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출판을 계약하다
얼마 전 한국을 다녀간 사이, 출판사 담당자와 만나 인사도 드리고 정식으로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3-4월 중에 책을 출판하기로 하였다. 그동안 시간을 쪼개가며 커피를 들이키며 썼던 원고들을 누군가 알아봐 주고 사준다는 것은 분명 내 머릿속에 멋진 핵심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그런데 계약서에 사인하는 순간보다 나를 더 고무시켰던 것은 출판 담당자의 말이었다.
출판사 담당자: 저자님 글을 읽으면서 참 열심히 살아오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과찬이세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출판사 담당자: 그런데 저도 저자님 덕분에 저도 꿈이 하나 생겼습니다.
나: 네? 어떤 건가요.
출판사 담당자: 예전부터 막연히 SF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저자님 글을 읽으면서 남의 글을 편집하는 것이 아닌 나의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 저도 글을 써서 제 이름으로 된 책을 출판하고 싶습니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솔직히 좀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대단하거나 성공한 사람도 아닌데, 이 분은 내게서 영감을 받고 SF소설을 쓴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분이 과연 SF소설을 쓸지, 설사 쓴다고 하더라도 그 소설이 마션처럼 대박을 터뜨릴지는 모를 노릇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실로 짜릿한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보통 역사책이나 방송에 나오는 유명인들로부터 영감을 받는 것에는 익숙해져 있지만,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좋은 영감을 준다는 것은 월 3만 원씩 빈민국에 경제적 지원을 해주거나 연탄을 나르는 것과는 별개의 선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봉사활동을 하시는 분들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으며 다만 다른 종류의 선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물질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은 당장의 배를 채울 수는 있지만, 타인에게 좋은 영감을 주는 행위는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내게도 강력한 영감을 준 사람들이 있는데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다. 두 사람의 전기 및 인터뷰 등을 많이 보면서 느낀 점은 참 그릇이 큰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다. 스티브 잡스는 혁신을 통해 21세기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인 스마트폰으로 우리의 삶을 바꿔놓았고, 엘론 머스크는 전기차를 통해 스마트폰이 그랬던 것처럼 인류의 미래를 바꿔나가고자 한다.
그들이 인류를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것인가라고 고민했던 것과 비교하면 내가 했던 고민들은 참으로 단편적이고 미약한 것이었음에 많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반성했던 기억이 있다. 특히나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졸업식에서 했던 축사는 여전히 깊은 울림으로 내 가슴속에 남아있는데, 시간을 내서 꼭 보시길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7aA17H-3Vig
과거에 누군가가 나에게 삶의 목표가 무엇이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아마 성공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일터에서, 사회에서 성공한 남자가 되기를 꿈꿨고 입신양명을 삶의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왔다. 하지만 회사에서 잘릴뻔한 이후 나의 삶의 목표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남들에게 좋은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자”로 변했고 글쓰기를 통해 이를 실천하고자 하며, 부디 이번에 출간될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감을 주었으면 한다. 물론 모두에게 좋은 영감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팬이 있으면 안티도 있기 마련이겠지. 하지만 타인에게 좋은 영감을 주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나는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굳게 믿는다.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시를 첨부한다. 우리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영감을 준 사람이었을까?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 닿는데 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 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위에
지금은 인정머리 없는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랫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 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하니 손을 뻗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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