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팀 두번째
어떤 학문이든 그 학문의 정체성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법이지만, 인지과학은 여러 학문들 중에서도 정체성을 정의하기가 유독 쉽지 않은 학문이다. 사람의 마음과 관련된 과학, 인간과 인공물의 인지를 연구하는 학문, 여러 학문들이 융합된 학제적 분야 등 인지과학을 설명할 수 있는 말들은 굉장히 많다. 하지만 이러한 인지과학의 학술적인 정의나 특징 이외에도 인지과학은 내게 있어서 개인적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인지과학은 내게 있어 ‘거울’같은 학문이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인지과학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이는 중학생 때부터 가져왔던 심리학에 대한 관심 덕분이었다. 중학생 무렵 다른 사람의 심리적 고통을 덜어주는 상담에 관심이 생긴 이후로 심리학에 관심을 가져오고 있었는데, 이 관심은 무작정 심리학과 관련된 각종 서적들을 찾아 읽고 인터넷에 올라오는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심리학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었다. 인지과학의 기반을 이루는 핵심 학문 중 하나인 심리학은 인지과학이 광범위한 연구 주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사람과 관련된 무수히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었는데, 이런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는 점은 내가 심리학을 좋아하는 큰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니 심리학에서 그치지 않고 신경과학, 컴퓨터과학, 문화인류학 등 여러 학문들을 넘나드는 인지과학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인지과학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한국의 심리학과는 대부분 문과대학이나 사회과학대학에 소속되어 있었기에 나는 자연스레 입시를 위해 고등학교 2학년 때 이과가 아니라 문과를 선택했다. 그러나 나는 내심 이과에서 배우는 물리, 화학, 생물과 같은 과목들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는데, 문이과를 구분하는 제도로 인해 그런 과목들을 공부하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느꼈었다. 심지어 대부분의 학생을 문과에서 뽑는 심리학과에 진학하고 싶으면서 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혼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알게 된 인지과학은 내가 틀린 것이 아니라는 알려주는 반가운 존재였다. 내가 좋아하던 심리학은 물론이고 인문학,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에 속하는 여러 학문들을 넘나드는 학제적 학문의 존재는 내가 하던 고민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고, 바라던 것처럼 여러 학문들의 주제를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렇게 인지과학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나는 심리학의 하위분야 중에서도 인지과학과 특히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지심리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그 바람대로 대학에서 인지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이렇듯 인지과학은 고등학생 시절 내가 해왔던 고민들과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학문이기에 나는 인지과학적 주제를 접하게 될 때마다 당시의 내가 생각나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인지과학을 거울에 비유한 것은 인지과학이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할 뿐만 아니라 공부할 때마다 새로움이 느껴져서 내가 현재 가진 학문적인 관점을 보여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학문이든 배움에는 끝이 없지만, 여러 학문들이 얽혀있는 인지과학의 특성상 같은 주제라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새롭게 보일 수밖에 없다. 공부를 하다 보면 종종 이런 사실을 망각한 채 지금 내가 생각하고 바라보는 있는 것이 정답이라고 의기양양해지기 쉬운데, 인지과학의 학제적 접근은 그러한 생각이 착각일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예를 들자면, 기억이라는 한 주제에 대해서도 심리학적인 접근법으로만 바라보는 것과 그에 더하여 신경생물학적 지식을 더한 채 바라보는 것은 다르다. 여기에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나 인문학, 사회학적인 지식을 더 가진 채 다시 기억이라는 주제를 바라본다면 이전에 보지 못했던 부분을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거울이 지금 내 모습이 어떠한지 비추어주는 것처럼 인지과학은 똑같은 주제를 보더라도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관점이 어떠한지 생각해보게끔 한다.
인지과학 학회인 코싸인은 심리학, 생물학, 인문학, 사회과학, 공학, 디자인 등 인지과학과 관련된 여러 학문적인 대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의 관점과 생각을 나누는 학회이다. 내게 한 학기 동안의 학회활동은 인지과학이 가지는 학제적 특성과 다양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끔 해주는 좋은 기회였다. 기억과 인공지능이라는 큰 주제를 한 학기 동안 다루면서 심리학, 신경생물학, 인문/사회과학, 응용과학이 각 주제에 대해 어떤 접근법을 취하고 있으며 어떤 것들을 보여주는지 알 수 있었다. 전공인 심리학 이외에 나름대로 생물학, 컴퓨터과학, 철학 등의 인지과학을 이루는 다른 학문들을 배워보려고 노력은 했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는데 이렇게 주 전공이 다른 여러 사람들과 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경험은 내가 보지 못하던 것을 볼 수 있게끔 해주었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소통을 하는 경험은 매우 귀중한 것이지만 그런 기회를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상이한 전공의 사람들끼리 전문 지식에 대하여 의사소통을 실제로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코싸인은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첫 발을 내딛은 것 같다. 다양한 배경지식과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각자의 수요를 모두 충족시키는 것이 쉽지 않을 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성공적으로 한 학기를 마치고 계속해서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마 다들 열심히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학문을 포괄하는 학제적인 분야인 인지과학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특정한 학문의 경계를 벗어나 융합을 추구하는 것이 대세인 만큼 학회 활동을 하는 사람들 모두 코싸인을 통해 학문 간 교류와 융합에 관하여 많은 유익한 경험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학회를 통해 조금 더 깊이 있는 지식을 교류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학기가 첫 학기였기 때문에 세션에서 어느 정도 수준의 지식을 전달해야 할지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주제에 대하여 각 학문들이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개괄적으로 배울 수 있어서 충분히 좋았다.
다가오는 학기는 내게는 개인적으로 있어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학기가 될 것이다. 졸업을 앞두고 있기도 하고,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면서 앞으로 연구할 주제를 찾고 있기도 해서 굉장히 정신없지만 중요한 학기가 될 것이라 예상한다. 내가 소속된 학술팀에서는 개괄적인 지식을 전달했던 지난 학기와는 달리 이번에는 활동 방식을 바꾸어 직접 실험을 해보는 기회를 갖고 논문을 읽으면서 새로운 지식을 쌓는 방향으로 활동을 진행하기로 했다. 물론 이 와중에도 세션에 참가하여 다른 학회원들과 교류를 하는 것을 소홀히 하면 안 되겠지만, 논문을 읽고 실험을 해보면서 수업에서 해볼 수 없는 경험들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쉽지는 않겠지만 한 학기 동안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학회원들 모두 한 학기가 끝나고 돌아보았을 때 인지과학을 바라보는 관점이 좀 더 성숙해져 있도록 다들 유익한 한 학기를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코싸인 심리학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