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유로존은 지속될까?

에이스가 한 명 있다고 좋은 팀인 것은 아니다

얼마 전 2주간 혼자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스페인, 포르투갈 곳곳을 돌아다녔는데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날씨와 여유 넘치는 사람들의 모습, 맛있는 음식 등 모든 것이 훌륭했던 여행이었던 탓에 무척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중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스페인 사람들 특유의 여유로움과 흥겨운 문화였다. 특히나 스페인 남부지방인 안달루시아 지방 사람들에게서는 뜨거운 햇볕 속에서 낮부터 흥겹게 술 먹는 문화가 만연한데, 왜 스페인에서 낮잠을 자는 시에스타가 생겼는지 대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문득 몇 년 전 처음 유로존 위기가 불거지면서 그리스를 포함한 재정이 좋지 않은 남유럽 국가들을 PIGS (Portugal, Italy, Greece and Spain)라고 불렀던 것이 생각나서 찾아보았다. 스페인의 청년 실업률은 무려 40%가 넘는 수준으로, 젊은이들 중 절반 꼴로 실업자라는 것인데 나는 당시 엄청나게 높은 수치에 경악을 했다. 우리나라의 청년실업률은 10%남짓한 수준인데도 우리는 매스컴에서 매일 경제나 취업 관련 우울한 기사를 접하고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은 아픈 청년들이 꽤나 많은 거 같은데, 스페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아직 본격적인 헬조선에 진입하지 않은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놀라웠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딜 가나 거리에 활력이 있어 보이고 젊은이들이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즐기는 모습에 "역시 유러피안은 유러피안이군. 아시아 사람들은 너무 바쁘게 살려고 하는 것 같아. 저런 자유로운 삶이 부럽다"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후 우연히 현지에서 오래 사신 교민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보고 느꼈던 것이 얼마나 얕고 가벼웠던 것인지 느끼게 되었다.

Young generation unemployment rate.jpg 다른 나라 대비 월등히 높은 스페인 청년 실업률

나: "확실히 스페인 사람들은 듣던 대로 다른 것 같네요. 찾아보니 청년실업률이 40%가 넘는데도 사람들이 너무 평화로워 보이고 어딜 가도 활력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여유가 느껴지네요"


현지 교민: "지금 관광객이시니까 겉으로 좋은 것만 보여서 모르는 거지 속 사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 "네?, 이 친구들도 그러면 우리나라 젊은이들처럼 취업이 안돼서 전전긍긍해하고 불안해하는 게 있나요?"


현지 교민: "정도의 차이는 있곗지만,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나 스페인은 이슬람 문화도 있고 모로코 등 외부에서 이민자들이 많이 오는데, 어떤 이들은 이런 사람들이 자신들의 터전을 위협하고 밥그릇을 뺏어간다고 생각해서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간 것이 있었는데 바로 브렉시트 (Brexit)와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이다. 사전조사 및 여론의 대다수는 브렉시트가 일어날 것을 예측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영국은 유로존 탈퇴를 선언했고 금융시장은 요동을 쳤다. 미 대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초기에 트럼프의 승리를 장담하지 않았지만 그는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자국 우선주의 심리를 잘 파고들어 대통령에 당선이 됐고 이 또한 금융시장에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Trump.jpg 미 대통령 트럼프

내 생각은 이러한 예측하지 못한 결과의 시발점은 사람들이 다 먹고살기 힘들어서라고 생각한다. 본디 사람이 먹고 살만하면 어느 정도의 관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성장보다는 분배를 할 때라고, 주변에 나보다 훨씬 살기 힘들어하는 빈민들을 보라고.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울 경우 사람들은 여유가 없어지며 실의에 빠지게 마련인데, 이때 정치인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표를 얻으며 집단의 지지를 받는 경우 중 하나는 공동의 적을 만드는 것이다. 자신들의 오리진이 아닌 이민자나 난민 같은 사람들을 자신들의 밥그릇을 뺏어가는 "침입자"로 규정함으로써, 이 사람들을 배척하는 길이 자신들의 밥그릇 및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라는 이 프레임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는 과거 나치가 보여줬던 광기 어린 집단 대학살에서도 드러난다.


스페인에서 올리브에 와인 먹으면서 평화롭게 햇빛을 즐기던 차에 든 과대망상일 수 있겠으나, 나는 스페인 현지 교민의 말을 듣고 문득 유로존의 지속가능성에 의구심이 들었다. 여럿이서 하는 스포츠나 학교 다닐 때 팀플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팀플레이가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나 혼자서 잘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팀원 간의 호흡이 정말 중요한데, 보통은 팀을 이끌어가며 평균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이는 리더가 있게 마련이고 평균 이하의 구성원들이 있게 마련이다. 물론 유로존이 공산주의와 같은 콘셉트는 아니지만, 어쨌든 단일 통화를 사용하는 공동 경제 지구로서 같은 배를 탄 셈인데, 사실상 경제적으로 튼튼한 독일이 유로존을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독일의 리더십이 얼마나 다른 구성원들의 불만을 억누르고 난민을 받아가며 다른 경제적으로 어려운 유로존 국가들을 이끌어 나갈지 의문이다. 아마도 성실히 세금을 납부하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독일의 어떤 중산층은 이런 일련의 상황들이 자신들의 미래 연금을 줄이고, 자식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요소로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다른 유로존 국가들의 어떤 국민들은 경제가 힘들어진 원인이 유로존 때문이며, 유로존을 탈퇴하고 자국민을 우선하는 공약을 내거는 정치인을 지지할지도 모른다. 모든 팀플레이는 팀원들의 손발이 맞아야 된다. 우리는 에이스가 한 명 있다고 해서 그 팀이 경기에서 승리하리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스포츠에서 너무나 많이 봐왔다.


2017년에는 독일 프랑스 대선 등 유로존에 영향을 끼칠만한 굵직한 선거들이 예정돼있다. 이미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을 경험한 미디어들은 극우파들이 유럽의 정치권을 장악하며 유로존이 붕괴될 수 도있다는 바람을 넣으며 국수주의를 경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언젠가는 유로존이 붕괴되리라고 생각하는데, 2017년이 그 원년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유로존 선거 전에 인버스 (지수가 내려가는 것에 배팅하는 상품)에 투자하는 것을 고려해봐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스냅챗 (Snapchat) vs. 페이스북 전쟁 승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