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돈의 교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중섭 Sep 09. 2022

파산 스토리

#20

너무 많이 아는 사람과 아예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때때로 무척이나 사소한 것일 수 있다. 돈에 관해서는 특히 그렇다. 돈을 다루는 능력이 탁월한 금융 투자 전문가와 금융 문맹인. 같은 상황에서 둘 중 부를 축적하고 유지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당연히 전자이다. 그러나 아무리 똑똑하고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운이 따라주지 않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데 실패한다면 그는 순식간에 파산할 수 있다.


이번 장에서는 파산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 생각이다. 사람들은 파산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돈에 대해 너무 많이 아는 사람과, 아예 모르는 사람 모두 파산의 위기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나는 상기하고 싶다. 파산은 마치 교통사고와 같다. 평소에는 발생할 가능성이 낮지만 잠깐의 부주의 혹은 불운으로 인해 순식간에 삶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무서운 점은, 교통사고와 마찬가지로 파산 역시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비극이라는 것이다.


금융 지식이 많은 금융 투자 전문가의 파산은 금융 문맹인의 파산 대비 영화스러운 면이 있다. 독자들에게  남자의 인생을 소개하고 싶다. 황성국, 한국에서 태어난 그는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을    황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가정환경이 넉넉지 않았지만 공부를 잘했던  황은 미국 명문대학에 합격하고 금융 투자업으로 커리어를 시작한다. 야심만만한 젊은이  황은 인생의 귀인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헤지펀드의 대부라 불리는 타이거 펀드의 창업자 줄리언 로버트슨이다.  황의 잠재력을 알아본 줄리언 로버트슨은 그를 영입했고 이후  황은 좋은 성과를 내며 승승장구했다.


타이거 펀드에서 커리어를 쌓고 큰돈을 번 빌 황. 그는 고객의 돈을 받고 운용하는 펀드가 아닌, 자기 돈을 재량껏 운용하는 아케고스라는 패밀리 오피스를 설립한다. 빌 황이 이끄는 아케고스는 조 단위 규모의 돈을 운용하는 대형 패밀리 오피스로 성장했다. 흥미로운 점은,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던 빌 황은 기부와 선교 활동에는 무척 적극적이었지만, 아케고스의 업적을 내세우고 투자자로서 명성을 얻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빌 황과 아케고스는 소위 월가의 선수들만 아는 ‘고래 투자자’였다.

“빌 황이 도대체 누구야?” 2021년 3월, 아케고스가 파산 위기에 처하면서 빌 황은 불미스러운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아케고스의 주특기는 여러 투자 은행들과 파생 상품 계약을 맺고 공격적인 레버리지 투자를 하는 것이었다. 한 동안 이 투자 전략은 유효했다. 그러나 투자 대상의 가격이 하락하면서 투자 은행은 아케고스에게 마진콜을 요구했고, 무리하게 레버리지를 일으킨 아케고스는 지급 불능 상태에 이르렀다. 모건 스탠리, 크레디트 스위스, 노무라 등과 같은 쟁쟁한 투자 은행들이 아케고스 사태로 인해 조 단위 규모의 손해를 봤고, 빌 황은 미국 검찰에 의해 기소되었다.


이틀 만에 20조 원이 넘는 손실을 내고 파산한 아케고스는 LTCM 파산 이후 금융의 역사에 기록될 파산 스토리이다. 이것은 파생상품과 레버리지가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만약 빌 황이 무리하게 레버리지를 일으키지 않고 적당한 시점에 손절을 했다면, 그는 존경받는 빌리어네어이자 독실한 종교인으로 살면서 불명예를 뒤집어쓰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종교인으로서 충만한 삶, 아케고스의 안정적인 운영, 그리고 돈 (투자 수익) 빌 황에게 무엇이 더 중요했을까? 빌 황은 자신의 인생에서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위해 필요한 것을 베팅하는 우를 범했고 오명을 남겼다.


한편, 금융 문맹인의 파산은 빌 황의 사례보다는 덜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훨씬 보편적이다. 금융 문맹인의 파산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와 같은 유명인이 파산하는 경우이다. 일반적으로 유명인은 자신의 재능을 활용해 돈을 버는 것에는 능할지 몰라도, 금융 지식은 전무한 경우가 많다. 일이 잘 풀릴 때는 일반인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유명인의 장점이지만, 수입이 불규칙적인 것은 단점이다. 또한, 유명인은 대체로 씀씀이가 큰 편이기 때문에 수입이 없을 때는 재무 상태가 급격하게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유명인은 일이 안 풀릴 때를 대비해 철저하게 재무 관리를 하지 않으면 파산의 위기에 노출될 수 있다.


두 번째, 과소비를 하는 사람도 파산할 수 있다. 이들은 본인의 소득 및 자산에서 감당 가능한 수준을 넘어 초과 지출을 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고 금융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경향이 있다. 항상 통장 잔고가 없고 신용 카드 돌려막기에 급급하면서도, 사치를 멈추지 못하고 남들이 하는 것은 무리를 해서라도 다 해야 직성이 풀린다. 쉽게 말해 주제 파악이 안 되는 것이다. 충분한 능력이 있다면 고급 기호를 소비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혹자는 고급 기호를 소비하는 것이 일종의 자기 보상이자 돈을 버는 동기부여라고도 말한다. 문제는 분수에 맞지 않게 과소비를 하는 것이다.


세 번째, 노후 파산이다. 노후 파산은 열심히 살아온 선량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비극이다. 따라서 이런 유형의 파산은 심히 안타깝다. 노후 파산의 원인은 충분하지 못한 노인 복지와 더불어 개인의 금융 문맹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젊은 시절 회사일에만 매달리느라 자본 소득을 형성하는데 실패했거나, 재무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자녀에게 지나치게 많은 지출을 했거나, 무리하게 빚을 내서 투자했다가 실패했거나, 집을 제외한 투자 자산 포트폴리오 및 연금 소득원을 형성하는데 실패한 경우 등이다.


<노후 파산>은 일본 NHK 방송국이 노인들의 빈곤 실태를 취재한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만든 책인데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 책은 노후 파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취재한 많은 고령자는 자신이 노후 파산에 처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사람들이다. 회사원, 농가, 자영업자 등 저마다 나름대로 노후를 준비해왔던 사람들이 “설마 내가 노후 파산의 대상이 되리라고는……”이라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중략) 노후 파산의 무서움은 아주 서서히 다가온다는 데 있다. 우리가 취재한 많은 고령자는 단번에 파산 상태에 처한 것이 아니었다. 생활고에 빠져 집을 팔거나 예금을 조금씩 헐어서 쓴 끝에 최종적으로 노후 파산에 처하고 말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압박을 받기 때문에 불안감이나 공포가 장기간 계속된다”


다양한 파산 스토리를 접하다 보면 이런 결론에 다다른다. 보통의 사람들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노후 파산이다. 위험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다. 아무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안정적인 선택만 하면 서서히 노후 파산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작금의 시대에,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단, 위험을 철저히 관리하고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말이다. 파산을 피하기 위한 팁이 있다면, 자신의 인생에서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용인할 수 있는 실패의 범주를 설정해 보는 것이다.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위해 필요한 것을 베팅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실패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

사이다 경제를 운영하고 있는 출판사 경이로움과 계약을 맺고 <어바웃머니>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바웃머니> 온라인 서점 링크

교보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0747913

예스24: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7015854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9309656


아래는 책을 리뷰하는 제 유튜브 링크입니다.

귀차니즘으로 업데이트가 빈번하지는 않지만 수명이 긴 콘텐츠 위주로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o9KC93yBzA



매거진의 이전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