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어제 오랜만에 팀원들과 회식을 했다. 말이 회식이지 홍콩에서는 한국과는 달리 거나하게 2-3차를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회사 끝나고 근처 펍에서 옹기종기 서서 해피아워 맥주를 먹다가 1-2시간 후에 집에 간다. 어제 있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MD였는데, (Managing Director, 한국 직급은 전무이사급이고 흔히들 줄여서 MD라고 하는데 투자은행의 정점에 있는 상위 1%이다. 최소 5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밌는 것은 남들이 보기엔 이미 회사원으로서 정점을 찍은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하는 고민도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이 바닥이 워낙 수명이 길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이 40대 MD들이었는데 아이들이 여전히 초중학생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중 어떤 말레이시아인 MD는 홍콩 드림을 꿈꾸고 이민을 와서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지금은 홍콩 야경이 다 내려다보이는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피크에서 가족들과 사는 사람이었는데, 자기는 일을 한 번만 쉬고 싶단다. 한 6개월 정도 쉬면은 소원이 없을 것 같다고. 다른 인도인 MD도 마찬가지였다. 자식들이 아직 학교를 다니는데 나가서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아직은 이만큼 월급을 주는 곳이 없으니 회사를 다녀야 할 것 같다고. 이번 년에 보너스가 거의 나오지 않을 예정이라 전반적으로 다들 우울한 탓도 있겠지만, 어제 대화는 특히나 우울했는데 남들이 보면 성공했다고 할만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라 더욱 와 닿은 점이 많다. 이들의 공통된 이야기는 큰 열정 없이 매달 통장에 꽂히는 월급 때문에 당장은 회사를 다니기는 하는데 추후에 회사를 나갔을 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물론 이들의 급여 수준은 보통의 월급쟁이 회사원이 받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고 상류층의 라이프를 즐기고 있지만, 어제의 대화는 역시나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가지게 해주었다. 회사는 개성을 말살하고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힘을 무력화시킨다. 회사가 원하는 인재는 다른 게 아니다. 대부분의 회사가 원하는 사람은 리더십을 가지고 창의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아닌, 그냥 무슨 일을 시켜도 꾸역꾸역 군말 없이 해내는 비둘기색 양복을 입은 회색의 병정이다. 보통의 회사원은 날지 못하는 닭둘기다. 사람들이 따박따박 주는 먹이 (월급)를 받아먹는 것에 익숙해진 닭둘기 (회사원)들은 어느새 나는 법을 잊어버린다. 그들도 처음부터 날지 못하고 닭처럼 엉덩이를 뒤뚱거리지는 않았으리라.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지 못한 탓이겠지.
나도 그렇고 보통의 회사원들은 당장 생계 걱정을 해야 하기에 사표를 가슴속에만 묻어둔다. 그렇지만 우리는 가슴속에 독을 품을 필요가 있다. 당장은 새장에 갇혀있지만, 언젠가는 뛰쳐나가 볼 필요가 있다. 창업을 하든, 이직이나 이민을 준비하든, 나처럼 글쓰기를 하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언젠가는 새장을 박차고 비상하기를 바라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님을 알고 있다. 이상의 <날개>에 나오는 주인공이 마지막에 시원하게 외쳐 보지 못하고,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고 말한 것도 같은 심정이었을까. 끙. 달이 차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