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돈의 교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중섭 Aug 28. 2022

군중심리가 낳은 사이클의 극단성

#18

<군중 심리>의 저자 귀스타브 르 붕은 군중 심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특정 상황에서 형성되는 개인의 무리는 그 무리를 구성하는 개개인과 무척 다른 특성을 드러낸다. 의식을 지닌 개성은 사라지고 개인의 감정과 생각이 집단화되어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한다. 그리고 일시적이지만 매우 뚜렷한 특징을 보이는 집단정신이 형성된다.” 아무리 이성적인 개인이라 할 지라도, 일단 군중의 일원으로 편입되면 충동적으로 변한다. 그는 더 이상 교양 있는 시민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군중의 일원으로서 그의 내면에 잠재된 야만성을 극단적으로 표출한다.


사이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투자자라면 군중 심리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사이클의 탄생과 소멸에는 항상 군중 심리가 관여하기 때문이다. 군중은 변덕스럽고 예민하다. 어제까지 환희에 들떠 있던 군중은 오늘 사소한 이유로 인해 금세 침울해질 수 있다. 군중 심리에는 확실히 극단적인 면모가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사이클은 이따금씩 정상적인 범주를 훨씬 벗어난다. 사이클이 추세선을 이탈해 평균 대비 지나치게 고점이거나 저점을 형성하는 지점, 바로 이때가 최적의 투자 기회이다. 현명한 투자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군중심리에 휘둘리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한다.


사이클의 극단성이 강할수록, 투자의 기대 수익과 위험 역시 동시에 커진다. 투자로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모두 극단적인 사이클을 맞아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고 수익을 최대화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운이 특출 나게 좋지 않은 이상, 보통의 경우 인생을 통틀어 총 서너 번 내외로 이런 기회가 주어지는 듯하다. 대략 10년에 한 번 정도 이런 기회가 온다는 뜻이다. 이 중에서 한 번의 기회만 잘 잡아도 인생이 바뀔 수 있다. 돈과 관련된 자신의 운명이 송두리째 바뀌는 아찔한 체험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30년을 돌이켜보면, 비이성적인 군중심리에 기인한 극단적인 사이클이 여러 번 출현했고,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었던 기회 역시 수 차례 지나갔다. 가령, 닷컴 버블은 극단적인 상승장의 대표적인 예이다. 1990년대 말, 인터넷에 대한 기대가 고조되면서 닷컴 관련 주식 가격이 폭등했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인식이 생기고, 날로 치솟는 주식 가격을 정당화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이 등장했다. 자산 폭등 열차에 미리 탑승하지 못한 채 성실하게 회사를 다니던 사람들은 허탈감을 느꼈다. 뒤늦게 매수 행렬에 동참하려는 군중 심리가 형성되지만 버블이 터지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실을 보았다. 소수의 영민한 사람들만이 닷컴 버블 이후 신흥 부자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IMF 외환위기는 극단적인 하락장의 예라 할 수 있다. 1990년 대 말,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 한국은 IMF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대가로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국민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원화, 기업, 부동산, 주식할 것 없이 한국과 관련된 자산 가격은 폭락을 거듭했다. 공포가 지배하던 분위기 속에서, 일부는 하락장에 베팅하거나 헐값에 자산을 매수하는 방식으로 큰 부를 축적했다. 영화 <국가 부도의 날>에 등장하는 금융맨 윤정학이 바로 이러한 경우이다. 불길한 징후를 감지한 그는 한국이 망하는 쪽에 거액을 베팅하고 큰돈을 번다. 사이클의 극단성을 파악한 그는 영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이라고요. 지금. 내 인생이, 내 계급이, 내 신분이! 싹 다 바뀌게 되는 순간이야”


한편, 2000년대 후반 미국 금융위기 역시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하락장의 대표적인 예이다. 미국 부동산 버블이 터지고 관련 파생상품 포지션에 무분별하게 노출되었던 리먼 브라더스 등과 같은 대형 투자 금융 기관이 파산했다. 월가에서 시작한 여진은 전 세계 금융 시장을 요동치게 만들었고 사이클의 극단성을 낳았다. 연쇄적인 금융 기관의 파산과 더불어 거의 모든 자산 가격이 폭락했다. 그러나 미 연준의 양적 완화, 디레버리징, 구제 정책이 실시되면서 시장은 금세 회복했다. 이때도 마찬가지로 군중심리에 휘말리지 않고 현명하게 대처한 투자자는 사이클의 극단성을 활용해 큰돈을 벌었다. 금융 위기를 다룬 영화 <빅 쇼트>는 군중에서 이탈한 투자자가 얼마나 심한 내적 갈등을 겪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최근에 발발한 2020년대 코로나 팬데믹 역시 극단적인 사이클의 예이다. 팬데믹 초기에는 공포가 시장을 지배해 극단적인 하락장이 시작됐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전례 없는 돈 풀기가 시작되면서 자산 가격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상승했다. 닷컴 버블 당시 인터넷 주식 가격이 폭등한 것처럼, 이번에는 블록체인 코인 가격이 폭등했다. 또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지금이 자가를 마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군중심리가 형성되었다. 극단적인 상승장이 연출되면서 투자를 하지 않고 회사만 다니는 사람은 바보라는 인식이 형성된다. 하지만 엔데믹이 가까워지고 금리인상이 본격화되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회수된다. 자산 가격이 폭락하고 무리하게 대출해서 집을 산 사람들은 비명을 지른다. 이때도 역시 기회를 쟁취한 자는 군중과 다른 길을 간 소수에 불과하다.


대대적인 부의 재편을 야기하는 사이클의 극단성. 전쟁, 세계 질서 변화, 신기술, 지정학, 공급망, 금융 환경, 팬데믹, 그리고 이외에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변수로 인해 사이클의 극단성은 반복적으로 형성될 것이다. 위기와 기회의 모습을 동시로 띈 채로 말이다. 군중심리와 사이클에 대해 깊게 이해하고, 군중심리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자제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다음에 발생할 사이클의 극단성을 발판 삼아 크게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사이클의 극단성이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출현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깨어 있는 눈으로 세상의 변화를 관찰하고, 통념을 의심하고, 군중의 일원이 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

사이다 경제를 운영하고 있는 출판사 경이로움과 계약을 맺고 <어바웃머니>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바웃머니> 온라인 서점 링크

교보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0747913

예스24: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7015854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9309656


아래는 책을 리뷰하는 제 유튜브 링크입니다.

귀차니즘으로 업데이트가 빈번하지는 않지만 수명이 긴 콘텐츠 위주로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o9KC93yBzA

매거진의 이전글 사이클은 영원회귀 법칙을 따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