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를 고르는 순간 당신은 현존한다
얼마 전 마트의 유제품 코너에 갔다가, 시중에 버터라는 이름을 달고 나와 있는 제품 중 '진짜' 버터를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사실에 놀랐다. 버터가 다 똑같은 거 아니냐고? 진열되어 있는 버터 중 하나를 골라 가까이 살펴보는 순간 궁금증은 풀린다. 만약 포장지 한쪽 면에 작게 "가공버터"라고 쓰여 있다면 그건 '진짜' 버터가 아니다.
우유로부터 나오는 동물성 유지방으로만 만들어진 천연 버터만이 "가공"이라는 표기 없이 순수하게 '버터'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올 수 있다. 가공버터는 여기에서 유지방 함량을 줄이고 식물성 유지를 채워 넣어 만든다. 어떻게 보면 천연버터와 마가린이 합쳐진 것이다.
상품명만 언뜻 봐서는 둘을 구별하기가 힘들다. 식품유형이 '가공버터'와 그냥 '버터' 중 무엇으로 되어있는지 확인하거나, 성분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마저도 조그맣게 쓰여있는 탓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못 사기 십상이다. 고소한 우유맛을 기대하며 들고 왔는데 뜯어보니 식물성 기름이 첨가된 가공버터인 경우가 벌어지는 것이다.
착각으로 인해 맛있는 버터를 먹지 못해 김이 새고, 돈만 버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엔 그 나름대로 좋은 점이 있다. 어쩌면 버터를 제대로 사 오는 것보다 더 대단한 일일지도 모른다. 가공버터를 진짜 버터라고 착각한 순간, 당신은 자신이 틀림없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의 너무나도 유명한 말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결코 의심할 수 없이 확실한 참을 찾아 헤매던 데카르트가 마침내 도달한 결론이다.
삶에서도, 학문에서도, 결코 거짓이 될 수 없는 확실한 참을 찾고 싶었던 데카르트는 이때까지 자신이 참 또는 거짓이라고 믿어왔던 모든 것들을 다시금 점검해보고 싶었다. 이를 위해선 믿음을 하나하나 전부 살펴볼 수도 있지만,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 전체 믿음의 체계를 떠받치는 토대를 점검해보는 것이다.
아무리 하늘 높이 치솟은 빌딩이라도 1층이 무너지면 빌딩 전체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처럼, 어떠한 믿음 체계의 바탕이 되는 믿음이 거짓이라고 탄로 난다면 그 위에 쌓인 모든 믿음 전체가 불확실하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데카르트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형성하는 믿음의 근본적인 토대는 바로 우리의 감각경험이었다.
내가 지금 "마트에서 버터를 구경하고 있다"고 믿는 것은 내가 마트 안에 서서, 눈 앞에 비치는 각종 다양한 버터를 보며, 그것들을 직접 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가 세상을 감각하는 경험은 내가 어떤 것을 참이라고 믿게 해주는 가장 원초적이고 직접적인 근거이다.
너무나도 빤히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니까 별다른 의심 없이 이것들을 참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만약 이 모든 게 환상이라면? 데카르트는 의심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일단 한 번 의심해보라고 말한다.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나는 사실 마트 근처에도 가지 않은 채로 그러한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않나.
감각경험이 거짓일 수도 있다면, 그걸 근거로 형성한 "마트에서 버터를 구경하고 있다"는 믿음도 거짓일 수 있다는 얘기다. 어디 그뿐인가.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의 절대다수가 감각경험에 기초하고 있을 텐데. 내가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우르르 무너져내리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데카르트는 의외의 깨달음을 얻는다. 내가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그저 환상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환상일지 모른다고 내가 의심하는 한 그렇게 '의심하는 나'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이것만큼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참이다.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즉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근거인 것이다.
이때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내게 감각되어지는 것들은 전부 의심할 수 있다 하더라도, 다시 말해 내 앞에 있는 버터가 전부 환영일 뿐이라도, "버터를 보고 있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은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참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그렇게 생각하는 나'의 존재 또한 의심불가능 해진다.
당신이 가공버터를 진짜 버터로 착각하고 잘못 산다면, 이는 당신이 가공버터를 들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진짜 버터라고 '생각'했다는 것과 같다. 즉 가공버터를 실수로 천연 버터라고 판단한 그 순간, 당신은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공버터를 잘못 보고 진짜 버터라고 착각해 사게 되는 실수를 할 때마다 당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보다 확실해지겠지만, (채식주의자가 아닌 이상) 버터를 살 때는 어쨌거나 포장지를 유심히 살펴보고 '진짜' 버터를 사기 바란다. 원유 100%가 주는 맛의 차이는 꽤 크기 때문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다양한 브랜드의 버터 중에서 내가 가장 즐겨 찾는 것은 이즈니 버터다. 생우유를 입 안 가득 머금은 것 같은 산뜻한 풍미는 버터를 먹겠다는 구실로 빵을 사게 만든다. 이즈니 보다 좀 더 귀한 대접을 받는 에쉬레는 내 취향이 아니다. 너무 묵직한 우유맛이랄까. 사실 버터계에서 최고라고 추앙받는 버터는 보르디에 버터다. 이 버터는 프랑스 밖에서는 좀처럼 만나기도 어려워서 아쉽게도 아직 못 먹어봤다.
사실 나는 버터를 워낙 좋아해서 아무것도 없이 버터만 씹어먹으라고 해도 별 불만이 없을 정도지만, 그래도 역시 버터는 빵과 곁들일 때 가장 맛있다. 거기에 달콤한 팥앙금을 더해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앙버터'를 내가 맨 처음 맛본 것은 거의 10년도 전인데, 대체 누가 이런 조합을 발견해냈는지 그 당시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참치와 마요네즈 조합에 견줄 수 있는 천재적인 조합이 아닌가.
앙버터는 재료만 준비되면 만들어먹는 것은 지극히 간단하다. 그저 재료를 샌드하기만 하면 끝. 바게트처럼 단단한 계열의 빵을 사용하는 타입과 치아바타처럼 몰랑한 빵을 사용하는 타입이 있는데, 둘 다 각자의 매력으로 맛있다. 물론 그냥 식빵도 문제없다. 오늘 나는 통밀 식빵을 토스트해서 사용했다.
주인공인 버터는 역시나 이즈니 버터. 나는 낱개 포장되어있는 것을 사용해서 버터에 포장재 모양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블록으로 판매되는 버터를 네모지게 잘라 사용하는 편이 더 예쁘긴 하다.
빵을 토스트 하고, 식힌 팥앙금과 차가운 버터를 올린다. 그리고 세 가지 재료를 한 입에 머금는다. 바삭하게 바스러지는 고소한 빵과 달콤한 통팥. 거기에 더해지는 시원하고 깨끗한 맛의 버터가 만들어내는 맛의 조합. 지금 이 순간 "맛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더할 나위 없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