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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수민 Apr 25. 2019

'국가'를 위한 레시피

라면 혹은 국가의 이상적인 레시피

음식에서 유달리 '이상理想'을 추구하게 되는 건 언제일까? 내 생각에 그건 바로 라면을 먹을 때다. 고급스러운 음식은 오히려 후보에서 탈락이다. 트러플이니 캐비어니, 아무리 비싼 진미라 해도 어쩌다 한 번 먹은 트러플로는 '이상적인 트러플'이 뭔지 감을 잡지 못한다. 다양한 상황에서 여러 번 먹어봐야 맛있고 맛없음의 기준이 잡히며, 제대로 조리되었는지 아닌지도 판단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라면은 합격이다. 누구나 여러 번 먹어볼 수 있는 음식인 데다가 조리법도 지극히 단순하니 조리에 대해 평가하기도 쉽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적부터 자신만의 시행착오를 통해 어떤 라면이 자신의 기준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인지 노하우를 쌓아왔다.


완벽한 라면을 끓이기 위한 도구 중 하나인 라면물 계량컵 Ⓒ농심


이러한 까닭에 이상적인 라면 레시피는 사람 수마다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의 양을 계랑컵으로 칼같이 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충 눈대중으로 맞추는 사람도 있다. 면을 먼저 넣는지 스프를 먼저 넣는지도 의견이 분분하고, 첨가하는 부재료도 각양각색. 타이머를 동원해 면을 익히는 사람도 있는 반면, 적당히 봐가며 감으로 끓이는 사람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라면이란 부재료는 아무것도 없이, 면은 살짝 꼬들하고 물은 살짝 적은 듯이 끓이는 것.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 나는 이렇게 지극히 기본적인 라면이 좋다.




이상적인 '국가'의 레시피


사람들이 각자의 이상적인 라면에 있어서 까다로운 것처럼, 플라톤은 이상적인 ‘국가’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까다로운 레시피를 적어두었다. 그리고 그 레시피는 너무나도 유명해서, 학교나 책 아니면 텔레비전에서라도 꼭 한 번은 접하기 마련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중학교 도덕 교과서에도 그 일부가 언급되어 있었던 듯하다. 그런데 플라톤이 <국가>에 써둔,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은 조금 황당하다는 인상을 준다.


플라톤의 이상적인 국가에서는 우선 타고난 자질과 성향에 따라 사람들을 세 가지 계급으로 분류한다. 통치자, 수호자, 생산자의 세 계급이 서로 맡은 바를 수행해야 그들이 구성하는 국가도 훌륭하게 기능한다고 말하며, 플라톤은 계급 간의 이동을 절대 불가능한 것으로 설정해둔다.


너무 극단적인 계급사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더욱 파격적인 설정이 등장한다. 배우자는 서로서로 공유한다는 것이다. 동거나 결혼 등을 통해 1:1의 사적인 관계가 고정되지 않는다. 그저 모두가 나의 배우자요, 나는 모두의 배우자다.


하지만 그 모든 배우자들이 전부 내 아이의 아빠 혹은 엄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국민의 재생산은 국가에 의해 관리되기 때문이다. 마치 동식물의 우수한 품종을 얻기 위해 특정한 개체끼리 교배시키듯, 우수한 자질의 아이를 생산하기 위해 정해진 사람들끼리 아이를 낳는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는 모두가 공동으로 키우는 탓에 누가 자신의 생물학적 자식이고 부모인지는 알 수 없게 되어있다.


이렇게 엄격하고 절대적인 공동체 생활을 통치하는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흔히 '철인'으로 일컬어지는, 평범하게 말하면 철학자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스스로 왕이 되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지혜를 추구하며 그러한 지혜를 깨달은 철학자만이,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사적인 욕구에 휘둘리지 않은 채 국가를 위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플라톤은 말한다. 따라서 철인의 1인 통치가 최고의 정치 체제라고 주장한다. 다수에 의한 민주주의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의견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조금 멈칫하게 되는 대목이다.


ⒸExistential Comics


읽으면 읽을수록 황당함을 느끼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너무나 극단적이고, 애초에 실현 가능성이라고는 없어 보이며, 오히려 실현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싶은 체제를 바람직한 국가상이라고 제안하다니. 이런 걸 제안한 플라톤은 대체 무슨 생각이란 말인가.




두 발은 현실에 붙인 이상주의자


이런 국가상은 주로 플라톤을 소개하면서 곁들이로, 별다른 맥락 없이 언급되는 탓에 플라톤이 현실감각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상주의자라는 인상을 주는 데에 한몫한다. 가뜩이나 현실의 감각 경험보다 정신적이고 관념적인 '이데아'를 추구한 사람이 아닌가.


하지만 플라톤은 자신이 제시한 국가상이 어디까지나 '이상'일 뿐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이는 <국가>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실현 가능성은 물론이고 오히려 실제로 실현되면 위험하진 않을지 걱정하는 등장인물들에게, 플라톤의 입장을 대변하는 소크라테스가 이러한 국가는 ‘’, 즉 모델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본’이라는 건 곧 비유와 같다는 이야기. 이 레시피를 곧이곧대로 따라서 만들라는 말이 아니라, 이 레시피를 보고 뭐가 중요한지 파악하라는 것이다. 철학자 왕이라는 설정은 자기와 같은 철학자들을 통치 계급에 앉히려는 목적이 아니라 국가 통치의 기본이 '지성'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국가의 원활한 기능을 위해 계급이 나뉘고, 사적 생활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것 또한 국가의 존립 이유가 '개인의 사적 이익'이 아닌 '시민 전체의 최대 행복'에 있음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라면이란 걸 생전 보지도 못한 사람에게 라면 면발과 스프만 덜렁 건네주며 "수도꼭지와 불은 저쪽에 있다"고 말해봤자 그 사람은 제대로 된 라면을 끓이지 못한다. 스프는 무슨 역할을 하고 면발이 어떻게 익는지 등등을 머리로 알고 나야 비로소 주어진 재료로 훌륭한 라면을 끓일 수 있다.


플라톤의 국가도 그러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의 국가를 훌륭하게 만들기 위하여 우리에게 미리 알려주는 모델일 뿐이다.




첫인상을 뿌셔뿌셔


Ⓒ오수민


맨 처음 와사비김맛 뿌셔뿌셔를 봤을 때, 마치 플라톤의 국가상처럼 머릿속에서만 있었어야 되는 음식이 아닐까 싶었다. 현실에 실현되면 오히려 위험한 레시피 말이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너무 맛있다. 애초에 뿌셔뿌셔는 초등학생 이후로 사 먹어본 적도 없거니와 앞으로는 영영 먹을 일이 없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알싸하고 본격적인 와사비의 맛에 짭짤한 김맛이 어우러져 순식간에 한 봉지를 다 비우고 말았다.


Ⓒ오수민


뿌셔뿌셔에 감동하다니, 왠지 묘하게 자존심도 상하고 당황스럽지만 이건 현실에 적용해도 충분히 괜찮은 레시피였나 보다. 당분간 라면은 진짜 ‘라면’ 대신 뿌셔뿌셔를 사 먹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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