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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Jan 01. 2022

순간아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2022년 새해를 맞아

새해구나. 매해 연말-연초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면 갈수록 변화에 무감각해진다는 것이다. 모든 것에 초연 해지는 덤덤함. 이것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는 것의 기쁨이자 슬픔이다. 2022년 새해가 되었는데도 아무런 기분이 안 든다. 의욕이 없거나 무기력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냥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 산에 가서 일출 보면서 야호!~ 소리 라도 질러야 할 것 같은데. 밖에 나가기가 너무 춥다. 집에 있어야지.


집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예전에 쓴 글을 읽어본다. 과거에 내가 쓴 글을 읽다 보면 때때로 이질감을 느끼곤 한다. "내가 이때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글을 썼나?" 하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 시점에서 다시 읽으면 낯 부끄러운 내용이 많다. 작년 이맘때, 계획을 세우지 않겠다는 계획이라는 글을 썼다. 다행히 이 글은 다시 읽어봐도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 특히 아래 구절. 


"계획을 세우지 않겠다는 자세는 우연의 장단에 리듬을 탈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다. 사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은 계획이 아닌 우연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다. 매사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들으면 허무하겠지만, 나는 '중대한 우연을 초래하는 운'이 개인의 삶을 결정짓는 가장 절대적인 변수라고 생각한다. 운은 이따금 우리를 찾아와 잠시 머물고 떠난다. 그러니까 운 좋게 일이 잘 풀린다고 해서 경거망동할 필요가 전혀 없다. 조만간 운이 떠날 테니까. 반대로, 일이 안 풀린다고 해서 너무 절망할 필요도 없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운이 찾아와 노크를 할 테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변덕스러운 우연의 변주곡에 리듬을 맞추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나오는 대사와 결이 유사하다. 아무래도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은 듯하다. "삶의 결정적인 순간들. 꼭 요란한 사건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이 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운명이 결정되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할 수 있다.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삶에 완전히 새로운 빛을 부여하는 경험은 소리 없이 일어난다. 그 놀라운 고요함 속에 고결함이 있다." 


2021년을 돌이켜보았다. 많은 기쁨과 슬픔을 느낀 한 해였다. 우선, 가장 기뻤던 점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었다. 물론 아직 부족한 점이 있지만, 적어도 수년 전 맨 땅에 헤딩할 때에 비하면 여건이 좋아진 것이 사실이다.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쓰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에 대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한 것. 이것이 내게는 가장 큰 성취이자 기쁨이었다. 


반면, 가장 슬펐던 점은 건강이었다. 상반기에 어깨 탈골 문제로 큰 수술을 받고 입원한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었을 때였는데. 역시나 기쁨과 슬픔은 공존하는 법이다. 아프니까 돈이고 명예고 뭐고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병원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우리의 삶이 실로 허망하다는 점을 다시금 깨달았다. 


2022년 원대한 계획은 없다. 나는 불확실성의 바다에 몸을 던졌고 우연이 연주하는 장단에 리듬을 탈 준비가 되어 있다. 진실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좋은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건강하고 재밌게 사는 것. 순간을 가벼이 여기지 말고 영원한 하루를 만끽하는 것. 결국은 시간만이 보편적으로 유한한 재화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이 야속하고 추억이 한 때의 꿈만 같다. 


순간아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추신: 내년에 이 글을 다시 읽을 때,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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