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싸인 Dec 05. 2017

[코싸인의 인지과학 이야기] 감각과 지각(2)

[7주차 인문사회팀] 2. 데카르트, 지식의 토대를 점검하다

지식의 토대를 점검해 봅시다


    건물을 지을 때 그 건물의 토대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완성된 건물의 외관이 멋있어도 그 건물은 무너질 위험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학문에 있어서 혹은 지식에 있어서 확고한 진리를 세우고자 한다면, 그러한 지식과 학문을 위한 최초의 토대에서부터 다시 점검해 봐야 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그러한 작업들을 해보고자 합니다.


감각은 믿을 수 있을까?

[그림 1] 감각의 종류 [1]

    먼저, 우리들의 감각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사실, 우리들은 대부분의 지식을 감각을 통해서 얻는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우리는 오감을 사용해서 다양한 자극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식을 쌓아 갑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감각이 믿을만한 지식의 토대가 될 수 있을까요?


[그림 2] <인셉션>에 등장하는 팽이 [2]

    영화 인셉션을 보셨나요? 영화 인셉션의 마지막 장면에는 주인공이 자기가 있는 곳이 현실 속인 지, 꿈속인지를 알기 위해 팽이를 돌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팽이가 멈추면 꿈이 아니고, 계속 돌면 꿈인 건데 영화에서 그 팽이는 멈출 듯이, 멈추지 않고 끝나게 됩니다. 이런 것처럼 만약 저희의 현재 삶이 꿈속이라면 어떻게 할까요?

    우리가 꿈을 꿀 때 그것이 꿈인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사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해 보면 우리가 감각하는 대상들은 모두 허상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각을 통해서 얻은 지식들 또한 믿을 수 없게 되겠죠. 영화 속 주인공처럼 팽이를 돌려서 꿈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영화 속 팽이와 같은 도구, 즉 꿈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감각도 지식의 토대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성은 믿을 수 있을까?


    다음으로 감각적으로, 경험적으로 얻어지는 지식이 아닌 이성을 통해서 얻어지는 수학, 기하학과 같은 경험을 떠나서 존재하는 지식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여기서 1+1=2라는 것을 의심할 사람이 있나요? 이런 것처럼 우리는 수학적인, 기하학적인 공리들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림 3] 악마가 존재한다면? [3]

    하지만 만약에 세상에 악마가 존재한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래서 우리들로 하여금 태어나면서부터 1+1=2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면 어떨까요? 애초에 1+1=2가 아닌데 말입니다. 또한 수학에서는 몇 가지 법칙들을 바탕으로 연역적인 방법을 통해서 수학 체계를 쌓아 가잖아요. 그러한 수학적 방법론조차 거짓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성도 지식의 토대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데카르트,“의심 불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상에 확실한 지식의 토대는 없는 걸까요? 감각도 믿을 수 없고, 이성도 믿을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지식을 쌓아갈 수 있고, 그러한 지식은 어떤 근거로 믿을 수 있을까요? 데카르트는 지식의 확실한 토대를 찾고자 모든 것을 의심해보고 결과적으로 알게 된 것은 “의심 불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주장합니다. 즉, 우리가 100% 확실한 지식을 쌓을 수 없다는 것만 알게 된 것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림 3] 르네 데카르트 [3]

    지금까지 우리는 모든 것이 내가 꿈을 꾸는 것일 수 있고, 악마가 나를 속이고 있을 수 있다고 의심해봤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꿈을 꾸고 있든, 악마가 속이고 있든, 꿈을 꾸는, 속임을 당하는, 의심을 하는 ‘나’라는 주체가 존재해야 가능하지 않을까요? 결과적으로 나라는 존재는 생각하는 동안에는 확실히 존재하지 않을까요?

[그림 5] <메멘토>의 포스터 [5]

    영화 메멘토에서는 어떤 일이 발생해도 그 기억을 유지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잊어버리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이 나옵니다. 영화 내내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록들, 주변 사람들의 얘기들 모든 것이 확실하게 믿을 수가 없어 답답할 만큼 뭐가 진실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몸에 있는 기록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모두가 거짓이라고 해도, 믿을 수 없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그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생각을 하는, 의심을 하는 주인공의 존재 자체만큼은 의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도출해 냈습니다. 이 명제는 의심 불가능한 확고한 토대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데카르트가 저런 명제를 만들기 전까지 인간은 신에 의해서 존재하던 존재였습니다. 중세 때만 해도 신이라는 부모님 품에서 살다가 중세에서 벗어나면서 인간은 사유하는 주체, 즉 주체적인 인간이 된 것입니다. 즉 이제 신의 뜻에 맞춰서 살지 않고 인간만의 진리로 살아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자아의 존재의 증명이 인식론적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러한 자아의 존재의 증명이 우리의 인식론적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요? 우리의 인식론적 고민은 우리가 외부 대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의 문제였습니다. 즉 우리가 외부 대상을 왜곡시키지 않고 그 본질을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는데 사실 데카르트의 이러한 토대는 오히려 그러한 문제를 더욱 확고히 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아 보입니다.

    세상에 대한 지식을 엄밀한 토대 위에 쌓고자 모든 것을 회의해본 뒤 얻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결국 우리를 세상과는 관련 없는 저희들의 사유 속에 갇히게 한 것입니다. 이는 외부 대상과 우리들 사유의 일치 여부는 상관없이 우리들 사유만 인정하는 관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들의 인식은 외부 대상에 상관없이 우리들의 자아 속에 갇힌, 밀폐된 자아가 되는 것입니다.


데카르트, 신의 존재를 증명하다


    이러한 인식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신’의 존재를 증명해 보면 어떨까요?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면, 악마의 가설도 해결이 될 테고, 신이 저희들의 인식을 보증해줄 것입니다. 먼저, 생각해보면 우리들에게는 신에 대한 관념, 생각들이 존재합니다. 근데 신은 완전한 존재이고, 인간은 완전하지 않은 존재인데 어떻게 완전하지 않은 인간이 완전한 신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을까요? 불완전한 것에서는 완전한 게 나올 수없습니다. 따라서 불완전한 우리가 완전한 존재에 대한 관념을 가지려면 그 완전한 존재, 즉 신이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림 6] 신은 존재하는가 [6]

    이렇게 데카르트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고, 결국 이러한 신의 존재가 우리들이 고민해오던 인식 대상과 인식 주체 사이의 괴리를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즉 우리는 이제 자아를 가진 존재이며, 그러한 우리들의 사유는 우리만의 밀폐된 사유가 아니라, 실제 세상과 일치하는 사유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이제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서 세상에 대한 진리를 쌓아가면 되는 것이 됩니다. [코싸인 인문사회팀]


참고문헌

[1] Depositphotos

[2] 송원섭. 인셉션, 9가지 궁금증에 대한 심층 해설

[3] Why Wealth is Wrong: The MathematicalArgument

[4] 위키백과

[5] TV Tropes

[6] 광속을 측정한 과학자들. 네이버 블로그





작가의 이전글 [코싸인의 인지과학 이야기] 감각과 지각(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