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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Dec 30. 2016

행복의 조건

Time value of happiness

1년 전쯤이었나 픽사가 만든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쁨, 슬픔, 분노, 까칠, 소심이라는 감정을 대변하는 캐릭터들을 의인화하여, 이 감정들의 주인인 한 소녀에게 벌어지는 일들과 감정변화를 보여주는데 무척 재밌게 본 기억이 있다. 내게 특히나 인상 깊었던 부분은 영화의 "핵심 기억"이라는 콘셉트이었는데, 살면서 기억에서 잊히지 않을 만한 중요한 사건들과 당시에 반응하는 감정들이 핵심 기억이라는 형태로 저장이 되어 사람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당신이 1년 전 오늘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를 기억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처음 자전거를 탄 순간, 처음 사랑하는 사람과 키스를 한 날, 처음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해외여행을 간 순간, 처음으로 커다란 실패를 한 후 남몰래 울어본 날 등과 같은 중요한 사건들은 어떤 감정의 형태로든 당신의 머릿속 핵심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 등장하는 기억 저장소

내게도 물론 이런 핵심 기억들이 있는데 연말이 되니 문득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무려 20여 년 전 그 날을 나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는 크리스마스 즈음이었는데 어느 거리에 나가도 황금빛 캐럴이 울리며 한껏 분위기가 달아오른 연말이었고 나는 아주 어린 초등학생이었다. 하지만 나는 일찍이 산타클로스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더 이상 밤중에 몰래 선물을 놓고 가시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어 졸린 눈을 비비며 깨어있지 않는, 그런 또래에 비해 조금 조숙한 꼬마 아이 었다. 부모님도 이제는 머리가 굵어진 자식의 머리맡에 몰래 선물을 놓고 가시는 수고를 덜으셨고 언제부터인가 내게 깜짝 선물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던 중, 여느 때처럼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나왔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386 컴퓨터가 놓여있었다. 당시에 나는 게임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컴퓨터를 가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기에 나는 소리를 지르며 부모님한테 안겼고 부모님은 본인들의 깜짝 선물이 통해 무척이나 흡족해 하셨던 기억이있다. 


그때 내가 느꼈던 기쁨의 감정은 핵심 기억으로 남아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내게 선명히 남아있다. 아마도 나는 치매에 걸리지 않는 한 죽기 전까지 그때의 행복을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나는 이제 경제활동을 하는 사회인이고 가끔씩 나 자신을 위해 수백만 원 정도는 큰 마음먹고 쓸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게 되었다. 아마도 내게 컴퓨터가 필요하다면 당장 전자상가에 가서 전시된 컴퓨터를 산다고 해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신용카드를 긁을 것이다. 게다가 기술의 발달로 지금 사는 컴퓨터는 당시 내게 엄청난 기쁨을 주었던 386 컴퓨터보다 수 백배 이상의 성능을 자랑하는 고성능 컴퓨터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게 아무리 내가 현재 경제력이 있어 훨씬 성능이 좋은 컴퓨터를 언제든 살 수 있다고 해도, 아마 나는 아마 20여 년 전 내가 꼬마일 때 느꼈던 기쁨의 감정은 느끼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 내가 느꼈던 행복은 그 당시였기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금융에 등장하는 가장 기초적인 개념 중 하나는 Time Value of Money이다. 즉 돈의 가치는 이자율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돈의 현재가치와 미래가치가 다르다는 것인데, 어려운 개념이 아니기에 다음의 예를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당신이 열심히 일한 노동의 대가로 100만 원이라는 금액을 지금 당장 혹은 10년 후에 지급하는 것 중에 택하라고 하면, 백이면 백 고민할 것도 없이 지금 당장을 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100만 원이라는 돈으로 당신은 소비를 할 수도 있고 은행에만 묵혀 둔다고 해도 예금 금리에 의해 10년 후에는 100만 원보다 훨씬 큰 금액이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행복도 비슷하다고 본다. 행복의 가치는 현재와 가까울수록 높은 값을 지닌다. 즉, 먼 미래의 행복보다는 지금 당장의 행복이 주는 기쁨이 더 클 것이다. 마치 20여 년 전 내게 커다란 기쁨을 줬던 386 컴퓨터 대비 월등히 성능이 뛰어난 요즘 컴퓨터가 내게 더 이상 큰 기쁨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행복은 "지금 당장, 현재라는 순간"에 가장 큰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행복을 미루며 살아간다. 오늘의 행복을 희생하면 더 큰 미래의 행복으로 보상받을 것처럼. 그러고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현재의 행복"을 가볍게 여긴다. 실험을 통해 주어진 마시멜로를 다 먹지 않고 절제력을 보여 참은 아이들이 나중에 더 성공했다는 "마시멜로 이론"이 한 때 유명세를 탔지만, 이 성공한 아이들이 과연 얼마나 더 "행복"을 느끼면서 살지는 의문이다. Time Value of Money 처럼 Time Value of Happiness가 참이라면, 왜 아직 실현되지 않은 낮은 가치의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희생해야 하는 걸까. 행복이라는 개념이 워낙 주관적이기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매일매일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작은 행복을 소중히 여기길 바라며, 2017년에는 모두에게 기쁨의 핵심 기억이 많이 생기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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