근에 이직을 했다. 큰 조직에서 훨씬 작은 규모의 조직으로. 이직한 횟수를 세어보니 총 6번이다. 일을 한 지 9년 정도 됐으니 평균 근속 연수로는 1.5년인 셈이다. "내가 이렇게 엉덩이가 가벼웠구나"라는 점을 새삼 느낀다. 인턴 경력까지 따지면 약 10군데의 회사에서 일을 해본 것 같다. 외국계 기업, 국내 대기업, 스타트업 모두 다녀봤다. 음식 주문하는 인턴부터 철야 근무하는 실무자, 그리고 팀원들과 경영진 사이 중간 관리자 역할을 하는 팀장까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내가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완벽한 직장은 없다"
모든 일에는 저마다의 기쁨과 슬픔이 있다. 기쁨과 슬픔을 결정짓는 조건은 크게 1) 보상 (이라고 쓰고 돈이라고 읽는다); 2) 사람; 3) 재미; 4) 업무량 (시간)으로 구분되는 것 같다.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이며, 2가지만 적당히 충족되면 그럭저럭 괜찮은 직장인 셈이다. 불행히도 누군가의 일이 위의 조건 중에서 1가지 밖에 충족되지 않는다면 (혹은 아무 조건도 충족되지 않거나) 선택지는 두 개로 좁혀진다. 일을 그만두거나 미쳐버리거나.
나 같은 경우는 그동안 1)과 3)을 우선순위로 두었다. 4)는 그다지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었으며, 2)는 다행히도 운이 좋았다. 같이 일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격적으로나 업무적으로 훌륭한 경우가 많았다. 비즈니스적으로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전 직장 동료 및 상사들과도 지금까지 잘 지내는 이유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유대감을 쌓고 상호 신뢰를 형성하며 진실한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일의 가장 큰 기쁨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한편, 이번에 이직하면서 개인적으로 다짐을 한 것이 있다. 바로 큰 조직에는 웬만하면 가지 않겠다는 것. 물론 대기업에서 배운 것도 많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다만,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큰 조직이 지향하는 그것이 근본적으로 다르고, 내가 재미를 느낄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을 많이 느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이지만, 큰 조직은 "스킨 인 더 게임"을 하며 재미를 느끼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다. 선택의 결과물에 책임을 지지 않는 환경에서는 일의 본질보다는 정치와 가십, 그리고 적당한 나태함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큰 기쁨이다. 따라서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맞지 않고 나는 재미가 없다는 것일 뿐.
이직을 자주 하다 보면 5년 뒤에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 지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아마 지금의 일을 그대로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만약 일의 슬픔이 기쁨을 초과한다면, 그동안 그래 왔던 것처럼 미련 없이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할 계획이다. 다음에는 아마 전업 투자자+작가+ 바 사장님으로 사는 N 잡러의 삶도 선택지에 포함이 될 것 같다. (그동안 돈 열심히 벌어야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니체가 말했던 것처럼, 위험하게 (그리고 재밌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