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중섭 Mar 26. 2017

가끔 드는 생각, 우리는 진짜일까?

미드 <웨스트 월드>를 보고

지인의 추천으로, 미드 <웨스트 월드>를 보았는데 시즌1 에피소드 10개를 하루 만에 다 몰아서 보았다. 왕좌의 게임의 뒤를 이을 HBO의 야심작인데 간단히 내용을 이야기하자면, 미래 인공지능 로봇들이 살고 있는 테마파크 웨스트 월드에서 사람들은 게스트로서 실제 서부 생활을 체험해 볼 수 있다. 겉모습은 사람들과 다를 바 없지만, 로봇들은 매일매일 비슷하게 프로그래밍된 삶을 살게 되는데 (총잡이는 총잡이의 삶, 창녀들은 창녀들의 삶 등), 어떤 이유에서인지 일부 로봇들에게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의식이 생기는 버그가 발생한다. 인간인 게스트가 웨스트 월드에서 하는 그 어떤 행위도 용납되기 때문에, 게스트들은 카우보이가 되어 인공지능 로봇 (드라마에서는 테마파크에 배치된 로봇들을 호스트라 부른다)을 죽이고, 쾌락을 위해 강간을 하는 등 비윤리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이건 게임인데 뭐 어때'라며 신나게 쾌락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eiMDQ0HlkA

웨스트월드 에고편

드라마의 초입은 인공지능 로봇 여주인공에게 누군가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너의 존재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의문을 품은 적이 있나?"

물론 자신이 로봇이라는 것을 알 턱이 없는 주인공은 "아니오"라고 대답하지만,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자의식을 가지게 된 로봇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혼란스러워하며 묻는다. 당신은 진짜야? 나는 누구야? 우리가 어디 있는 거지? 사실 이렇게 인간을 빼닮은 로봇 혹은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많이 우려먹은 주제이며 <블레이드 러너>, <매트릭스>, <터미네이터>, <AI> 등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SF영화들이 헤아릴 수 많다. 영화마다 나름의 스토리가 있고 시사하는 메시지가 있지만, 내가 이런 류의 콘텐츠를 보고 공통적으로 드는 생각이 있는데 바로 그럼 나는 진짜일까?   


사람을 빼닮은 로봇이 언젠가는 상용화 되겠지


진짜. 사전에 진짜를 쳐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진짜 [명사]: 본뜨거나 거짓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닌 참된 것

분명 지금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 내 손가락이나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는 진짜이다. (혹은 적어도 내게는 진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웨스트 월드>를 포함한 다른 영화에서 나오는 로봇들도 자신이 로봇인지 모른다. 로봇들은 모든 것들이 엔지니어에 의해 프로그래밍돼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삶을 진짜라고 믿으며 산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 사실은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엄청나게 정교하게 짜인 프로그램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개개인의 삶은 0과 1로 구성된 디지털처럼 0,1,00,01,10,11 같이 코드화 돼있으며, 우리는 자신의 삶을 통제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믿도록 설계된 것은 아닐까? 하루 중 나를  "진짜"로 규정지을 수 있는 순간들이 얼마나 될까?  


나온 지 좀 된 영화지만,  <매트릭스>에는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 있다. 매트릭스의 존재 및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네오에게 모피어스는 2가지 약을 건넨다. 빨간약을 먹으면 네오는 진실에 눈을 뜨고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게 되지만, 매트릭스라는 거대한 시스템과 지독한 투쟁을 해야 한다. 반대로 파란 약을 먹으면 계속 시스템의 지배를 받으며 노에처럼 살 테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침대에서 잠을 깰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결국 네오는 빨간약을 먹고 진실을 택한다.  어릴 때 영화를 보며 만약 나라면 똑같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라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누군가 내게 물어본다면 겉으로는 빨간약을 먹어야지라고 말했겟지만 (그것이 영화 속 주인공이 택한 정의로운 길처럼 보였기에), 당시 나는 속으로 어쩌면 파란 약을 먹는 것이 속 편한 결정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 대부분이 택하는 길이자 안전한 시스템 내에서 안주할 수 있는 길이기에 (설사 그것이 진짜가 아니더라도!)      

매트릭스 속 유명한 빨간약 파란약장면


나이를 먹은 걸까 아니면 버그가 생긴 걸까.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설령 빨간약을 먹고 스미스 요원과 싸울 일이 생기더라도 나는 매트릭스에 갇혀서 노예처럼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진짜가 되고 싶다. 설사 내가 로봇이라도 나는 자의식을 가진 로봇이고 싶다. 실제 <웨스트 월드>에 나오는 로봇들도 모두가 자의식을 가지지는 못한다. 매일 똑같이 프로그래밍 된 삶을 살면서 발생하는 미묘한 사건들에 의구심을 품고 깊은 사유를 하는 소수의 로봇들만이 서서히 자의식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끊임없이 질문한다. 우리는 진짜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추녀와 야수"였어도 해피엔딩이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