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때문에 노조에서 전화가 온다.

노사협의체가 AI 앞에서 막히는 진짜 이유

by 김상균

요즘 들어 노사협의체나 노동조합 쪽에서 연락이 늘었다.

질문은 하나다.

AI 도입을 앞두고 있는데, 우리가 뭘 준비해야 할까요?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든다.

일단, 반갑다. 이런 질문을 꺼낸다는 것 자체가 신호다. 막연한 두려움에 머물지 않고, 준비를 해야겠다는 방향으로 고개를 드는 것. 늦었어도 시작했으니 다행이다.


그런데 동시에 걱정이 된다. 이 질문이 생각보다 훨씬 크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대화를 나눠보면 공통점이 있다. AI 도입 자체는 노동자들도 심하게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막상 "그러면 서로 뭘 논의해야 하는가?"로 들어가면, 테이블 위에 올릴 아젠다가 없다.

무엇을 협의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협의를 시작하려는 것이다.


이 질문이 왜 이렇게 크고 복잡한지, 한번 정리해봤다.


1. 질문의 틀부터 바꿔야 한다.

AI와 노동의 관계를 논할 때 대부분 "AI가 내 일자리를 빼앗느냐?"는 질문에 갇힌다. 틀렸다. 더 정확한 질문은 두 축으로 나뉜다.


X축: 현재 vs. 미래

Y축: AI가 대체할 수 있는 것 vs. AI가 대체하면 안 되는 것


이 구분이 왜 중요하냐. '대체할 수 있는 것'은 기술이 발전하면 점점 더 늘어난다. 시간, 순서의 문제다.

그러나 '대체하면 안 되는 것'은 기술 수준과 무관하게 인간이 붙들어야 할 가치의 영역이다.

노사는 ‘대체할 수 있는 것’을 놓고 시간, 순서에 따라서 양측의 고통을 덜어낼 포인트, 준비의 우선순위를 찾아야 한다.

또한 '대체하면 안 되는 것'도 깊게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이 작업을 하는 조직이 거의 없다.


2. 지금의 혼란은 압축된 전개기 때문이다.

경제사에는 기술 혁명이 두 단계를 거친다는 이론(카를로타 페레즈의 2021년 아티클)이 있다.


1단계 설치 국면: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며 혼란과 실험이 폭발한다. 후반부엔 양극화, 포퓰리즘, 기존 질서의 붕괴가 따라온다.

2단계 전개 국면: 새로운 경제, 법, 산업 질서가 자리를 잡으며 혼란이 수습된다.


산업혁명 때는 이 두 단계가 각각 수십 년씩 걸렸다. 그런데 LLM은 불과 3년 만에 사회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속도가 너무 빠른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국가마다, 산업마다, 심지어 기업마다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지가 다 다르다. 어떤 곳은 아직 1단계고, 어떤 곳은 이미 2단계로 넘어갔다. 이 뒤섞임이 혼란을 증폭시킨다.


오늘날 대부분의 AX 담론이 공허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에이전트 개발, 프롬프팅, 자동화 속도 향상에만 집중하는 건 DX의 연장일 뿐이다. 진짜 AX는 이 전환의 맥락 위에서 조직과 인간의 역할 자체를 재설계하는 것이어야 한다.


3. 조직에서 인재의 지능이 바뀌고 있다.

인간에게 요구되어온 지능을 역사적으로 보면 크게 네 단계다.

1) 산업화 지능: KPI, 정량, 효율. 이제껏 우리가 배워온 표준 교육 시스템이 이걸 키웠다,

2) 감성 지능: 2000년대 CX, UX, 브랜드의 시대.

3) 자기성장 지능: 평생학습, 자기계발

4) 존재, 의미 지능: "나는 왜 일하는가, 어디로 가는가?"에 관한 물음


AI는 지금 1번 지능을 대규모로 흡수하고 있다.

동시에 급격한 변화 속에서 사람들을 4번 지능의 위기로 내몰고 있다. 일은 빨라지고 많아졌는데 공허하다는 감각. 이게 지금 수많은 조직 구성원들이 느끼는 본질적 혼란이다.


이 시대가 원하는 인재는 결국, AI와 협력하면서 감성, 자기성장, 존재와 의미의 영역에서 인간 고유의 역할을 발휘하는 사람이다.

AI가 산업화 지능을 점유하는 비율이 커지는데, 여전히 그 영역에서 인간이 함께 다투려고 하면, 결과는 비극이다. 개인도 조직도 그렇다.


4. 역할이 바뀐다. 리더, 팔로워를 분류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껏 조직에서 대부분의 구성원은 팔로워였다. 리더가 비전을 제시하면 다수가 실행했다.

그런데 조직이 슬림해지면서 이제는 직급과 무관하게 모두가 리더처럼 사고해야 한다.

오늘날 요구되는 리더십은 과거와도 다르다. 변화가 느렸던 시대보다 훨씬 더 큰 주도성과 창의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 인재에게 필요한 역량은 정답을 실행하는 능력이 아니라,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 방향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이를 위해 다섯가지 역량이 필요하다.

탐험력, 질문력, 도감력, 판단력, 적응력.

(이에 대해서는 할말이 너무 많아서, 일단 항목만 제시)


5. 기업 구조, 체질 변화가 보내는 신호를 해석하자.

LLM 등장 이후 S&P 500 기업들의 데이터는 흥미롭다. 수익성은 오르는데, 인력 규모는 줄고 있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 기존 사업을 유지하면서 인력을 줄이는 효율화 경로.

둘, 사업 범위를 확장하되 더 채용 확대는 줄이면서도 더 많은 걸 하는 확장 경로.


지금 대부분의 기업은 전자에 머물고 있다. AI로 효율을 짜내는 것.

진짜 변곡점은 AX를 하면서도 인력이 유지되거나 늘어나는 기업이 등장할 때다.

AI로 새 시장을 열고, 새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 그때가 진짜 2단계 진입의 신호다. 카를로타 페레즈가 얘기한 전개 국면.

전개 국면을 바라보며 준비해야 한다.

개별 기업, 산업 협의체, 정부도 그리해야 한다.

안 그러면 점점 더 줄어드는 일자리를 놓고, 세대 간 갈등, 냉정히 말해서 전쟁만 일어난다.


6. 노사 협의의 맹점, 그리고 현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노사협의체에서 묻는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이걸 정해야 한다.

우리 회사는 AX를 통해 사업을 확장할 것인가, 효율화할 것인가. 그 방향에 따라 구성원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그 역할에 맞는 역량을 노사가 어떻게 함께 키울 것인가.


이게 정리되지 않으면 노사가 마주 앉아도 서로 할 말이 없다.

현장에서 솔직히 말하면, 더 안타까운 장면도 있다. 기업은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는데 구성원은 변화를 직시하지 않은 채 고용 보장만 요구하는 경우.

반대로 회사는 효율화에만 급급해 구성원이 새 역할을 배울 시간과 기회를 주지 않는 경우. 둘 다 지는 게임이다.


7. 결론

이 모든 게 "AI 도입하면 뭘 준비해야 하나요?"라는 질문 하나에 담겨 있다.

반갑고, 걱정되는 이유다.


지금 당장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먼저 우리가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부터 같이 정리해보자. 그게 시작이고, 사실 그게 제일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이런 요청을 받으면 한 가지를 먼저 부탁한다.

나와 만나기 전에 내 책 ‘두 번째 지능’을 읽고 오시라고.

1~2시간 자문이나 강연으로 해결될 이슈가 아니기 때문이다. 읽고 오신 분들과는 훨씬 깊은 데서 출발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잘 아는 것들이 있다. AI 기술의 흐름, 프롬프팅, 주요 AI 기업들의 동향. 그런데 정작 잘 모르는 것들이 있다. AI와 인간의 유사성과 차이점, AI를 잘 쓴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R&R이 어떻게 바뀌는지, 양극화는 왜 심화되는지, 노동 이슈의 본질은 무엇인지.

테이블에 앉기 전에, 먼저 이 질문들과 마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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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 / 인지과학자, 경희대 경영대학원 AI비즈니스전공 주임교수

연구실: 경희대(동대문구) 오비스홀 506호

이메일: saviour@khu.ac.kr

홈페이지: www.mindmover.gu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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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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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es24.com/Product/Goods/17420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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