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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Apr 17. 2022

니체는 미치지 않았다

토리노의 말

"1889년 1월 3일 토리노에서 프리드리히 니체는 비아 카를로 알베르토 6번 문 밖으로 나선다. 산책을 하거나 우편물을 가지러 갈 생각이었다. 그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마부가 말 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말은 움직일 줄 몰랐다. 마부는 참다못해 채찍을 휘두르고 만다. 니체는 인파로 다가가서 분노로 미쳐 날뛰는 마부의 잔혹한 행동을 말리려고 한다. 건장한 체구의 니체가 갑자기 마차로 뛰어들어 말의 목에 팔을 두르더니 흐느낀다. 이웃이 그를 집으로 데려갔고 그는 침대에서 이틀을 꼬박 조용히 누워 있다가 의무적인 마지막 말을 웅얼거린다. 어머니, 전 바보였어요"
- 영화 <토리노의 말> 나레이션 中 - 

"신은 죽었다"는 말을 남기며 기존의 패러다임을 뛰어넘은 새로운 철학관을 제시한 니체. 니체는 토리노의 말 사건 이후 정신 질환 판정을 받고 약 10년을 앓다가 초라하게 죽었다. 역사는 위대한 철학자의 말년을 미치광이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니체가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품성과 천재성을 동시대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일 뿐. 


아래 영상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내가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생각을 선명하게 구체화 한 느낌. 내가 보기에, 인간은 단지 지구 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 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별 볼일 없는 종이 어쩌다 운 좋게 지구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을 뿐이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우리는 단지 자연이 빚어낸 피조물일 뿐이다. 인간이 아무리 잘난 척을 해봐야 자연과 연결된 태초의 탯줄을 온전히 끊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종을 착취하는 현 상황을 부끄럽게 여길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금 원시 사회로 회귀해 인간도 동물 농장의 일원으로 살아가자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최소한의 배려와 부끄러움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mG1_vtBmB7g&t=2s


흥미로운 점은, 밀란 쿤데라 역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위 주제에 대해 다뤘다는 것이다. 이 책을 3번 넘게 읽었지만 이제야 해당 문구를 발견했다. 역시 좋은 책은 아무리 여러 번 읽어도 작가가 의도한 메시지를 온전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법이다.


"내 눈앞에는 여전히 나무둥치에 앉아 카레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류의 실패에 대해 생각하는 테레자가 있다. 이와 동시에 또 다른 이미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토리노의 한 호텔에서 나오는 니체, 그는 말과 그 말을 채찍으로 때리는 마부를 보았다. 니체는 말에게 다가가 마부가 보는 앞에서 말의 목을 껴안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그 일은 1889년에 있었고, 니체도 이미 인간들로부터 멀어졌다. 달리 말해 그의 정신 질환이 발병한 것이 정확하게 그 순간이었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바로 그 점이 그의 행동에 심오한 의미를 부여한다. 니체는 말에게 다가가 데카르트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던 것이다. 그의 광기 (즉 인류와의 결별)는 그가 말을 위해 울었던 그 순간 시작되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니체가 바로 그런 니체이며, 마찬가지로 내가 사랑하는 테레자는 죽을병에 걸린 개의 머리를 무릎에 얹고 쓰다듬는 테레자다. 나는 나란히 선 두 사람의 모습을 본다. 이들 두 사람은 인류, '자연의 주인이자 소유자'가 행진을 계속하는 길로부터 벗어나 있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中 - 


채찍을 맞고 있는 말을 껴안고 흐느끼던 그 순간, 니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그가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야만성과 오만함, 그리고 자연에 대한 배은망덕함. 속에서 차오르는 역겨운 구토를 꾹꾹 눌러 삼키며 니체는 말에게 이렇게 속삭이지 않았을까. "미안해. 내가 저들을 대신해 사과할게" 그 순간 니체는 인간의 지위를 포기하고 말과 동등한 자연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자 그동안 자신이 인간 똥밭을 구르며 보냈던 시간이 얼마나 무의미했는지 깨닫고 "엄마, 나는 바보였어요"라는 말을 뇌까리지 않았을까. 니체는 미치지 않았다. 그리고 니체가 인간 사회를 탈퇴한 말년의 삶이 보통 인간들의 그것보다 훨씬 행복했을 것 같다. 나는 이 점에 대해서 조금은 확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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