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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아무개 Oct 19. 2021

남의 연애 이야기 3

그 해 겨울은 우리 두 사람의 인생에 최고의 겨울이었다. 적어도 나한텐 그랬다. 첫 연애였던 나에게는 그보다 더 완벽할 순 없었다.


몇 번의 데이트 후 여느 때와 같은 또 한 번의 데이트 날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고 록펠러센터의 트리는 화려하게 빛을 한창 내고 있을 때였다. 그와 나는 수 백명의 관광객들 사이에서 어쩌다 보니 한 남자의 프러포즈 이벤트를 보게 되었는데, '영화 촬영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만큼 가슴 설레는 광경이었다. 아이스링크 한가운데서 반지를 바치며 무릎을 꿇은 남자와 그 앞의 여자를 보고 있던 우리. 나는 사실 연애 자체가 매우 서툴던 때라 그 광경도 와닿지 않았고 나를 뒤에서 안고 있는 그가 조금은 불편했다. 키가 비슷했기에, 슬프게도 약간은 짧은 듯 모자랐던 그의 팔 길이 때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웃픈 상황을 뒤로하고 나는 그가 계획한 데이트 코스를 따라갈 뿐이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마주하는 록펠러센터 마천루로 올라가는 여정은 짧지 않았지만 즐거웠다. 관광객을 위해 포토존을 마련해 두었는데 우리 차례가 되기 직전에 그는 화장실을 갔다 온다고 했다. 뭔가 이상했다. 그가 돌아와선 상기된 얼굴로 하는 말이 아 글쎄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오늘따라 왜 그러냐고 약간 성가신 듯한 내 말은 "Next, please!"라는 말에 묻혔다.


뉴욕에 간 지 2년 조금 넘었을 때였다. 관광객 모드로 돌아다닐 때 한 두 번 올라가 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내 눈앞에 있었다. 여기도 한 번은 와볼 만 하구나 하고 감탄하고 있을 때, '응? 갑자기?' 그 시간 내내 그가 긴장하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도 살면서 사귀자는 프러포즈를 받아볼 줄이야. 그냥 둘이 있을 때 '우리 사귈래?'라고 하면 그만 아닌가 라고 생각한 거에 비해 손발이 약간 고사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나를 위해 많은 계획을 했다는 것에 고마운 일이었지만, 참 우리 둘 다 서툴었네 하고 웃을 수 있는 이벤트 같았다.


난 그렇게 생애 첫 키스를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받게 되었고 그러곤 바로 쪽팔림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를 안는 척 내 얼굴을 숨겼다. 그러곤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다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보고 계십니다..



내가 왜 이 얘기를 쓰게 되었는가를 잘 생각해 본다. 13년이 지난 지금 그와의 아주 잠깐 동안의 이야기를 왜? 뭘 위해서? 사실은 나도 잘 모른다. 어느 날 새벽잠이 너무 오지 않아 뒤쳑이던 날, 그냥 한번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를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 긴 세월 동안 내가 미쳤다고 생각한 게 수백 번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세월을 맞으며 늙어가는 마당에 무슨 주책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나도 나의 마음을 모르기에, 이렇게라도 쓰며 전지적 내면 시점으로 그렇게 깊숙이 깊숙이 들어가 본다.


나는 지금 영어 강사로, 그는 원어민 교수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나는 그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고 그는 모른다. 겨우 차로 20분 거리를 두고 살고 있다. 그가 애인이 있는지도 모른다. 결혼을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아직까지 그보다 더 좋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나는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


우리의 끝은 언제, 또 어디에 있을까. 잠이 오지 않아 무작정 컴퓨터 앞에 앉아 수없이 되뇌었던 우리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 보았다. 이제는 더는 곱씹을 조각 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것도 안다. 결국엔 이 글이 내가 그를 잊을 수 있게 해 주거나 move on 할 수 있게 해 주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도. 그 끝은 주님만 알고 계시겠지. 끝.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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