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다가 든 생각
최근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있다. 그가 쓴 <죄와 벌>을 재밌게 읽었을뿐더러 명작이라는 추천을 많이 받아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보고 있던 와중에, 유독 눈에 띄는 구절이 있어서 공유하고자 한다.
누구나 자신의 얼굴을 가장 많이 부각하지 못해 안달하고 자신의 내부에서만 삶의 충만함을 경험하고자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의 결과란 삶의 충만함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한 자살일 따름이기 때문이며, 자기 존재를 완전히 규정짓는 대신 완전한 고립에 빠져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에는 모든 사람들이 개개의 단위들로 분리되었고 각자 자신의 동굴 속에 고립되어서 다른 사람에게서 멀어져 몸을 숨기고 자신이 갖고 있는 것도 또 숨기고, 그러다 결국에는 자기도 사람들로부터 내쳐지고 또 자기 스스로도 사람들을 내치게 되는 것이지요. 고립된 채 부를 축적하면서 이제 나는 얼마나 강한가, 생활이 얼마나 안정되었는가 생각하지만, 부를 축적하면 할수록 더더욱 자살과 같은 무기력에 빠져 든다는 것을 이 정신 나간 자는 모르는 겁니다.
-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中 -
누구나 자신의 얼굴을 가장 많이 부각하지 못해 안달하고... ... 자기 존재를 규정짓는 대신 완전한 고립에 빠져버리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대목에서 SNS가 생각났다. 많은 사람들은 좋은 순간들만을 포장하여 SNS에 박제한다. 여행을 갔을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애인에게 선물을 받았을 때, 시험 및 취업에 합격했을 때, 본인의 외모를 과시하고 싶을 때 등등 개인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공간이라는 미명 하에 우리는 SNS에서 어떻게든 자신을 부각하지 못해 안달이다. 일부의 경우, 사람들이 보여주는 관심이 (좋아요, 팔로워 숫자 등) 그 사람의 자존감의 뿌리가 되기도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SNS를 많이 하는 사람들일수록 우울할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들도 있다. 게다가 좋은 모습만 박제된 타인들의 SNS를 통해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연결시킨다는 SNS의 모토가 실제로는 사람들을 더더욱 고립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으로 이목을 끌었던 구절은, 우리 시대에는 모든 사람들이 개개의 단위들로 분리되었고 각자 자신의 동굴 속에 고립되어서... ... 결국에는 자기도 사람들로부터 내쳐지고 또 자기 스스로도 사람들을 내치게 되는 것이지요. 이 부분에서는 혼밥, 혼술문화가 생각이 났는데 이제 드라마나 예능 등에도 많이 나올 정도로 1인 가구는 보편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필자도 혼자 노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여행, 영화, 밥, 술 등 혼자 놀 때가 많으며 혼밥의 레벨도 고깃집 정도는 혼자 갈 수 있는 정도니 꽤나 높은 편인거 같다 (disclaimer: 그렇다고 왕따는 아니고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은 편인 것 같아 인복이 있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람들도 자주 만나고 연락도 하며 지내지만, 혼자 있을 때 느끼는 편안함과 고요함이 좋아 아무리 바쁘고 사람들에 치여 살더라도 주말 하루 정도는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편이다.
예전에는 이렇게 혼자 잘 노는 나를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는데 이제 점점 혼자 노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내가 보통의 범주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확실히 과거보다는 사람들 간 교류가 단절되고 각자 자신의 동굴 속에 고립되어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적인 예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이웃들과 교류하지 않고 집에 오면 자물쇠를 걸어 잠근다. 과거처럼 이사를 왔다고 떡을 돌리고 이웃끼리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뿐이랴. 가족끼리도 개개인의 단위로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집에 와서도 스마트폰이나 TV를 보는 경우가 많아 매일 1시간도 대화를 나누지 않는 가정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헤르만 헤세도 그랬었지. "산다는 것은 외롭다는 것이다 사람은 서로를 알지 못한다 모두가 다 혼자이다"
위의 예시가 너무나 인상 깊은 구절이어서 도스토에프스키의 약력을 찾아보니 19세기 사람이다. 당시 인터넷이나 스마트폰도 없고 마차를 타고 다니던 시절이었을 텐데, 도스토예프스키는 200년 전에 SNS, 혼술, 혼밥 문화를 예견했다. 이게 대문호의 통찰력인 걸까. 가끔씩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사유하는 힘은 시대를 초월한다는 생각을 한다. 역시는 역시다. 글을 마쳤으니 혼자 밥 먹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