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돈의 교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중섭 Sep 03. 2022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19

“여러분. 핵심은, 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 그냥 탐욕이라 부른다면, 탐욕은 좋은 것이라는 점입니다. 탐욕은 옳고, 탐욕은 작동합니다. 탐욕은 명료하게 하고, 관통하며, 진보 정신의 핵심을 포착합니다. 삶을 위한, 돈을 위한, 사랑을 위한, 지식을 위한 탐욕이 다양한 모습으로 인류의 진보를 가져왔습니다.” 영화 <월스트리트>에서 탐욕스러운 기업사냥꾼으로 묘사되는 주인공 고든 게코가 주주총회에서 한 말이다. 연설을 마친 이후, 사람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탐욕의 용광로에 불을 지핀다. 


앞서 돈과 투자에 있어서 일관된 패턴이 형성되는 사이클이 항상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게다가 비이성적인 군중심리는 때때로 사이클의 극단성을 낳는데, 이것을 잘만 활용하면 인생을 바꿀 정도의 부를 거머쥘 수 도 있다는 점을 말했다. 이번 장에서는 사이클의 극단성 중에서도 특히 탐욕에 기반한 투기와 버블에 초점을 맞춰 몇 가지 흥미로운 사례들을 공유할 예정이다.


최초의 투기는 언제일까? <금융투기의 역사> 따르면, 기원전 2세기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로마는 화폐, 은행, 신용, 보험  전반적인 금융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로마의 상인, 대부업자, 투기꾼들은 포룸으로 모여 증권을 매매하고, 화폐와 신용을 통해 각종 재화를 교환했다. 로마 시대 투기에 관해서는, 페트로니우스 아르비터의 로마 공화정 최후를 묘사한 기록에서 찾아볼  있는데 이는 아마도 인류의 투기에 관한 최초의 기록  하나가 아닐까 싶다. “고리대금업과 돈놀이는 일반 대중들을  가지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그들의 영혼을 파괴했다. 광기는 그들의 가랑이 사이를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빈털터리가 되었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중세시대는 투기 심리가 기승을 부리기 적합한 환경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당시 주류 세계관이었던 종교적 교리가 이윤 추구를 부도덕한 행위로 규정하고 억압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부자보다 오히려 빈자가 으로부터 구원 받을  있다는 교리를 퍼트림으로써, 종교 집단은 인간의 탐욕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성공했다. 현생에서 부를 추구하는 행위가 내세에 천국으로 가는  악영향을 미친다면, 투기 심리가 활성화되고 버블이 형성될  만무하다.  


하지만 근대에 접어들어 자본주의의 씨앗이 싹트면서 투기 심리는 다시금 되살아났다. 이윤 추구가 정당화되자 근면하게 일해서 돈을 번 부자는 사회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 한때 별 볼 일 없는 계급이었던 상인은 주류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계급으로 부상했다. 봉건제 사회에서 금기시되었던 상거래와 금융 시스템이 활성화되었고,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 돈과 투자에 관심을 가졌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사람들의 탐욕을 연료 삼아 질주하기 시작했다.


튤립 버블은 근대 시대 대표적인 버블 사례 중 하나로 손꼽힌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전성기를 맞아 당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 회사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네덜란드 시민들은 점점 부자가 되었다. 그 결과, 검소와 근면을 중시하던 칼뱅주의는 네덜란드에서 빛을 잃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소비와 과시를 통해 부를 뽐내면서, 주식과 부동산 이외에 더 큰 부를 안겨줄 대상을 찾았다.


이때 마침 군중의 눈에 뜨인 것이 튤립이다. 네덜란드의 지리적인 요건은 (좁지만 기름진 땅) 네덜란드를 튤립을 키우고 뽐내기 최적의 환경으로 만들어 주었다. 네덜란드에서 개인 정원에 알록달록한 튤립을 재배한다는 것은 그가 고상한 취미를 가진 부자라는 증표를 의미한다. 네덜란드 시민들은 튤립의 색깔과 희귀성에 따라 ‘황제’, ‘총독’ ‘장군’과 같은 이름을 붙이고 등급에 따라 가격을 책정했다. 최고급 튤립은 당시 암스테르담 집 값 한 채와 맞먹는 금액에 거래될 정도로 고가의 사치품으로 분류되었다.


튤립은 꽃이 만개할 때까지 무늬와 색깔을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튤립 뿌리를 사서 황제 등급의 튤립을 재배하는 데 성공한다면 큰 차익을 내는 것이 가능하다. 이와 같은 튤립의 우연성은 군중의 투기 심리를 자극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당시 평범한 네덜란드 서민들은 고가의 동인도 회사 주식에 투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안으로 튤립을 찾았고 일확천금을 기대하며 튤립 매수세에 불을 지폈다. 튤립 가격과 거래량이 동반 상승하고 시장 규모가 커지자 파생 상품 거래까지 출현했고, 평범한 등급의 튤립 뿌리 하나의 가격이 네덜란드 노동자의 1년 임금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으로 치솟았다.


사이클의 극단성이 발생하고 한몫 챙긴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더 많은 사람과 자본이 튤립 투기판에 몰렸다. 네덜란드에서 튤립 값이 고공 행진하자 옆 나라 프랑스도 투기 행렬에 동참했고, 튤립 버블은 국제화되었다. 하지만 버블은 오래가지 않았고, 튤립 시장의 매수세가 약해지면서 튤립의 가격은 폭락했다. 피해가 커지자 네덜란드 정부는 시장에 개입해 매매 가격의 3.5% 만을 지급하는 것으로 모든 채권, 채무를 정리하도록 명령했다. 다시 말해, 100 길더를 받고 튤립을 받았던 사람은 3.5 길더만 건지고 막대한 손해를 있었다는 뜻이다.


한편, 튤립 버블과 유사한 또 다른 사례가 있다. 17세기 ~18세기는 유럽 지역에서 주식회사가 마구 설립되던 시기였다. 18세기 초, 영국에는 남해 회사가 설립되었다. 남해 회사는 정부 부채를 떠안고 채권자들에게 주식을 전환해주었는데, 매년 정부로부터 일정한 이자를 받고 식민지 무역권까지 보장받아 장래가 촉망되는 듯했다. 비록 무역업에서는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남해 회사는 금융업을 통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군중은 남해 회사에 주목했고 투기 심리를 부추기며 주가는 6개월 만에 약 9배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금세 버블이 꺼지면서 남해 회사의 주가는 최고점 대비 90% 수준 하락했다.


“나는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가늠할 수 없다. 과학자 뉴턴이 남해 회사 버블 당시 남긴 말이다. 한때 신중한 투자자이기도 했던 뉴턴은 남해 회사 버블 붕괴로 재산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 강조하고 싶은 점은, 뉴턴처럼 똑똑한 사람도 비이성적인 집단 최면에 걸려 돈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보면, 지능보다는 마인드 컨트롤이 성공적인 투자자가 되는 데 있어서 더 중요한 역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외에 인류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투기 및 버블의 사례는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무수히 많다. 대공황 이전 재즈 시대 버블, 이머징 마켓 버블, 일본 경제 버블, 신기술 버블 (이를테면 철도, 자동차, 라디오, 비행기, 인터넷, 블록체인 코인 등), 미국 부동산 버블 등등. 영화와도 같은 사건들을 면면히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 진부한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군중의 탐욕을 자극하는 소재의 등장, 가격과 거래량의 동반 상승, 광기 어린 축제, 영원한 번영이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 '이번에는 다르다'는 새 시대의 교리, 부의 질서 재편, 신흥 부자의 등장, 생업을 제쳐두고 투기에 몰두하는 군중, 버블이 끝난 뒤 무대의 붕괴, 허탈한 상실감.


탐욕, 야망, 허영심, 사치, 과시, 신경증, 공포, 변덕, 성급함 등등, 인간의 본성이라 할 수 있는 이런 특성들이 완벽히 거세되지 않는 한 투기와 버블의 역사는 지루하게 되풀이될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월든>에서 적은 다음의 글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탑승하려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인간은 주식과 도구만 있다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어디든지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증기기관차가 출발할 즈음 한 무리의 인간들이 열차를 향해 뛰고 있다 하더라도, 단지 두서너 명만이 열차에 오를 수 있고 나머지는 열차에 치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단지 ‘불행한 사고’라고만 기억될 것이다.”

 

===================================================================

사이다 경제를 운영하고 있는 출판사 경이로움과 계약을 맺고 <어바웃머니>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바웃머니> 온라인 서점 링크

교보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0747913

예스24: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7015854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9309656


아래는 책을 리뷰하는 제 유튜브 링크입니다.

귀차니즘으로 업데이트가 빈번하지는 않지만 수명이 긴 콘텐츠 위주로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o9KC93yBzA

매거진의 이전글 군중심리가 낳은 사이클의 극단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