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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되면 돈을 어떻게 쓸 건가요? 이런 질문을 하면 대체로 반응은 대동소이하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장 그만두고 쉬면서 새로운 일을 찾거나 (돈은 되지 않지만 자신이 원하는), 주거 환경을 바꾸거나, 가족을 챙기거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베풀면서 살고 싶다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답변이다. 돈을 오롯이 나와 가족을 위해서만 쓰겠다고 답변한 경우는 의외로 많지 않았다. 사람들이 본인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더라도 기꺼이 타인을 위해 지갑을 열 생각을 한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부의 수준이 늘어남에 따라 소비 역시 진화한다. 소비는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가장 기초적인 소비는 오로지 자신을 (혹은 가족을 비롯해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 한정된) 위한 것이다. 이때, 소비의 대상은 주로 재화와 기호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보다 상류의 재화와 기호를 (쉽게 말해 좋은 것) 소비하고, ‘낭비할’ 수 있는 특권을 과시하고 하류 계급과 자신을 ‘구분 짓기’ 위해 돈을 벌고 싶어 한다. 이를테면, 고가의 아파트, 비싼 외제차, 롤렉스 시계, 유명 브랜드 옷, 잡화, 신발, 고급 레스토랑, 유기농 식단, 해외여행, 레저, 소수에게만 허용된 멤버십 등이 그 예이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사람들은 결코 사물 자체를 (그 사용가치에서) 소비하지 않는다. 이상적인 준거로서 받아들여진 자기 집단에 대한 소속을 나타내기 위해서든, 아니면 보다 높은 지위의 집단을 준거로 삼아 자신의 집단과는 구분하기 위해서든 간에 사람들은 자신을 타인과 구별 짓는 기호로서 (가장 넓은 의미에서) 사물을 항상 조작한다. (중략) 많이 벌면 벌수록 사람들은 더 많이, 또 더 좋은 것을 원한다. 이 명제는 사회 전체에 대해서도 개인에 대해서 무차별적으로 타당하며, 누구나 안락한 생활의 합리적인 최적 조건을 목표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곳을 다니고, 좋은 것을 먹고 마시고, 좋은 경험을 하는 것. 사실 이 정도 수준의 소비는 적당히 여유 있는 중산층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심지어 부자 흉내를 내고 싶어 하는 서민 계층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무리해서 실현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과소비를 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고 저축할 여력이 없겠지만. 따라서 이 단계의 소비는 부자들의 전유물이라기보다는 진입장벽이 낮은 대중 소비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좀 더 진화한 단계의 소비는 바로 문화자본을 축적하고 교양을 갖추는 것이다. 이 역시 자기에게 집중된 소비라는 점에서 기존의 소비와 양식이 유사하다. 다만, 소비하는 대상이 재화 및 기호가 아니라 문화 자본 (이를 테면, 문화 예술에 대한 조예, 안목, 취향, 지식 등) 및 교양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교양 수준을 높이는 것은 돈을 버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왜냐하면 경제 자본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문화 자본으로 치환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고, 자신만의 취향 역시 마찬가지로 돈을 쓴다고 해서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급 재화 및 기호 소비를 충분히 경험한 부자는 더 이상 여기에 돈을 쓰는 것에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명품 로고가 크게 박힌 옷과 스포츠 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과 자신을 구분 지으려 한다. 그의 관심사는 양적 과시에서 세련된 교양을 쌓고 (혹은 적어도 남들에게 그렇게 보이는 것) 선망받는 취향과 소탈한 (하지만 경제적으로 충분히 여유가 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는 것으로 이행함으로써 다른 계층과 자신을 구분 짓고 특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돈을 번 부자들이 문화 예술에 관심을 가지거나, 학위를 따기 위해 학교에 다니거나, 각종 갤러리 및 와인 시음회에 출입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부자가 되면 다양한 부류의 상류층을 만날 기회가 생긴다.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단순히 돈만 있으면 안 된다. 졸부 취급을 하며 껴주지 않거나, 이미 본인보다 훨씬 돈이 많거나, 태생부터 다른 귀족 출신 부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새롭게 설정된 준거집단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문화자본과 교양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돈을 써서 학습을 해야 한다. 소비가 사회문화적인 현상인 이유이다.
한편, 저 정도로 부를 축적한 부자들은 삶의 목적을 잃고 혼란을 느끼는 시기가 있다. 인생을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이미 만렙을 달성하고 더 이상 성취할 것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또한, 그는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사람에게 상처받고 실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문화 자본과 교양을 쌓는 매개체는 (예술이 가장 대표적이다) 지친 심신을 위로할 수 있는 쉼터와 같다. 부자들이 예술가를 후원하고 예술품을 구매하는 것에 관심을 두는 이유이다. (물론 투자, 증여, 절세의 목적도 있다)
마지막으로, 소비의 최종 진화 단계는 자신과 이해관계가 없는 타인을 위해 이타적인 목적으로 돈을 쓰는 것이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이 단계의 소비를 행하지 않으면 존경받는 부자로 거듭나기 어렵다.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불운한 환경의 사람들을 돕기 위해 기부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보통 부의 사다리 꼭대기에 위치해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사람들. 자신과 가족,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만을 위해 돈을 쓰는 것에 별다른 효용을 느끼지 못하는 부자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소비하는 것을 선호한다.
가령, “지구가 우리의 유일한 주주입니다”라는 말을 남기며 4조 원이 넘는 회사 지분을 통째로 기부한 글로벌 아웃도어 기업 파타고니아 창업주 이본 쉬나드는 이런 소비를 실천한 대표적인 부자이다. 애초에 사업가가 되고 싶었던 생각이 없었던 이본 쉬나드는 애초의 바람과는 달리 사업가로서 아찔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자신이 번 돈을 재단에 기부하고 남은 여생을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지구를 살리는데 봉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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