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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Sep 01. 2017

엑스트라여도 괜찮아

99%의 마이너들을 응원하며

여름휴가로 뉴욕을 갔을 때, 브로드웨이에서 라이온 킹 뮤지컬을 본 적이 있다. 죽기전에 한 번은 봐야할 명작이라고 생각하는데, 특이점은 엑스트라들이 정말 많다. 라이온킹하면 떠올리는 캐릭터를 세보자. 일단 주연급인 심바, 무파사, 스카부터 굵직한 조연급인 티몬, 품바, 하이에나, 주술 원숭이 등등. 그런데 뮤지컬에 나오는 배우들의 다수는 기린, 풀, 새, 코뿔소 머리, 사슴, 코끼리 다리처럼, 얼굴도 안 보이고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엑스트라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있기에, 라이온킹의 무대는 꽉 차고 웅장한 느낌을 준다. 공연을 보는 내내 엑스트라들을 응원하며 최대한 배우들의 얼굴을 눈에 담아두려 했던 기억이 있다.

뮤지컬 라이온 킹 속 수많은 엑스트라들

솔직히 예전에는 이런 엑스트라들을 눈여겨 본 적이 없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화려한 주인공들에게만 집중하고 수많은 엑스트라들의 땀방울은 보지 못한다. 대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성공한 사람은 고작 10프로도 안되고, 나머지 대부분의 엑스트라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간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열악한 생활을 버티며 엑스트라로 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언젠가 무대 위 주인공이 될 날을 꿈꾸며.


엑스트라들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들에게 지지를 보내기 시작한 계기는 내가 엑스트라의 삶을 체험해보면서다. "이러다 혹시 베스트셀러가 되면 어쩌지?" 라는 생각으로 호기있게 책을 냈지만, 결과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매일 수 백권의 책이 출판되고 (무척 놀랐다. 한국처럼 책 안 읽는 나라에서 매일 수 백권의 책이 나온다니!) 그 중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은 단 1%뿐인데, 아쉽게도 나의 책은 나머지 99%에 속한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어떤 코미디언의 유행어였는데, 이 명제가 참인 것이 책 시장이다.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지인들은 이제 인세받으면 부자되는거냐며 한턱쏘라고 하는데, 솔직히 1년 인세로 한국가는 비행기값이나 나올지 모르겠다. 혹시나 당신 주변에 책을 쓴 지인이 있고 그 책이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섹션에서 찾아볼 수 없다면 판매량이 궁금해도 참아주자. 어차피 무의미한 숫자고 질문을 받는 당사자는 똑같은 질문을 여러 번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출판시장에서 철저히 무명임을 느낀 후, "아 나는 획은 커녕 점도 아닌 미물이구나" 라며 겸손을 강제로 배우고 있다. 내 이름으로 책을 출판한다는 것 자체가 최종 목적이 아닌 과정이었기에, 실패라는 표현은 쓰고 싶지 않다. (어쩌면 현실인정하기 싫은 인지 부조화일 수 도 있다) 다만 출판 시장에서 아직 나는 삼류 엑스트라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누구는 그거 해서 뭐할건데? 라고 묻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반문하고 싶다. 꼭 뭐 해야만해? 출판사에 수 많은 거절을 당하고 때때로 자괴감을 느끼면서 꾸준히 책 낼 생각을 하는건 그냥 좋아서다. 아마 라이언킹 무대 속 수많은 조연들도 나와 같은 심정이겠지. 아무리 나 좀 봐달라고 소리없는 아우성을 부르짖는,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엑스트라지만, 그냥 그 자체가 좋아서.


그러니 주변에 바보같이 돈도 안되는 일 고집부리면서 하는 엑스트라가 있을지라도 이해해주자. 남들에게 아무리 무모해보이고, 승산없는 게임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엑스트라 당사자들은 그냥 그게 좋아서 하는 것이라는 걸. 그냥 그 일을 할때 행복하니까 배고픔을 참아가며 버티는 것이라는 걸.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을 어느 무명의 존재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이런건 원래 그 분야에 올인해서 무명으로 고생하다 성공한 사람이 말해야 멋있는거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당신의 바보같음에 박수를 보낸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엑스트라여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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