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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돈의 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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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Sep 17. 2022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21

“내가 틀렸습니다.” 똑똑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할 때 나는 그의 주장을 더욱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실수를 고백할 정도면, 유연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돈을 다루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유연한 사고를 한다. 그들은 확증편향을 의심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타인의 의견을 경청한다. 본인의 생각이 틀렸다는 판단이 들면 곧바로 인정하고는 행동에 옮긴다.  


‘액체 근대’에 접어든 이후, 유연한 사고는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다. 액체 근대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정의한 개념이다. 안정적이고 변하지 않는 고체와는 달리 끊임없이 변화하는 성질을 가진 액체에 빗대어 근대 사회에 불확실성이 높아졌음을 뜻한다. 액체 근대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복잡성을 증가시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변화의 조류에 발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면 모두가 도태된다. 세계가 빠르게 유동하는 상황에서 유연한 사고는 필수적이다. 어제까지는 옳았던 것이 내일 틀릴 수 있으며, 반대로 어제까지는 틀렸던 것이 내일은 맞을 수도 있다.


액체 근대는 돈의 역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세계 경제와 화폐 시스템은 긴밀하게 연결되었고, 시장 동조화 현상은 심화되었으며, 복잡성이 증가함에 따라 사업,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고조되었다. 그 결과, 위기와 기회가 일상화되었다. 전통적인 규범을 (이를 테면 근면 성실하게 일하고 돈을 저축해서 은퇴한 뒤에도 적당한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것) 따르는 사람들은 만성적인 불안감을 느끼며 돈 걱정을 하게 되었다. 


유연한 사고를 하지 못하면 부자가 되기 어렵다. 유능한 투자자와 사업가는 ‘무조건’,  ‘확실히’, ‘절대’와 같은 용어를 기피한다. 그들은 무지를 인정하고, 자신이 세운 가설을 의심하며, 낯설고 불분명한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원칙을 지키되 고집을 피우지는 않는다. 원칙과 고집의 차이는 이렇게 구분할 수 있다. 원칙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고, 일관성과 형평성을 충족한다. 반면, 고집은 논리적이지 못한 생각과 주관적인 경험에 근거하고 비이성적이며 독단적이다.


유연한 사고에 능한 투자자 중 하나는 워런 버핏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진 워런 버핏은 한동안 기술주에 투자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에서 시가 총액이 가장 높은 주식은 주로 기술주이다. 애플, 아마존, 구글, 테슬라 등과 같은 혁신 기업들이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강자로 우뚝 선 것이다. 변화의 흐름에 발맞춰 워런 버핏은 생각을 바꿨고 애플에 투자를 단행했다. 몇 년 뒤, 애플 주가가 상승하면서 그의 판단은 맞은 것으로 판명이 났고 버크셔 해서웨이는 막대한 차익을 냈다. 또한, 버크셔 해서웨이는 아마존에 투자를 했는데, 워런 버핏은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와 그의 비전을 과소평가했다고 인정한 바 있다. 이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되, 유연한 사고를 하며 고집을 피우지 않은 사례이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 워터의 투자를 책임지고 있는 레이 달리오 역시 유연한 사고를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칙>의 저자로도 유명한 레이 달리오는 자신의 인생 철학과 투자관을 다룬 이 책에서 유연한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레이 달리오는 유연한 사고를 막는 두 가지 장애물을 자아와 사각지대로 규정한다. 자아는 실수와 약점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드는 방어기제를 뜻한다. 자아는 건설적인 비판도 공격으로 받아들이기 쉽게 만든다. 사각지대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허점이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과 사고방식에 기반해 대상을 인식하기 마련이기에, 눈을 멀게 만드는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레이 달리오는 유연한 사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극단적으로 개방적인 사고는 당신이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순수한 걱정에서 비롯된다. 열린 사고는 자아나 사각지대가 자신을 방해하지 않도록 다른 관점과 다른 가능성을 효율적으로 탐구하는 능력이다. 개방적 사고를 위해서는 당신이 언제나 옳다는 애착을, 무엇이 진실인지를 배우는 기쁨으로 대체해야 한다. (중략) 대부분의 사람은 극단적으로 개방적이라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잘못된 것을 받아들이는 개방적인 태도가 개방적인 사고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자신의 의견에 집착하고, 다른 의견의 이면에 있는 타당성을 이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한편, 요즘 들어 유연한 사고를 가늠하는 최고의 리트머스 시험지 중 하나는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에 대한 평가는 크게 세 가지이다.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모르거나. 인상적인 점은, 비트코인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극단적으로 갈리고 서로 좀처럼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개발자, 벤처 기업가, 일 부 전통 금융 투자자는 비트코인을 좋아한다. 반면, 중앙은행, 경제 학자, 다수의 전통 금융 투자자는 대체로 비트코인을 싫어한다. 낙관론자들은 비트코인을 가리켜 최고의 건전 화폐라 칭하는 반면, 비관론자들은 비트코인을 마치 마약이나 범죄처럼 취급하며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악이라고 생각한다.


비트코인을 대하는 워런 버핏과 레이 달리오의 태도는 무척 흥미롭다. 워런 버핏은 시종일관 비트코인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해왔다. 비트코인은 아무런 쓸모가 없고 비트코인을 사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 투기라는 것이 워런 버핏의 생각이다. 반면, 레이 달리오는 비트코인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바꿨다. 한때 비트코인을 투기적인 거품이라고 비난했던 레이 달리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반박 하자 자신이 무언가를 놓치고 있을 수 있다는 완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후 레이 달리오는 비트코인이 대단한 발명품이라 추켜세우며 비트코인에 투자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워런 버핏과 레이 달리오, 누가 맞을까? 아무도 모른다. 오로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누가 옳았는지가 밝혀질 것이다. 다만, 워런 버핏 대비 레이 달리오의 사고가 더 유연한 것은 지금도 쉽게 판별할 수 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자신의 실수와 오판을 인정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유연한 사고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열린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고, 다른 생각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 성급하게 판단하고 나쁜 결정을 해서 후회하기 전에 의식적으로 다음의  주문을 외자.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내가 틀렸을 수 있다. 주장하기 전에 경청하자. 건설적인 비판을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말자. 지금 내리는 의사결정이 최선이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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