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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Feb 06. 2018

데이터와 인류의 미래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저자 유발 하라리가 다보스에서 던진 화두

이 글은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2018년 다보스포럼에서,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본인의 견해다. 개인적으로 그를 21세기 가장 통찰력 있는 사람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2017년 읽었던 신간 중 최고를 꼽으라면, 단연코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다. "미래의 역사"라는 부제를 달고,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탁월한 식견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큰 그림을 그리며 대담한 예언을 한다. 저자가 예상하는 미래의 변화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인간은 경제적, 군사적 쓸모를 잃을 것이고, 따라서 경제적, 정치적 시스템은 그들에게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을 것이다.
2. 시스템은 인간에게서 집단으로서 가치는 여전히 발견할 테지만, 개인으로서의 가치는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3. 시스템은 일부 특별한 개인들에게서 가치를 발견할 테지만, 그런 개인들은 일반 대중이 아니라 업그레이드된 초인간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엘리트 집단일 것이다.


저자가 전망하는 미래의 상을 하나의 표현으로 정의하면, 평범한 개인의 몰락이다. 이것은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종류의 불평등이 나타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저자는 미래에 출현할 새로운 엘리트 계급은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행복, 불멸, 신성을 추구하는 신과 같은 종이 될 것이라 전망한다. 새로운 종 호모 데우스와 기존의 호모 사피엔스의 차이는, 과거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테르탈인의 그것보다 클 수 있다고 주장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WSSN_KEOc1A

<호모데우스>는 단연코 2017년 최고의 신간이었다

미래의 불평등은 왜 기존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인가? 농업혁명 이후 잉여생산물이 생기면서 계급이 형성된 것을 보면, 불평등의 역사는 실로 오래됐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격차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언제나 존재했다. 이러한 불평등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삶이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 곳은 학교에서 뿐이다. 하지만, 기존의 불평등은 인간이라는 종 내에서의 불평등이다. 왕과 거지, 부자와 빈자, 사장과 종업원의 격차가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한갓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이다.

    

하지만 미래의 불평등은 다르다. 유발 하라리에 의하면, 미래에 계급을 가르는 기준은 데이터가 될 것이며 이는 인간 종의 한계를 벗어난 수준의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다. 데이터를 소유한 사람이 (a.k.a 그럴만한 경제력이 있는 부자), 뇌를 업그레이드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수준을 넘어 영생의 단계에 이르는 것은, 불평등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도 그다지 유쾌한 상상은 아닐 것이다. 2018 다보스 포럼에서 그는 가장 중요한 데이터는, 인간 생체에 관한 데이터라고 밝혔다. 미래에는 은행 계좌나 컴퓨터를 해킹하는 것이 아닌, 사람의 생체 데이터를 해킹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그의 전망을 들으면, 등골이 서늘하다.


이와 관련, 유발 하라리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체 데이터의 잠재력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직 중국만이 큰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가 중국을 언급한 부분이 무척 흥미로웠다. 실로 그렇다. 현재 막대한 데이터를 보유한 미국 회사들의 관심은 사람들이 무슨 물건을 사고, 어떤 것을 검색하고, 어떤 콘텐츠를 좋아하는지 따위에 치우쳐있다. 생명공학에 가장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것은 구글 정도다. 개인정보를 중요하게 여기는 서구권에서, 생체 데이터를 민간 기업이 소유하는 것은 민감한 이슈고 반발하는 단체도 많아 사업화하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하지만 국가의 목적을 위해, 개인정보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는 중국은 다르다. 중국은 이미 13억 중국 인구의 안면 인식 정보를, 2020년까지 DB화 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정부의 명분은 생활의 편리와 범죄의 근절이지만, 21세기 빅브라더와 같은 체제 안정과 일상의 감시가 주된 목적 이리라. 그런데 만약 개인의 생체 데이터를 정부가 소유한다면? 출생신고를 하듯, 신생아의 세포 샘플 채취를 의무화하고, 이를 통제하고 관리한다면? 미래에 중국 정부는 아마 국민의 건강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중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자들을 납치, 감금 및 고문하는 것이 아닌 이들의 생체 데이터를 조작해 피 흘리지 않고 제거하는 것이, 식은 죽 먹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중국의 안면 인식

 

또한, 유발 하라리가 한 다음의 말은 왜 다수의 대중이 데이터를 신봉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인간은 자신을 잘 모른다. 내가 21세였을 때 나는 몇 년간 부정한 끝에 내가 게이라는 걸 깨달았다. 10~20년 후에 알고리즘이 10대 청소년에게 동성애자, 이성애자 스펙트럼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려주는 미래를 상상해보라. 그런 알고리즘 사용을 꺼릴 수도 있지만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로 그렇다. 가령, 인생의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서, 결정의 주체인 인간은 놀랍게도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점쟁이를 찾아가고, 신에게 의존하고, 타인에게 대신 선택을 내려줄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만약 알고리즘이 객관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명쾌한 해답을 내려준다면 이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을까. 예를 들어, 오늘 점심은 뭘 먹을지, 휴가 때 어느 여행지를 갈지와 같은 사소한 결정에서부터 이성 파트너를 만날 때, 진로를 결정할 때 등과 같은 다소 중요한 결정에 이르기까지 알고리즘은 인간의 직관과 판단을 훌륭히 대체할 수도 있다.  


결국,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데이터의 시대에 인류는 두 부류로 나뉠 것인데, 자신을 잘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자신을 잘 아는 자는 데이터의 주인이 될 것이고, 자신을 잘 모르는 자는 데이터의 노예가 될 것이다. 전자는 자신의 판단에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좀 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후자는, 알고리즘이 제시한 맞춤형 솔루션에 근거해 꼭두각시 같은 삶을 살 확률이 높다. 자신이 자유의지가 있다고 착각하지만, 결국엔 알고리즘이 추천해준 대로 사는 삶이 노예의 삶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한 고대 그리스 현인의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니라고 한다) 가르침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3ygH3Eud70o&t=65s

<호모데우스>보다 <사피엔스>를 먼저 읽기를  권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7Xs3auqcX7k&t=38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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