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중섭 Nov 01. 2022

세계의 잔혹함에 대하여

이태원 참사를 지켜보며 든 생각

우연히 이태원 참사 현장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았는데 실로 그로테스크했다. 할로윈 복장을 입고 얼굴이 시퍼렇게 부은 사람, 끼어있는 사람, 휴대폰을 들고 촬영하는 사람, 현장을 진압하는 사람, 절규하는 사람, 신나는 음악 소리에 맞춰 춤추는 사람, 그리고 포대자루 마냥 나란히 놓여 있던 시신들. 아비규환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까? 영화보다  영화 같은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현재까지 사망자는 156명으로 집계되었다. 과거에 성수대교 붕괴 사건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는데, 찾아보니 당시 사망자보다 5배가 넘는 숫자이다. 자연재해가 발생한 것도 아니고 건물이 붕괴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죽다니.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고 무섭다. 이토준지 공포 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이태원 참사의 잔상이 지금처럼 머릿속에 남아있는 한, 나는 아마도 당분간 이태원을 가지 못할 것 같다.


"대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라고 누군가는 생각할  있다. 원래 세계는 이따금씩 잔혹하다. 선악에 대한 구분과 특정한 이유 없이 말이다. 그리고 세계가 잔혹함을 발휘하는 대상 역시 무차별적이다. 실제로 이태원 참사뿐 아니라 지금  순간에도 잔혹한 일은  지구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당사자들의 의지  부주의함과는 무관하게 말이다. 이태원 참사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평생 짊어질 정신적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거나, 할로윈 페스티벌 취소로 감당하기 어려운 손실을 입거나, 이태원 상권 몰락으로 파산할 위기에 처하거나,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 불구가 되거나, 부모가 치매에 걸리거나, 남편의 불륜을 목격하거나, 자식이 학교에서 왕따 당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거나, 시한부 판정을 받거나, 사이코패스  범죄자의 표적이 되거나, 코로나 봉쇄 정책으로 강제로 공장에 갇히거나, 식량 위기로 굶어 죽을 고민을 하거나, 감당할  없는 사기를 당하거나, 전쟁에 징집돼 밤마다 폭격의 공포에 시달리거나 등등.


이태원 참사처럼 무섭고 잔혹한 일은 앞으로도 반복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세계는 항상 그래 왔으니까. 그렇다고 여기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닐 . 인간은 무의미한 세계의 잔혹함을 받아들이기 위해 특별한 의미를 담은 스토리를 발명하고 (종교를 비롯한 각종 샤머니즘) 기꺼이 눈물을 흘리고 슬퍼할  아는 감성적인 존재가 아니던가. 그런데 일부의 경우, 이태원 참사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거나, 희생자들을 조롱하거나, 증오의 배출구인 마녀사냥으로 변질시키는 양상이 목격되어 안타깝다. 어쩌면 이런 모습이 세계보다 더욱 무서운 인간의 잔혹함이라   있을지도.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도 날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