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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싸인 May 25. 2017

[코싸인의 인지과학 이야기]
기억(4)

[기억 1주차 - 심리] 4. 기억의 내용 모형 (종류)

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기억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과정과 구조에 대한 세 가지 모형(애킨슨과 쉬프린 모형, 작업기억 모형, PDP 모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오늘은 저장되는 기억의 내용에 따라 구분한 기억의 종류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기억의 내용 모형                                            

우리의 기억을 저마다 다른 특징에 따라 분류해볼 수 있다  / 사진출처: http://unisci24.com/285623.html

정보처리적인 관점에 따르면 기억은 정보의 부호화, 저장, 인출을 포함하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이때 기억의 내용이 될 수 있는 것들은 굉장히 다양한데요, 어제 수업시간에 있었던 사건을 떠올리거나 시험을 위해 교과서를 암기하는 것, 자전거를 어떻게 타는지 알고 있는 것 모두 기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중 어떤 기억들은 말로 잘 설명할 수 있는 반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억도 존재합니다. 

실제 연구들에 의하면 우리가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 속에는 다양한 종류의 내용들이 상호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 메멘토의 모티프가 되었다고 알려진 환자 H.M의 경우 새로운 사건이나 경험에 대한 기억을 형성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험을 통해 특정한 종류의 기억을 형성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 밝혀져 있습니다. 이와 같은 증거들이 계속 발견됨에 따라 여러 종류의 기억 체계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심리학자들은 기억을 다양한 하위 체계들로 분류하기 시작했습니다.


툴빙의 중다 기억 체계 모형(Tulving's multiple-memory system model) 


툴빙의 중다기억체계 모형 / 원출처: Tulving(1985)


(1) 의미 기억과 일화 기억

엔델 툴빙(Endel Tulving)은 기억을 하위 체계로 분류하는 방식의 기틀을 닦은 심리학자입니다. 그는 처음에 기억을 의미 기억(semantic memory)과 일화 기억(episodic memory)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의미 기억(semantic memory)이란 일반적인 지식에 대한 기억을 의미합니다. 특정한 영어 단어,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적 사실, 유명인의 이름과 같은 정보를 기억하는 것이 대표적인 의미 기억입니다. 반면 일화 기억(episodic memory)은 개인적으로 경험한 사건에 대한 기억입니다. 단순한 사실정보를 저장하는 의미 기억과는 다르게 일화 기억은 자신의 경험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시공간적인 맥락이 함께 존재합니다. 주말에 친구들과 만나 놀았던 경험을 떠올리거나 어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것처럼 기억과 연관된 상황과 맥락이 함께 떠오르는 기억이 바로 일화 기억입니다. 의미 기억이 ‘사실(fact)’에 대한 기억이라면 일화 기억은 ‘사건(event)’에 대한 기억입니다. 


(2) 절차기억

자전거를 타는 법은 절차기억에 해당된다 / 사진출처 : Health Women

의미 기억과 일화 기억을 구분한 이후에 툴빙은 절차 기억(procedural memory)이라는 기억이 별도로 존재한다고 밝혀냈습니다. 절차 기억은 자전거를 타는 법이나 신발끈을 묶는 법과 같이 특정한 과제를 수행하는 일련의 순서에 대한 기억입니다. 자전거에 숙련된 사람이 자전거를 타는 법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타지 않듯, 절차기억은 의미 기억이나 일화 기억과는 달리 의식적인 노력이 없이도 인출될 수 있으며 자동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앞서 다뤘던 의미 기억이나 일화 기억은 그 구분이 유효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아직까지 존재하지만, 절차 기억은 나머지 두 기억에 비해 독립적으로 작동한다는 심리학과 신경과학적 증거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스콰이어의 중다 기억 체계 모형(Squire's multiple-memory system model)

 


스콰이어의 중다기억체계 모형 / 원 출처: Squire(2009)

(1) 서술 기억과 비서술 기억

    심리학자 래리 스콰이어(Larry Squire)는 툴빙의 기억 분류를 기초로 기억의 새로운 분류법을 제안하였습니다. 그는 우선 기억을 크게 서술 기억(declarative memory)비서술 기억(non-declarative memory)의 두 체계로 구분하였습니다. 서술 기억은 외현 기억(explicit memory)이라고도 불리는데, 의식적으로 접근이 가능하고 언어로 표현이 가능한 종류의 기억을 의미합니다. 툴빙이 이야기했던 의미 기억과 일화 기억이 서술 기억에 포함됩니다. 비서술 기억은 암묵 기억(implicit memory)이라고도 불리며, 외현 기억과는 달리 의식적인 접근이 불가능하고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종류의 기억을 의미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절차 기억이 대표적인 비서술 기억 중 하나입니다.

파블로프의 : 고전적 조건화 / 사진출처: 출처 : http://m.blog.naver.com/come2alex/220273187529

스콰이어는 절차적 기억 이외에도 점화, 조건화, 비연합적 기억들이 암묵 기억에 속한다고 보았습니다. 

점화란 이전에 경험한 정보가 그것과 관련된 개념이나 지각적 대상을 처리하는 것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점화를 통해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이 현재의 정보처리에 영향을 주더라도 이를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암묵 기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건화는 파블로프가 발견한 고전적 조건 형성을 의미합니다. 특정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무조건 자극과 아무 의미도 없는 중성 자극이 반복되어 제시되면 연합이 형성되고, 이후에는 조건화된 중성 자극(조건 자극)만 제시해도 무조건 자극과 관련된 반응이 발생하는 현상이 바로 고전적 조건화입니다. 이 경우 역시 의식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조건 자극에 대한 반응을 보이게 되므로 암묵 기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비연합적 기억은 둘 이상의 정보의 연합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반복되는 한 사건에 대한 기억을 의미합니다. 특정한 사건에 대해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그것에 대해 더 민감해지거나(민감화), 반대로 둔감해질 것입니다(둔감화). 이러한 현상은 의식적인 자각 없이 지각적인 수준에서 일어나는 학습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암묵 기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기억 체계에 대해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중다 기억 체계 모형에서의 기억 구분을 지지하는 연구결과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연구자들은 외현 기억은 대뇌피질에 저장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반면에 암묵 기억은 소뇌, 기저핵과 같은 피질하 구조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또한 환자 H.M.과 같이 해마와 측두엽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이 외현 기억의 형성에는 문제가 있었지만 암묵 기억의 형성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연구가 존재하는데, 이 결과들은 서로 독립적인 기억 요소들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지지합니다.        


해마가 손상된 H.M도 '거울에 비추어 별그리기'와 같은 암묵적인 절차기억 학습에는 이상이 없다 / 출처: (Milner, 1962)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제시했던 모든 종류의 기억들이 상호 독립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외현 기억과 암묵 기억은 비교적 구분이 뚜렷해 보이는 반면, 의미 기억과 일화 기억은 별개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존재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정보가 처음 저장될 때는 시간적 맥락을 포함한 일화 기억의 형태로 생생하게 저장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의미 기억의 형태로 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합니다. 뿐만 아니라 처음에 어떤 것을 배울 때는 외현 기억의 형태로 저장되었다가 반복을 통해 능숙해지면서 암묵 기억으로 변하는 듯한 현상들도 많이 관찰됩니다. 우리가 처음 자전거를 타거나 운전을 할 때에는 모든 동작에 일일이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만 하지만 능숙해진 후에는 의식할 필요 없이 거의 자동적으로도 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현 기억과 암묵 기억의 구분이 뚜렷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변화가 존재한다는 것은 각 기억 체계가 완전히 독립적인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기억 모형 이야기를 마치며 


기억을 하나의 큰 덩어리로 보기는 힘들 것 같다 /  사진출처 : http://blog.idongbu.com/677

 

총 4편의 글을 통해 기억의 다양한 모형들을 살펴보았는데요, 다양한 기억 모형들은 우리가 정보를 받아들일 때 단일한 하나의 기억으로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특성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저장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방식이 인지라는 인간의 정보처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기억은 우리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광범위한 정보처리 기제로서 심리학에서 다루는 가장 큰 연구 주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억은 일상생활과 밀접하고 중요한 의미를 갖는 만큼 지금도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던 기억 모형들을 단순히 이론으로만 받아들이기보다는 우리의 실제 생활과 관련지어서 각 모형이 우리 기억의 어떤 측면들을 잘 설명해주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코싸인 심리팀]


참고문헌

Milner, B.(1962). Physiologie de l'Hippocampe, Passouant, P., ed. (Paris: Cent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 pp. 257-272.

Squire, L. R.(2009). "Memory and Brain Systems: 1969-2009." The Journal of Neuroscience, 29, 12711-12716.

Tulving, E. (1985). How many memory systems are there?. American psychologist40(4), 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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