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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수민 Apr 11. 2019

반전 있는 남자, 공자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이연복 요리사가 중국 현지로 가 한국의 짜장면을 만들어 파는 방송을 본 적이 있었다. 짜장면은 '중화요리'의 대표적인 메뉴이지만 사실 중국 본토에는 없는 음식이라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된 듯하다. 중국의 '자쟝몐zha jiang mian' 내지는 '작장면炸酱面'이 한국으로 건너오며 겉보기도 맛도 확 바뀌어 짜장면이 되었다.


ⒸtvN '현지에서 먹힐까'


처음 맛보는 '한국 음식' 짜장면을 너무나 맛있게 먹는 중국 사람들을 보면서 역시 짜장면은 맛있지 라고 공감하는 찰나,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이 사람의 고향 또한 중국인 데다가, 짜장면이 중화요릿집 부동의 인기 메뉴인 것처럼 중국 사상사에서 절대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 바로 공자다.


공자를 공부하기 전, 나는 그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흔히 "공자 왈 맹자 왈"로 시작되는 꽉 막힌 유교 질서의 창시자가 아닌가. 잘못된 걸 바로잡기보다는 정해진 위계질서를 강조하고, 체면을 생각해서 허례허식에 집착하는, 꼰대 중에도 보스급 꼰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야 알게 된 '진짜 공자'는 내게 반전 그 자체였다. 짜장면이 실제로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음식이고, 중국 현지의 작장면과는 맛도 모양도 다르다는 것 정도는 놀라운 축에도 못 낄 만큼.




꼰대인 줄 알았는데


뭐가 그리 놀라웠느냐 하면, 공자는 꼰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세상의 모든 꼰대를 타파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달까.


내가 공자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까닭은 흔히 유교 사회의 병폐라고 불리는 것들을 처음 만들어낸 장본인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있다. 속마음은 다를지라도 일단은 정해진 질서에 순응하고, 정작 자신은 못 먹고살아도 조상을 모시는 제사는 성대히. 직접 실행하지 않지만 입으로는 열심히 옳고 그름을 떠드는 사람. 그런데 사실 공자는 이 모든 것의 정반대 되는 지점에 서있는 사람이었다니. 공부하면서 공자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공자의 철학 중 내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직'이라는 개념이었다. 공자는 사적인 감정을 억누르고 대외적인 규범을 우선시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도덕을 실천하기 전에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공자가 가장 중요시했던 것은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도덕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 감정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오로지 상황에 맞는 행동만 하는 것은 도덕적 허위의식에 불과하다. 자신은 충분히 도덕을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도덕의 'ㄷ'자도 실천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공자는 우선 특정한 상황을 맞닥뜨린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직면하고, 나의 감정과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행위의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경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그러한 합의점이 되는 행동들을 모아둔 것이 바로 '예'이다. 예절과 규범은 이러한 맥락에서 중시된다. 내 감정을 아무리 잘 살펴도 사회적으로 무엇이 통용되는지 배우지 못하면 무조건 나를 기준으로 옳음을 정하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공자의 초상화. 왠지 얼굴도 생각했던 것보다 친근하게 생겼다.


나의 사적인 감정과 공적인 규범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 공자이니만큼, 허례허식과도 거리가 멀다. 명절 때마다 도마에 오르는 제사가 유교 문화에 속해서 그런지 나는 또 공자가 이런 '의식'에 목매는 타입이라고 생각했지 뭔가.


이전 화에서도 잠깐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유학의 초점은 기본적으로 "현세를 어떻게 잘 살 것인지"에 맞춰져 있다. 내세나 신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지금 여기 이 세상에서, 다른 이들과 잘 어울려 사는 방법을 찾는 게 유학의 목표이다.


공자의 말을 빌리면, 제사의 초점은 실제로 조상의 영혼이 왔다 간다고 생각하며 그들을 기리는 데에 있는 게 아니다. 제사라는 의식은 오히려 현재를 사는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인 일일 때 그 순기능이 발휘된다. 따라서 현세의 삶은 궁핍하면서 죽은 조상들을 위해 성대한 제사상을 차리는 건 공자 입장에선 앞뒤가 바뀐 것과도 같다.


또한 공자가 "말씀"에 집중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빙산의 일각일 뿐, 그는 오히려 발로 뛰어다니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한 개혁가에 가까웠다.


공자는 당시의 혼란한 춘추전국시대를 바로잡고자 했기에, 자신의 사상을 실제로 정치를 통해 실현시킬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는 여러 지방의 정치가들을 직접 만나고 다니며 그들에게 자신의 사상을 들려주고, 그들을 설득하여 자신의 제안을 실천하게 만드는 데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에 심혈을 기울인 것도 사실이다. 그가 애초에 개개인의 "주체적인" 도덕을 강조했던 것은 그가 모든 인간이 도덕을 실천할 수 있는 본성을 타고난다고 보았기 때문인데, 그래서 그 본성을 후천적으로 발달시켜줄 교육을 중시했다. 그는 직접 나서서 귀천을 막론하고 제자들을 가르쳤고, 세습이 아닌 공평한 방법으로 인재를 등용할 것을 주장했다.




'만들어진' 오해


공자를 오해하고 있던 게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공자에 대해 오해를 풀고 난 후 주변에 공자를 영업(?)할 때마다 사람들은 다들 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자의 이미지가 터무니없이 나빠지게 된 건, 몇천 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공자의 가르침을 전혀 다른 맥락에 끼워 넣어 그의 사상을 조작하거나, 공자가 하지도 않은 말을 일부러 꾸며냈기 때문이다.


지금 접해도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이니 그 당시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을 터. 그만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자를 의도적으로 곡해하여 이용하려고 했던 사람들도 많았고,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의 철학을 잘못 해석하여 퍼트린 사람도 있었다. 결국 그의 사상은 점차 왜곡되어 현재 유교 사회의 단점이란 단점은 모두 공자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생각되고 있다.


중국의 작장면 ⒸJeanette's Healthy Living (bit.ly/2OWkLvG)


처음의 맛과 생김새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다 결국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 한국의 짜장면. 이 변화는 개인적으로는 환영할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황두장을 사용해 짭짤한 맛이 지배적인 중국의 작장면과는 달리 춘장을 사용해서 달콤한 맛이 두드러지는 한국의 짜장면은 중국 현지인들이 먹어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맛이니까.


한국의 짜장면 Ⓒ홈퀴진 (bit.ly/2I4z80f)


하지만 공자는 어떡하나. 모두가 타고났다는 도덕적인 본성조차 잊어버린 사람들 때문에 원래 모습과는 정반대의 이미지가 덧씌워지고 말았다. 이런 오해가 유난히 안타까운 건 누구든지 그의 진짜 모습을 알면 분명 공자를 좋아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특정 계층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평등한 도덕적 주체로 대했던 공자의 사상은 분명 짜장면만큼이나 폭넓은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철학이다. 공자는 기원전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1세기인 지금까지 영향력을 떨치고 있으니 시대를 초월하여 공감을 이끌어낸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공자를 향한 오해가 하루빨리 풀리기를 바라는 수밖에. 짜장면의 정체(?)가 이제는 상식이 된 것처럼 그의 진짜 모습을 언젠가는 모두들 알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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