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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싸인 Apr 09. 2018

[코싸인의 인지과학 이야기]
아름다움(1)

[1그룹] 아름다움과 예술, 그리고 미학

우리는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합니다. 아름다운 노래를 듣는 것,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 매일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공들여 애쓰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떻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걸까요?  


아름다움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예술입니다만, 사람들이 처음부터 ‘예술=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어떻게 예술이 아름다운 것으로 인식되었는지, 그리고 미학은 아름다움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져왔었는지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석기와 신석기 


아름다움이 논의되어왔던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예술의 역사를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조금 더 간단히 살펴보기 위해 시각예술, 그중에서도 회화에 한정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주 먼 옛날 구석기시대의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사냥과 채집에 힘을 써야 했습니다. 자신의 사냥 노하우를 자세히 알려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이 때문에 구석기시대의 동굴 벽화들은 ‘재현(representation)’을 기본 원리로 삼고 있습니다. 


[그림 1] 구석기 라스코 동굴 벽화(좌), 신석기 Huashan 벽화(우) [1]


반면, 신석기시대의 인류는 처음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농사를 위해 필요한 시간과 계절의 흐름 및 특징과 같은 추상적 사고가 필요해졌고, 가변적인 것을 버리고 본질적인 것을 추출해내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이런 양상은 회화에서도 나타나게 되는 데요,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본질과 이념을 묘사하는 기하학적 양식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자연재해 등을 경험하게 되면서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원시 신앙도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양식은 이후 이집트 미술, 그리고 그리스 초기의 미술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리스 및 중세, 그리고 미의 역사 


기원전 4~5세기경, 그리스는 그 유명한 마라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이후 자신감이 붙은 그리스는 그림에서도 자신만의 고유한 양식을 발전시켜 나가게 되는데요, 하나의 사물에 적용되는 원근법인 ‘단축법’을 사용하거나 인간의 세부 근육을 자세히 묘사하는 등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그리는 그리스적 자연주의를 실현하게 됩니다. 또한 예술의 소재로는 신이나 신전, 영웅 등을 주제로 삼았는데 여기서 신은 완전하고 아름답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비례, 균형, 조화 등의 성질이 그러한 완전성을 감각적인 형태로 구현한 것이라고 믿으며 이를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등장한 중세시대의 예술에 있어서는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한 것이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인정된 후 그림은 종교를 알리기 위한 성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예술가들은 성서학자의 해석 방향에 따라 신을 상징하는 알레고리적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이는 자연스럽게도 다시 그림에 있어서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양식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중세 양식은 후기로 갈수록 점차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합니다. 바로 자연과학이 등장하게 되면서 ‘관찰’의 중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미술은 르네상스에 이르게 되어서는 이전의 그리스 예술과 양식적으로 동일한 자연주의 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관찰이 중요해지고 자기 눈으로 본 것을 그대로 그리게 되면서 르네상스 미술가들은 자기 작업에 대한 자의식을 갖게 되는데요, 이는 아름다움을 더 이상 신과 같은 것이 아닌, 우리가 보는 것에서 찾고 싶어 하는 결과를 낳았고, 결국 이는 이제까지 분리해서 이야기했던, 예술과 미의 연관성을 가져오게 됩니다.


미학의 시작


이전의 철학자들이 존재론에 관심을 가졌다면 자연과학이 발달하고 개인의 주체성이 확립되었던 근대의 철학자들은 ‘나는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와 같은 인식론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라이프니츠-볼프 학파는 인간의 정신 능력을 지성(논리), 의지(윤리), 감성의 세 가지로 정리했는데, 이 중 감성은 주관적이고 변덕스럽기 때문에 철학적으로 다룰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바움가르텐은 감성을 통해서도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처음으로 감성적인 인식이 어떻게 가능하며,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견을 주장했습니다. 미학이라는 학문이 본격적으로 다뤄지게 된 것입니다.


합리론적 미학 


바움가르텐은 보편적이고 개념적인 것을 파악하는 지성에 의한 인식과는 달리, 감성을 통해서는 대상의 개별적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성적 인식의 완전성은 결국 ‘미’에 도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인식이 옳은지에 대한 기준을 선천적 능력인 이성에서 구하려 했던 관점을 합리론적 미학이라고 부릅니다.



[그림 2] <성 바울의 개종>, 카라바조 [2]


이 그림은 바로크 시대에 그려진 카라바조의 <성 바울의 개종>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바로크 그림을 보았을 때, 비례나 조화 등의 원리와 맞지 않는데도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를 궁금해했고 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합리론적 미학자들은 이 ‘알 수 없는 무언가’란 감성을 통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합리론적 미학은 처음으로 감성적인 것에 대해 논의했다는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감성적인 인식을 계속해서 지성적인 인식과의 유비관계속에서 설명하려고 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감성만의 독자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경험론적 미학


반면, 합리론적 미학과는 다른, 경험론적 미학의 입장을 취한 학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인간의 모든 관념은 경험을 통해 생성되고, 여기서의 경험은 감각적인 지각을 통해 생성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인식이 옳은 지의 여부는 직접적인 경험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경험론적 미학을 ‘취미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여기서 취미는 ‘좋아함’을 의미합니다. ‘좋아함’이란 내적인 감각이고, 주관적인 느낌이기 때문에 좋아함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은 더 이상 객관적인 성질이 아니게 됩니다.


물론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는 주관적인 느낌이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분명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대상이 있기 마련입니다. 경험론적 미학에서는 이를 예민한 사람들을 골라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워하는 것을 귀납적으로 관찰하여 정의하는 식의 해결법을 제시했습니다.


경험론적 미학은 지성으로부터 감성을 독립시켜 아름다움의 독자성을 인정했다는 데 의의를 갖지만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미를 판단하는 데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칸트 미학


[그림 3] 임마누엘 칸트 [3]


칸트가 제시한 미학의 내용은 흔히 근대 미학의 완성이라고 일컬어집니다. 칸트 역시 경험론적 미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미의 판단을 취미 판단이라고 불렀습니다. 칸트가 취미 판단을 이야기하면서 비교했던 다른 판단들이 있는데요,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쾌적 판단(This is pleasant):

감각기관으로부터 감각적 쾌를 산출 [관심적, 보편성(X)] 

2. 도덕 판단(This is good):

선함, 유용성에 대한 판단에서 지성적 쾌를 산출 [관심적, 보편성(O)] 

3. 취미 판단(This is beautiful):

일체의 관심이나 이해관계없이 무관심적으로 대상의 형식을 관조할 때 쾌를 산출 [무관심적, 보편성(O)] 


쾌적 판단과 취미 판단이 비슷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는데요, 쾌적 판단은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예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이는 갈증 해소라는 목적을 가진 행위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시원함이라는 이익을 주죠. 하지만 혹자에게는 맥주의 탄산이 불쾌하고 불편한 느낌일 수도 있습니다. 즉 맥주의 시원함은 보편적인 가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취미 판단은 이러한 쾌적 판단과 조금 다른 데요, 나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없는, 무관심적인 상황에서 대상을 바라볼 때 하는 판단이 바로 취미 판단입니다. 그렇다면 칸트는 경험론자들이 설명하지 못한 미의 보편적 성질을 어떻게 이야기했을까요?


칸트는 취미 판단에 있어서 순전한 감각에만 의존하는 것을 부정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대상을 인식할 때는 공통적이고 선천적인 형식의 틀이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이를 ‘공통감’이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감성으로 인식한 데이터를 모아서 지성이 그것을 판단하게 하는 능력을 구상력(imagination)이라고 일컬었습니다. 그래서 구상력과 오감이 자유롭게 오가는 와중에 합치하는 지점에서 취미 판단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취미 판단의 독자성과 객관성을 동시에 확보했던 의견인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칸트는 어떤 대상들이 우리로 하여금 아름답다고 느끼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요, 그는 ‘주관적인 합목적성의 형식’을 띈 대상이 아름답다고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어떤 대상을 볼 때, 마치 누군가가 목적을 가지고 만든 것처럼 생각되면 아름답다고 느낀다는 의미입니다. 이전까지의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이란 비례, 조화 등 신을 표현할 수 있는 완전한 것이라고 여겨왔던 반면, 칸트가 이야기한 아름다운 것은 이러한 완전성과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칸트 미학이 갖는 현대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우리가 대상이 만들어진 목적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를 때, 그렇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만들어진 것처럼 생각될 때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예술에 적용시킨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술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우리가 예술가의 제작 의도를 몰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결국, 아름다운 예술은 규정적이지 않고 독창적 이어야만 하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규정할 수 없는 것을 만들어낸 예술가만이 진정한 예술가라는 ‘천재’의 개념이 이후 낭만주의 예술가들 사이에서 유행하게 됩니다.


참고문헌

연세대학교 최연희 교수님 디자인미학 강의


출처

[1] http://truthofmoment.tistory.com/entry/http://www.visitaroundchina.com/News/1270.shtml

[2] https://en.wikipedia.org/wiki/The_Conversion_of_Saint_Paul_(Caravaggio)

[3] https://brunch.co.kr/@bookfit/1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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