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취학 아동이었을 때부터 생간을 좋아했던 나는, 고기에 핏기가 배어있는 걸 좋아한다. 소고기는 당연히(?) 덜 익혀 먹는다. 겉면만 익으면 바로 불에서 내려야 한다. 돼지고기도 핏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을 때까지만 익힌다. 돼지고기로 인한 기생충 감염은 국내에선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준비를 하고. 종종 실수로 닭고기를 덜 익혀버릴 때도 있는데, 이럴 때도 다시 익히기 귀찮아서 그냥 먹는다. 닭고기는 덜 익으면 확실히 맛이 없지만.
이런 나에게 고기를 살짝만 데쳐서 먹는 게 미덕인 샤브샤브는 꽤 매력적인 음식이다. 계속해서 불을 조절해야 하고, 재료도 스스로 넣어가며 먹어야 한다는 점이 조금 귀찮긴 하지만 도리어 이점 때문에 다른 음식과 차별화된다. 단 한 번도 고정된 상태가 없다고 할까, 냄비 속 육수는 불 덕분에 끊임없이 끓고 있고, 어떤 재료를 어떤 순서로 넣었느냐에 따라서 육수의 맛도 계속해서 변해간다.
이런 걸 생각하던 참에 고기를 육수에 '담갔다 뺐다'까지 하고 있으면 나는 영락없이 헤라클레이토스를 떠올리게 된다. 바로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유명한 구절의 주인공이다.
고대철학이 주는 재미 중 하나를 꼽자면,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고 우리 모두 모른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물론 모른다는 것이 '이해를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어떤 것을 의미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뜻이다. 고대 철학자들은 그야말로 옛날 사람들이다보니 지금까지 전해지는 자료가 충분하지 않고, 자료가 있더라도 고대 그리스어를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특히 이런 경우인데, 그중에서도 헤라클레이토스는 유독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의 화법 자체도 모호한데 그 내용까지 모호해서, 후세뿐 아니라 동시대의 사람들도 어려워했다고.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은 끊임없는 변화의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마치 강물처럼 한 순간도 고정되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간다고 그는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함께 등장하는 것이 "같은 강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인데, 이건 헤라클레이토스의 수수께끼 같은 말을 플라톤이 그 나름대로 다듬은 버전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원문과 가장 가까울 것으로 추정되는 버전을 한국어로 번역해보면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동일하게 유지되는 강에 들어가는 이들에게 다른 것 그리고 다른 물이 흐른다
이 문장은 동일하게 유지되는 것이 강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혹은 강에 들어가는 이들이 동일하게 유지되는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해석 가능한 방향이 하나여도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데, 그 방향까지 여럿이니 이 말은 두고두고 후대 철학자들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다.
언뜻 보면 '다른 물'이 흐르는 '동일한 강'이라는 이 문장은 모순되는 듯이 느껴지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물이 흘러가야 비로소 강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면 꼭 모순적이지만도 않다.
단순히 강의 정의를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 이 문장을 비유적으로 읽어본다면 이를 끊임없이 다른 물이 흘러야만 즉 계속해서 변화함으로써만, 일관된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언제나 동일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오히려 끊임없는 움직임이 요구되는 경우는 결코 드물지 않다. 샤브샤브 냄비 속 육수를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온도, 동일한 맛으로 존재하게 하기 위해선 그냥 처음과 동일한 상태 그대로 놔둬선 안된다. 불을 줄였다가 키웠다가, 육수가 졸아들면 간이 너무 세지니까 물을 더 부어주고 등등 육수를 이루는 모든 요소들이 계속해서 달라져야 한다.
이런 해석, 즉 일관된 상태는 오히려 계속되는 변화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정반대 되는 요소들이 사실은 서로 같은 것이라고 믿었던 헤라클레이토스를 생각하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헤라클레이토스에 따르면 우리는 살아있으면서도 죽어있고, 깨어있으면서도 잠들어있으며, 젊으면서도 늙었다고 말한다. 반대되는 요소들은 서로가 서로를 향해 변해간다는 점에서 동일한 것이라고 말이다. 날 것과 익은 것—샤브샤브 냄비 속에서 날 것의 재료들이 점차 익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아무래도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반대되는 두 속성은 확실히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알쏭달쏭한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이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서 후대 사람들이 그의 철학에 관심을 덜 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알쏭달쏭하기 때문에 더욱 흥미를 끌었는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중에서는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들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은 많은 인기를 자랑해왔다. 사람들은 그가 한 말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그 해석을 또 반박하며 새로운 해석을 발전시켰다.
어쩌면 수수께끼 같은 그의 철학은, 이처럼 갑론을박의 끊임없는 논의가 있기에 비로소 알쏭달쏭한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끝없이 물이 흘러가기에 일관된 상태의 강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아니, 오히려 '알쏭달쏭함'과 '명확함'이라는 서로 반대되는 속성이 동일한 것으로서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에 공존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흐음, 모르겠다. 역시 그는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