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로서 소고
나는 직업이 주식 애널리스트인지라 주변 지인들을 만나면 자주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주식 추천을 해달라는 것이다. 저금리 시대에 지인들의 뜨거운 요청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식 추천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하는 편이다. 그 이유로 첫 번째는 주식 추천이 잘 됐을 경우는 술 한번 얻어먹는 핑계가 생기는 것이지만, 잘 안됐을 경우에는 지인이 돈을 잃고 있기에 아주 민망한 상황이 연출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솔직히 말해서 나도 주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것이다. 특히나, 주식의 주가라는 것은 예측 불가능하기에 random walk theory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술 취한 사람처럼 어디로 튈지 모른다. 생각해보라. 내가 주가를 예측할 수 있다면 직장을 다니겠는가? 아마 주식 전업투자를 하겠지.
주식 애널리스트의 역할은 주가를 잘 맞추는 것일까?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주가를 잘 맞추는 것이 좋은 애널리스트의 요건이기는 하지만, 사실 애널리스트의 본질은 자신이 커버하는 주식의 펀더멘털을 철저히 분석한 뒤, 투자자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애널리스트들의 레포트는 참고용일 뿐이지, 투자에 관한 의사결정은 투자자들이 내리는 것이며 애널리스트들은 투자 의사결정을 하는 데 있어 조언을 해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투자자들은 애널리스트의 레포트에 의지하며 애널리스트들의 주가 예측은 민망하게도 틀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왜 해당 기업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전문가라는 사람이 주가 예측을 틀리는 것일까?? 애널리스트로서 느끼는 현실적인 몇 가지 이유를 적어보고자 하며, 이 내용이 향후 주식투자를 하는 개인 투자자들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애널리스트의 역량 미달
이런 케이스가 가장 슬픈 경우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증권사에서 활동하는 애널리스트의 많은 수는 기업의 펀더멘털을 철저히 분석하는 애널리스트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기업의 IR 부서가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는 broadcaster인 경우가 많다. 이런 애널리스트들은 기업에 대한 분석보다는 기업과의 관계 유지에 힘을 쏟으며 술 마시면서 듣는 분기 실적이 얼마 나오는지 따위에 힘을 쏟기 때문에, 양질의 레포트를 쓸 수 없고 주가 분석 또한 굉장히 단순한 경우가 많다. 물론 일부 애널리스트의 경우, 분주히 기업 탐방을 다니고 산업분석을 하며 해당 주식에 대해 명확한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신뢰할 수 있는 애널리스트들은 소수라고 생각한다.
애널리스트는 산업의 흥망성쇠를 떠나 무조건 BUY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
애널리스트는 연예인과 똑같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찾아주는 고객들이 있어야만 애널리스트의 존재 의미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맡은 산업 및 종목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고객을 흥분시킬 수 있는 BUY 아이디어가 있어야 한다. "이 종목이 ~해서 좋기 때문에 지금 당장 사야 합니다"는 애널리스트가 겪어야 하는 숙명이자 한계이다. 거시적으로 바라봤을 때 해당 산업 전체가 구조적인 불경기를 겪고 있다 하더라도 해당 애널리스트는 일부 주식에 대해 꿋꿋이 매수를 외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이 주식 말고는 투자자들에게 어필할 것이 없기 때문에.
애널리스트는 기업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기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기 쉽지 않다.
이건 참 민감하고 미묘한 문제지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애널리스트가 정보를 주로 얻는 곳은 애널리스트 개개인의 분석 및 리서치 기관의 데이터도 있지만, 해당 회사의 IR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보통 한국에서 이름 들어본 대기업이라 하면 수 십 군데의 증권사에서 커버리지를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 매수의견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해당 기업의 눈밖에 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정보도 상대적으로 덜 얻을뿐더러 다른 부서 (특히나 딜을 다루는 IB부서)와 트러블도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대기업에 반하는 의견을 내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당신은 한 번이라도 삼성전자를 매도하라는 애널리스트를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삼성전자 매도 의견을 내는 순간 해당 애널리스트는 삼성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 것이며 삼성전자와 관련 있는 증권사의 타 부서에서도 불리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하나 팁을 알려주자면, 애널리스트가 어떤 기업에 대해 중립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대개 쳐다볼 필요가 없다. 해당 애널리스트의 목표주가나 예상 이익이 컨센서스 (시장의 애널리스트들이 추정하는 평균값) 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면 사실상 매도 의견이라고 봐도 된다. Read my lips라는 말이 있듯이 애널리스트는 중립의 의견이라고 겉으로는 말을 하고 있지만 속마음은 "이 주식 팔아야 됩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은 투자자들은 애널리스트들의 구조적인 한계를 이해해야 하며 무작정 그들의 레포트를 맹신해서는 안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투자자가 스스로 공부를 하고 주식에 대한 안목을 기르는 것이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다음으로 좋은 대안은 전문가들이 운용하는 펀드에 가입하거나 지수를 추종하는 ETF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펀드의 경우 수수료를 떼 가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전문 투자가로서 일반인 투자자들보다는 전문 지식이나 이해도가 높기 때문이고, ETF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싼 수수료로 재테크를 할 수 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애널리스트들이 작성하는 레포트는 참고용일 뿐이지 투자의 바이블이 될 수 없다. 그들이 주가의 향방을 정확히 알았다면 전업투자를 했지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훌륭한 애널리스트들은 해당 산업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하고 있고 자신만의 견해를 제시하며, 이는 투자자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된다. 이러면에서는 해당 산업의 전문적인 컨설턴트의 역할을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애널리스트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도 이러한 애널리스트들을 본받으려 하고 있지만 오호통재라! 아쉽게도 매우 소수의 애널리스트들만이 이러한 깜냥이 된다. 게다가 점점 줄어드는 애널리스트의 숫자 및 늘어나는 업무 양으로 인해 점점 더 양질의 레포트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게 업계의 현실이다. 결국, 투자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투자철학/스타일을 가진 펀드/ETF에 투자하거나 본인이 스스로 안목을 기르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