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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싸인 Oct 18. 2017

[코싸인의 인지과학 이야기] 가상현실/증강현실(3)

[2주차 인문사회팀] 3. 인간의 현실인식과 인식론

    앞부분에서 저희는 가상현실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에 관해서 몇 가지 사례를 보여드렸습니다. 이번에는 그러한 가상현실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철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합니다. 


2-1. 인간의 현실인식


    먼저, ‘인간은 가상현실과 실제현실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만약 인간이 가상현실과 실제현실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미래에 다가올 가상현실(VR)은 인간이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 (가상현실 속에서 하던 행동, 생각들을 그대로 현실로 끌어와 실행하는 것) 들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이러한 부분에 대해 논의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림[1] 풍경 혹은 그림 [1} 

    위의 이미지를 보시면, 이미지 속에 있는 것이 풍경을 묘사한 그림인지, 아니면 실제 그 풍경인지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즉, 그것이 가상현실인지(그림), 실제현실(창문 밖의 실제 풍경)인지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우리의 미래에 등장할 가상현실(VR)은 우리를 이보다 더욱더 혼란시킬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3차원을 2차원에 옮겨놓은 그림으로도 우리가 헷갈릴 수 있는데, 미래에 다가올 가상현실(VR)은 2차원을 넘어 오감을 통해 우리에게 자극을 주는 것으로 현실과의 구분이 힘들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사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풍경인지 그림인지 모르겠는 네모난 프레임 주위로 그것이 캔버스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즉, 그것이 그림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흰색부분이 있는 것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실제로 가상현실(VR)과 실제현실의 구분은 우리가 가상현실에 들어간다는 인식만 있다면(예를 들어, 가상현실용 기기를 눈에 착용한다던지 등의 행위), 너무나도 쉽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우리가 알고 있는 가상현실과 실제현실의 구분 점, 예를 들어, 캔버스라는 것을 알려주는 흰색부분 그리고 가상현실임을 알려주는 고글에 대한 우리의 생각, 지식이 잘못된 것이라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의 지식, 즉, 가상현실과 실제현실을 구분할 수 있는 우리들의 지식이 없거나, 잘못되어 있다면(캔버스의 흰색부분을 통해서 그림과 실제풍경을 구분, 고글을 씀으로써 가상현실에 들어왔다는 것을 아는 것 등), 우리에게는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물론, 가까이 가서 만져보면 되고, 뭔가를 쓰고 있는지 눈을 만져보면 된다고 할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것들 또한 우리들의 지식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들입니다. 결국 우리는 현실에 대한 인식을 ‘지식’을 통해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의심되시는 분들은 지금 눈앞의 글자들을 아무 ‘지식 없이’ 바라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애초에 글자를 인식하는 것도 지식이 있기에 가능한 것 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지식’ 없이는 현실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현실인식의 바탕이 되는 지식이라는 것에 대해서 확실히 해야 가상현실과 실제현실에 대한 구분에 있어서 혼란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철학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지식에 대해서 의심해보고, 확실한 지식을 위한 방법론을 연구했던 ‘인식론’이라는 학문이 있습니다. 


2-2. 인식론


    앞서 말한 ‘인식론’이라는 철학자들의 학문을 통해서 인간의 지식, 그리고 그에 따른 인식을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그전에, 인식론에 대해서 대략적인 설명을 해드리고자 합니다. 인식론이란 지식의 기원, 구조, 범위, 방법 등에 대하여 탐구하는 학문으로서, 인간의 지식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인간은 어떤 영역까지 알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파악하는 데에는 어떤 방법들이 있는지에 관하여 탐구합니다.

    이러한 인식론은 중세시대 신중심의 세계관이 무너져가고, 그와 동시에 근대적인 사고, 과학적 세계관(자연과학적)이 서서히 뿌리내리기 시작하는 시기에 등장합니다. 이 때 인식론의 목적은 이러한 근대적인 사고(이성적 사고)가 믿을만한 것인지를 ‘검증’해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자연과학은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지식을 획득하고, 그러한 지식들을 바탕으로 학문을 정립해가는데, 이러한 그들의 방법이 제대로 된 것인가를 검증해보고자 한 것입니다. 이 때 이성적 사고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수학적 사고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수학에는 기본 원칙들이 존재하고, 그러한 몇 가지 기본원칙들을 토대로 새로운 원칙들을 만들어가고, 쌓아가는 것이 수학이라는 학문입니다. 이와 같이 ‘이성적사고=수학적사고’라고 보시면 이해하기 편합니다.     

    이제, 이러한 이성적 사고에 대해서 의심해보고, 검증해보고자한 철학자를 한명 소개해드리면서, 동시에 그러한 이성적 사고에 대해서 검증해보고자 합니다. 이러한 이성적 사고, 즉, 현재 우리가 따르고, 믿고 있는 이러한 이성적 사고가 검증이 된 것이라면 우리는 가상현실과 실제현실을 구분하는 데에 있어서 어떤 어려움도 느끼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데카르트와 방법론적 회의

    여기서는 이성적 사고에 대해서, 즉, 자연과학적 지식획득방법에 대해서 검증해보고자 했던 ‘르네 데카르트’라는 철학자(수학자, 물리학자이기도합니다)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데카르트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의심해본다음에 그중에서 가장 확실한, 자명한 진리를 찾은 뒤에 그것을 토대로 다시 지식의 체계를 쌓고자 했습니다(방법론적 회의), 하지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을 의심해본다는 것은 사실 죽을 때까지 해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기에 데카르트는 모든 지식의 토대가 되는 지식의 방법을 검증하기로 합니다. 만약 세상에 있는 지식을 얻는 방법이 잘못되어있다면, 자동적으로 그러한 방법으로 얻은 지식들은 잘못되었다는 것이 됩니다. 예를 들어, 눈이 안좋은 사람이 안경을 썼는데, 그 안경이 우리의 시각을 더욱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면,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맞다고 믿고 현실을 인식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현실인식, 즉, 제대로 된 지식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     


지식 : 정당화된 참된 믿음

    먼저, 데카르트는 우리가 사는,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세상이 꿈속의 세상일 수 있다고 의심해봅니다. 여기서 잠깐 인식론의 ‘지식’에 대한 정의를 설명해드리고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인식론에서는 지식을 ‘정당화된 참인 믿음’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지식이라는 것은 먼저, 우리의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하고, 실제로 그것이 참이어야 하고, 그것이 참이라는 것을 정당화시킬 수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내일 태양이 동쪽에서 뜰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지식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내일 태양이 동쪽에서 뜰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믿고 있고, 그것은 실제로 참입니다. 하지만 이때 아무것도 모르는 외계인이 우리에게 와서 그것을 어떻게 확신하느냐고 묻습니다. 외계인들은 우리에게 '오늘 태양이 동쪽에서 뜬 것은 내가 봐서 알지만, 그것은 우연히 그랬을 수도 있지 않은가?'라며 반박합니다.

    이 때 우리는 이러한 참인 믿음을 정당화할 수 있어야합니다. 이때 우리는 그들에게 몇쳔년의 세월동안 태양이 동쪽에서 떴다(경험적 지식) 그리고 우리는 내일도 그럴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귀납적 추론을 할 수 있습니다. 여태까지 그랬으니 내일도 그럴 확률이 매우 높고 그러므로, ‘태양은 동쪽에서 뜬다’ 라고 참인 믿음을 정당화하며 지식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매트릭스와 경험적 지식

    이러한 지식에 대한 정의를 바탕으로 데카르트가 먼저 의심해본 것은 경험적 지식입니다. 실제로 우리들은 대부분의 지식을 경험을 통해서 얻습니다. 이때의 경험은 보고, 듣고, 느끼는 오감을 통해서 얻는 지식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사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이세상이 우리들의 꿈속일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경험적 지식도 확실하지 않을 수 있다고 의심해보는 것입니다.

    이는 영화 ‘매트릭스’를 통해서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이 사실은 가상세계인 매트릭스이고, 실제세계는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실제세계는 인공지능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로, 인간의 뇌에 가상세계인 매트릭스에 대한 기억을 끊임없이 주입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주인공 네오와 사람들은 매트릭스가 실제 세계라고 믿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인 네오처럼 데카르트는 인간이 사실은 꿈을 꾸고 있는데, 그것이 현실이라고 믿고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다고 의심해봅니다.   

  

그렇다면 선험적 지식은 신뢰할 수 있는가?

    다음으로 데카르트는 선험적 지식(비경험적 지식)도 의심해봅니다. 여기서 선험적 지식이란 앞서 말한 이성적 사고를 통해서 얻은 지식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수학에서 ‘1+1=2’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알지는 않습니다. 이미 세상에는 수학에 대한 정의가 이루어져있고, 우리는 그 개념을 배우기만하면 알 수 있습니다. 즉, 1+1=2 라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우리는 경험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데카르트는 사실, 이러한 이성적 사고를 통해서 얻은 지식도 신이 우리들의 ‘이성’에 장난을 쳤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확신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합니다. 신이 우리들을 만들 때 이러한 이성적 사고를 하도록 만들었지만, 사실 이러한 이성적 사고는 신이 장난을 친 것일 뿐 제대로 된 사고가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신의 장난이라면, 우리들은 내일 해가 동쪽에서 뜰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합니다. 단지 내일 해가 정말로 동쪽에서 뜨는 것을 봐야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성적 사고가 잘못된 것이라면, 우리는 어떤 학문도 할 수 없습니다. 모든 학문은 이성적 사고를 토대로 쌓아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렇게 데카르트는 현대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 어떻게 보면 쓸데없는 것들에 대해서 계속해서 의심해봅니다. 그러한 계속된 의심의 결과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얻어냅니다.

    모든 것을 의심해본 결과, 지금 여기서 이러한 의심을 하는, 그러한 생각을 하는 나라는 존재의 정당성은 확실하다고 본 것입니다. 쉽게 말해, 아무리 모든 것을 의심해 봐도, 지금 이러한 의심을 하고 있는 이 순간에 나라는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못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꿈속이든, 신의 장난에 따른 것이든 생각하는 동안에 우리의 존재는 확실히 입증된다고 본 것입니다.

    이렇게 데카르트는 인간을 사유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으로 만듭니다. 신에 의해서 모든 것이 결정되던 중세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서 이제 인간은 스스로 사유하는 주체적인 인간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데카르트는 다시 지식을 쌓아가자고 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데카르트는 이전에 인간의 이성이(사유) 신에 의한 장난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데카르트는 다시 한번 신을 끌어오는 한계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신이 우리들의 이성에 장난을 치지 않았다고 하며, 우리들의 이성에 확실성을 부여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데카르트는 인간을 이성을 통해서 사유하는 존재로서 확고히 하고, 이것을 토대로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세계관을 만들어갑니다. 이에 따라 인간의 이성, 합리성은 진리를 탐구하는 데에 있어서, 즉, 지식을 얻는 데에 있어서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서의 권위를 차지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인간의 현실인식에 대한 확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우리는 이제 가상현실과 실제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영화 매트릭스 같은 일은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인식론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인식론은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현대에 와서는 우리가 믿는 지식이 사실은 우연에 의한 것이라는 의심을 합니다. 따라서 정당화 방법에 경험적 방법, 이성적 방법 외에도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시계가 항상 9시에 제대로 9시를 가리키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9시에 시계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시계는 항상 9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시계가 9시를 가리킨 채 고장 나고 맙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모른 채 매일 9시에 그 시계를 확인하고 시계가 9시를 제대로 가리킨다고 확신을 한 채 살아갑니다. 현대 인식론은 이러한 가능성을 의심해봅니다. [코싸인 인문사회팀]


출처

[1] 네이버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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