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돈의 교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중섭 Jun 19. 2022

돈에 관한 전문가를 맹신하면 안 되는 이유

#11

돈, 경제, 금융, 투자에 있어서, 전문가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맹신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가 아무리 유명하고, 똑똑하고, 훌륭한 트랙 레코드를 보유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정답을 모르니까. 특히 돈에 대해서는 말이다. 돈에 대해 자기가 잘 안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떠드는 사람을 대할 때는 두 가지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 그가 돈을 잘 벌고 다루는 스킬이 탁월한 지, 그리고 행운을 실력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말이다. 전자를  검증하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후자를 검증하는 것은 어려운 편이다. 왜냐하면 행운으로 쌓아 올린 부를 실력으로 유지하는지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다소 오랜 시간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행운과 실력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루는 것으로 하고, 이번 장에서는 돈에 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얼마나 자주, 그리고 충격적으로 틀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 다뤄보기로 하자.


독자들에게 몇 가지 사례를 공유하고 싶다. 우선, 다음의 사례를 보자. 1990년대 명성을 떨친 LTCM (Long Term Capital Management)라는 헤지펀드가 있었다. LTCM 은 내로라하는 금융 공학 전문가들이 모인 그야말로 ‘어벤저스’ 팀이었다. 파생상품의 가치를 결정짓는 ‘블랙-숄즈’ 모델을 개발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머튼과 마이런 숄즈, 그리고 월가에서 트레이더로 이름을 날리던 존 메리웨더. 그들은 LTCM을 창업한 이후 연 20~50% 대의 수익률을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시장 참여자들은 화려한 경력과 높은 수익률을 보여준 LTCM을 신뢰해 상당한 돈을 빌려줬고, LTCM은 레버리지에 기반한 차익거래, 공매도 전략으로 몇 년 동안 상당한 수익을 냈다. 그러나 LTCM 이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바로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며 러시아 국채가 휴지조각이 된 것이다. 러시아 국채 매수 포지션에 상당한 금액을 베팅하고 레버리지가 많았던 LTCM은 이 사건으로 순식간에 무너졌고 2000년 최종 청산했다. 시장에 절대 질 것 같지 않던 천재들에게 돈을 맡겼던 투자자들은 허무하게 돈을 잃었다.


한편, 이번 사례는 일개 펀드의 파산이 아닌 세계 경제 침체를 부른 사건이다. “왜 아무도 위기가 발생할 걸 미리 예상하지 못했나요?” 2008년 금융위기가 발발했을 당시, 유명 경제 학자들이 모인 행사에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던진 뼈 있는 질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의 진원은 미국 부동산 시장 및 파생상품이었다.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된 저금리 현상이 장기화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다. 복잡한 파생상품이 개발되어 누구나 손쉽게 대출을 통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고 금융, 부동산 회사는  막대한 돈을 벌었다. 그러나 금리 인상이 재개되자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고, 이와 연관된 파생상품 포지션에 노출되어 있던 금융 기관은 막대한 손실을 입고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된다. 그 결과, 리먼 브라더스, 베어스턴스 같은 대형 금융 회사가 파산했고 세계 경제 및 금융 시장은 무시무시한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이토록 파괴적인 일이 발생할 줄 몰랐던 당대 전문가들은 눈을 껌뻑 거리며 월가의 몰락을 지켜봤다.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다음 사건을 살펴보자. 2022년, 가상자산 시장의 뜨거운 감자는 단연코 ‘테라 (루나)-UST 스테이블 코인’이었다. 루나는 테라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기축통화 역할을 하는 코인이고, UST는 1달러에 가치가 페깅 된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이다. UST의 작동 방식은 다음과 같다. 1달러어치의 루나는 1 UST의 가치와 동일하고 1 UST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1 루나가 소각돼야 한다. 만약 UST 가격이 0.98달러라면 차익 거래자는 1 UST를 1달러어치의 루나로 바꾸고 0.02달러를 얻는다. 이 과정에서 UST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UST 가격은 1달러에 수렴한다. 반대로 UST 가격이 1.02달러라면 차익 거래자는 1달러어치의 루나를 1 UST로 바꾸고 0.02달러를 얻는다. UST 공급이 증가하고 UST 가격은 1달러에 수렴한다. 일각에서는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의 지속가능성에 우려를 표했지만, 일부 테라 블록체인 관계자 및 낙관론자들은 비관론자들을 ‘첨단 블록체인 기술 및 금융 공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얼뜨기’ 취급을 했다. 우려를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테라 블록체인 생태계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시총 기준, 루나는 글로벌 코인 시총 상위 10위, UST는 글로벌 스테이블 코인 상위 4위에 이르는 기염을 토해냈고,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프로젝트가 되었다. 그러나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대량의 매도세로 인해, 루나와 UST 가격이 폭락하면서 UST 페깅이 깨졌고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루나와 UST 가격은 모두 99% 이상 폭락했다. 이 사태로 인해 테라 블록체인에 베팅한 유수의 가상자산 전문 투자사와 기업이 파산했고, 전문가들의 말만 듣고 투자한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보았다.  


왜 일까? 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위와 같은 위기를 예견하지 못하고 틀렸을까? 왜 그들은 신호와 소음을 미리 구분하고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을까? 이에 대한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전문가의 무능함. 즉, 전문가라 일컬어지는 그 사람은 사실 이론에만 능한, 똑똑한 바보이고 실상은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경우이다. 이런 부류의 전문가는 일반적으로 식자층이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지위에 있지만, 오만한 무지로 (설사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인해 남을 속이는 경우가 많다. 애석하게도, 나는 오늘날 현대 사회를 무능한 전문가도 쉽게 활개치고 다닐 수 있는 환경이라고 진단한다. 관료주의가 팽배할수록, 온라인 미디어 대중화로 인해 정보의 유통량이 많아질수록, 바보도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쉽게 조성되는데 현대사회가 이 조건들에 부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전문가가 의도적으로 본색을 감추고 상대방을 속이는 경우이다. 언행을 달리 한다든지 (공개적으로 특정 종목을 추천하고 뒤에서 매도하는 행위), 사회 혼란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거짓말을 한다든지 (주로 고위 공무원이 하는 수법), 수수료를 극대화하기 위해 고객에게 불필요한 투자 조언 및 상품 가입을 권유한다든지, 자신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컨설팅을 한다든지 하는 등의  행위가 이에 속한다. 이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스킨 인 더 게임’ (선택에 책임을 지고 문제에 참여하는 것)을 하지 않는 편인데, 하는 일에 비해 비교적 높은 연봉을 받고 프로페셔널한 화이트 칼라처럼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이런 부류의 전문가들이 어떤 주장을 피력할 때면, 그것이 진심 어린 의견인 지 (설사 틀리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교묘한 트릭인 지에 대해 의심할 필요가 있다.



===================================================================

사이다 경제를 운영하고 있는 출판사 경이로움과 계약을 맺고 <어바웃머니>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바웃머니> 온라인 서점 링크

교보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0747913

예스24: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7015854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9309656


독서할 시간이 없는 분들을 위해 책을 리뷰하는 '21세기 살롱'이라는 온라인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3분만 투자하면 책 한 권의 개괄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독은 큰 힘이 됩니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https://www.youtube.com/watch?v=6o9KC93yBzA&t=2s

매거진의 이전글 공부 머리와 돈 버는 재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