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빅브라더
요즘에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이란 개념이 생소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그때도 핸드폰은 많이 보급화되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SNS, 카톡 대신에 통화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핸드폰으로 지인들과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특히나 가족이나 친구, 애인의 전화번호는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저절로 외워지게 마련이었는데, 필자도 10년 전 군 복무를 할 당시 가까운 지인들의 전화번호는 뚜렷하게 외웠던 것이 기억이 난다. 특히나 당시 교제하고 있던 여자친구의 전화번호는 늘 공중전화부스만 가면 저절로 누르던 번호였기에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 까먹으래야 까먹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물론 까맣게 잊어버렸지만.
문득 생각해보니 놀랍게도 나는 지금 내 번호를 제외하고는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가 없다. 심지어 가족들의 번호도 예전에야 외웠었지만 종종 번호를 바꾼 이후로는 외워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번호를 외우지 않아도 너무나 쉽게 스마트폰을 통해 연결이 될 수 있고 핸드폰을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전화번호부가 백업되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추측해보건대,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과거 피처폰을 쓰던 때보다는 현재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가 많이 없으리라.
왜 우리는 더 이상 전화번호부를 외우지 않게 된 것일까? 비단 전화번호를 외우는 것뿐만 아니라 나는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면서 우리가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힘도 점점 잃어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TV, 신문, 라디오 등을 통해 지엽적으로 접했던 소식들이 이제는 전 세계 뉴스를 실시간으로 인터넷, 모바일을 통해 접할 수 있다. 게다가 페이스북과 같은 거대 SNS 업체들은 알고리즘을 통해 당신의 취향을 파악하여 당신이 관심을 가질만한 정보들을 끊임없이 노출시킨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우리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지만 여전히 지식의 갈증을 느낀다라고 말했다는데, 어쩌면 우리는 지식에 대한 갈증조차 느끼지 못하고 미디어가 끊임없이 떠먹이는 정보를 소화하기에 바쁜 것은 아닐까.
어릴 적 조지 오웰의 1984를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다. 절대적 독재자 빅브라더 앞에서 무기력하게 저항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허무한 결말이 무척이나 인상이 깊었다. 디지털 시대의 빅브라더는 탱크와 군인들을 앞세우는 자가 아닌, 정보를 통제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페이스북이 미래형 독재자에 가장 가까운 후보라고 생각한다. 페이스북은 세상을 연결하는 플랫폼이라는 그럴싸한 명분 아래 SNS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12억이 넘는 유저들을 바탕으로 한 막대한 광고 매출로, 위협이 될만한 유사 서비스들은 죄다 사들였고 (와츠앱, 인스타그램 등) 인수에 응하지 않을 경우에는 가차 없이 비슷한 서비스를 론칭해서 말라 죽이는 방법을 시전하고 있다. (스냅챗이 페이스북의 30억 달러 인수를 거절하자 스냅챗과 비슷한 기능들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왓츠앱 등에 론칭했고 이로 인해 스냅챗의 유저성장율은 둔화되고 있다) 우리가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른 콘텐츠, 팔로우하는 페이지, 클릭한 기사 등등이 모두 데이터화 되면서 "나"라는 유저에 대한 정보가 식별이 되고 페이스북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마치 빅브라더가 모두를 감시하고 있는 것처럼.
물론 마크가 군대를 조직하고 전 세계의 독재자로 군림 할리는 없겠지만, 이러한 페이스북의 정보에 대한 지배력은 지속될 것이며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력 또한 더욱 막대할 것이다. 오죽하면 미국 대선기간 내 페이스북에 포스팅된 허위 뉴스들이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는데 일조했다는 이야기까지 있을정도니 페이스북은 이제 단순히 친구들끼리 근황을 주고 받고 포스팅을 하는 소셜서비스를 넘어선 강력한 매체다. 비단 페이스북뿐만 아니라 구글, 애플 ,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굴지의 모든 IT 기업들은 유저들의 정보를 식별화하고 빅데이터 화해서 관리하는데, 이들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커질 전망이다.
이러한 디지털 시대의 가속화에 대해 우리는 사고하는 힘을 기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매체가 떠먹여 주는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스스로 늘 왜?라는 생각을 가지고 사고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만이 정보의 홍수에 대항해 스스로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철학이 생긴다. 그렇지 않게 되면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등에 대한 이슈에 대해서도 자기 생각 없이 부화뇌동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