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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돈의 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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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Jul 02. 2022

돈과 행운과 실력에 관한 고찰

#12

수많은 부자들을 관찰하면서 깨달은 진리가 있다. 바로 모두 운이 억세게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부모를 잘 만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금수저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자수성가한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운이 상당히 작용한다. 특출난 재능 및 의지를 가지고 있거나, 인생을 바꿀 귀인을 만나거나, 특정한 시기에 부상하는 사업 아이템 혹은 투자처를 발견하거나 하는 등의 요소는 실력뿐 아니라 운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문제는 성공과 실패라는 결괏값에 영향을 미치는 행운과 실력이라는 변수를 정량적으로 수치화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잘 되면 자기 실력 덕분이고, 안 되면 운이 없었다는 변명을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일이 잘 풀리거나 풀리지 않을 때 우리는 이것이 운 때문인지, 아니면 실력 때문인지 좀처럼 갈피를 잡기 어렵다. 사실 이는 똑똑한 사람에게도 풀기 어려운 난제인 듯하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실러에게 누군가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투자와 관련해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들 중에서 당신이 가장 알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그는 이렇게 답했다. “결과가 성공적일 때 행운의 정확한 역할이 궁금합니다.” 나는 이것이 무척 현명하고 진실한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위 질문의 맥락을 확장시켜 ‘투자’를 ‘돈’으로 치환해도 의미는 일맥상통한다. 돈을 성공적으로 잘 벌었을 때, 어디까지가 실력이고 어디까지가 행운의 역할인가? 이를 고찰하기 위해 다음의 사례들을 보자.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에게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을 창업해 큰돈을 벌고 IT 산업에 획을 그었다는 것 외에 모두 1955년생으로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1975년과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창업한 1976년은 모두 PC 대중화가 시작될 무렵의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개인용 PC가 보급되기 시작했고 두 청년이 차고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는 성공 가도를 달린다. 만약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미국에서 자라지 않고, 실리콘 밸리 컴퓨터 문화를 일찍 접하지 않았으며, 조금만 더 늦게 (혹은 일찍)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정도의 실력이면 아마 다른 분야에서도 충분히 성공했을 수 있겠지만 (실제로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난 이후 픽사에 합류해 픽사가 세계 최고 애니메이션 기업으로 거듭나는데 일조했다), 그들이 오늘날 이룩한 마이크로소프트, 애플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국내의 사례를 통해서도 발견된다. 한국 IT 업계의 살아있는 신화라 할 수 있는 네이버, 카카오,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을 창업한 기업가들의 나이는 대체로 유사하다. (네이버 - 이해진: 1967년생, 카카오 - 김범수: 1966년생, 넥슨 - 김정주: 1968년생, 엔씨소프트 - 김택진: 1967년생, 넷마블 - 방준혁: 1968년생) PC 대중화 흐름을 잘 탄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1세대 IT 기업인들 역시 인터넷이라는 순풍을 타고 부의 추월차선을 달리며 저마다의 제국을 건설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주지하고 싶은 사실은, 앞서 언급한 자수성가형 부자들은 모두 운이 좋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좋은 시기에,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운 좋게’ 사업에 성공했다. 물론 그들의 실력이 출중한 것은 사실이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그들이 이렇게까지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을 것이다. 작은 부는 개인 혼자서 이룰 수 있지만, 큰 부는 반드시 타인의 도움과 더불어 천운이 따라야 한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다. 운이 칠 할이고 실력이 삼 할이라는 뜻으로, 일이 잘 풀리고 안 풀리고는 운에 달렸다는 뜻이다. 나는 돈에 관해서는 운칠기삼이 아니라 운구 기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특히 사업보다는 투자의 영역에서 더더욱 그렇다. 실력이 없는 바보도 운만 따라주면 충분히 투자 (이럴 경우 투자와 투기의 구분이 불분명하다)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다.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펀드 매니저와 운 좋은 바보. 상황에 따라 이 둘의 투자 수익률은 크게 차이 나지 않을 수 있고 오히려 운 좋은 바보가 펀드 매니저를 능가할 수 있다. 심지어 대세 상승장에서는 운 좋은 바보뿐 아니라 원숭이도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운을 자신의 실력으로 착각하고 경거망동하다 보면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 쉽다. 비극의 스토리는 일반적으로 이런 식이다. 지인의 권유로 소액 투자를 시작했는데 수익이 난다. 투자 원금이 컸다면 좋았을 걸 이라는 아쉬운 생각을 한다. 조금씩 금액을 늘리자 어느새 투자금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불어난다. 투자 수익을 통해 돈을 버는 금액이 커지면서 회사를 다니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고 월급이 우습게 느껴진다. 본인이 투자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착각에 빠지고 전업 투자자로 먹고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주변에 큰돈을 벌고 퇴사를 했다는 무용담이 들리기 시작하면서 자기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기간에 더 많은 투자 수익을 내기 위해서 무리하게 레버리지를 사용한다. 그러다 대세 상승장이 끝나고 파티에 음악이 꺼진다. 투자 수익률은 어느새 마이너스가 되고 ‘리벤지 트레이딩’ (손실을 즉각적으로 만회하기 위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트레이딩)을 하는 과정에서 손실액은 더 커진다. 투자 손실액은 감당할 수 없는 규모로 커지고 그는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능력자는 이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나중에 훌륭한 투자자로 거듭날 잠재력이 있지만, 운에 편승한 상당수 바보들의 경우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좌절의 늪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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