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선택과 아름다움
영국의 시인 엘프리드 테니슨은 자연을 Red in claws and teeth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자연에서 생명체들은 다른 개체들과 끊임없고 무자비한 생존경쟁을 이겨내야 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어구입니다. 하지만 생명체는 자연선택을 위한 투쟁을 벌이는 동시에, 성선택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낭만과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벌입니다. 암컷의 생식세포가 수가 제한되었고 수정란을 위해 많은 에너지를 품고 있는 난자이며, 수컷의 생식세포는 무한히 생산할 수 있으며 수컷의 DNA를 전달하는 목적만을 지닌 정자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후손을 위해서 암컷이 수컷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렇기에 성선택의 주체는 암컷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수컷은 암컷에게 선택되기 위해 더욱 아름답게 보이려고 노력합니다. 그 경우에만 암컷에게 선택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왜 아름다운 수컷을 암컷이 선택하는 걸까요? 그리고 무엇이 수컷을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일까요?
암컷이 아름다운 수컷을 선택했다고 생각합시다. 그렇다면 암컷과 아름다운 수컷 사이에서 자손이 태어날 것입니다. 만일 그 자손이 수컷이라면, 아름다운 아버지 수컷과 유전적으로 50%가 동일한 개체가 됩니다. 그렇기에 아름다운 형질들이 발현되기가 아버지 수컷이 못생긴 경우와 비교해서 더욱 쉬울 것입니다. 이를 통해 이 아들 개체도 다른 암컷에게 선택되기 쉬울 것이며 이는 맨 처음, 아름다운 수컷을 선택한 암컷에게 있어 자손이 융성한 번식을 할 수 있으므로 자신의 유전적 이득을 크게 하는 효과를 낳습니다. 이상의 이유에서 암컷은 아름다운 수컷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 일련의 과정은 성선택의 핵심이 ‘아름다움’ 임을 재차 강조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수컷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기준이 되는 것일까요?
수컷 공작새의 지나치게 크고 화려한 꼬리, 엘크의 지나칠 정도로 거대한 뿔, 일부 민물고기의 혼인색은 모두 생존에 유리한 형질들이 아니라 생존에 불리한 형질입니다. 이러한 생명체들은 생존에 불리한 특징을 지님에도 어째서 Red in claws and teeth에서 살아남았을까요? 아니 더 정확한 표현으로 어떻게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게 남길 수 있었을까요?
이는 생존에 불리한 형질을 가지고 있음에도, 생존했다는 것 자체가 겉으론 드러나지 않는 생존에 유리한 형질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수컷 공작새의 길고 화려한 꼬리는 자신이 불리한 형질을 극복할만한 더욱 훌륭한 형질들 예컨대 뛰어난 다리 근육 혹은 잘 발달된 신경전달 시스템이 있음을 증명합니다. 또 거꾸로 꼬리가 없는 수컷 공작새를 생각한다면, 꼬리가 없는 것은 분명히 자신의 신체능력이 부족함을 나타내는 지표로 쓰일 수 있습니다. 특정 비타민의 결핍이나 좋지 못한 청각으로 인해 포식자에게 거의 잡힐뻔함 등의 이유로 꼬리가 짧은 것이죠.
그렇기에 공작새의 길고 화려한 꼬리 같은 생존에 불리한 형질은 자신의 생존능력이 다른 개체보다 우월함을 나타내는 지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아름다움의 기준 중 하나를 ‘우월한 생존능력’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남자는 좋아하는 여성을 위해 선물을 정성스럽게 포장해 전해주고, 어떤 남자는 좋아하는 여성을 위해 집을 선물해줍니다. 이 이야기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각각 GIFT-GIVING DANCE FLY와 가시고기의 이야기입니다. 수컷 GIFT-GIVING DANCE FLY은 암컷에게 먹이를 포장해서 선물로 줍니다. 암컷은 이 포장을 바탕으로 마음에 드는 수컷을 고릅니다. 또 수컷 가시고기는 정성스럽게 집을 짓고, 암컷 가시고기는 마음에 드는 집을 선택합니다. 암컷이 마음에 드는 집을 선택한다는 뜻은 결국엔 새끼들을 튼튼하고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수컷은 암컷과 자식들을 위해 본인의 자원을 활용한 일종의 창작물을 만듭니다. 그렇기에 암컷이 궁극적으로 수컷의 창작물로부터 느낀 아름다움은 ‘수컷이 자식에게 기여한 수컷의 자원’이 됩니다. 다시 말해 암컷은 수컷이 암컷과 자손에게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바탕으로 성적인 호감을 느끼고, 이는 아름다움의 기준이 됩니다.
보르네오 섬에는 오랑우탄이 살고 있습니다. 오랑우탄은 무리 생활을 하며, 이 무리의 대장 수컷을 Alpha male이라고 부릅니다. Alpha male의 그룹에서, 암컷은 구성원으로 계속해서 받아들이지만 수컷 새끼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무리에서 내쫓습니다. 이러한 생활방식은 수컷이 자신의 힘을 증명하여 암컷을 독점하는 형식으로서 Alpha male의 DNA에 큰 이득을 가져다줍니다. 그런데 영리하고 작은 오랑우탄들은 해변가에서 조개껍데기, 소라고둥 등의 물건을 모아다가 alpha male이 없는 틈을 타 암컷에게 전해줍니다. 암컷이 이를 마음에 든다면 두 개체는 교미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실제로 연구자들이 오랑우탄 무리에서 새끼의 DNA를 조사한 결과, 새끼들의 DNA 중 싸움을 잘하고 덩치 큰 alpha male의 DNA가 절반, 영리하고 작은 오랑우탄의 DNA가 절반을 차지함을 알아냅니다. 즉, 분명히 영장류에서 만큼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신체적인 특징과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이 성 선택에 기여함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 현생 인류는 250만 년 전 ~ 10만 년 전 사이에서 뇌용량이 3배 가까이 커졌음에도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는 손도끼로 거의 변하지 않음이 있습니다. 즉 이는, 뇌용량의 진화와 도구의 진화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은 뇌용량이 꼭 생존에 직결된 능력에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성선택에 사용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사례가 됩니다.
정리하자면 자연에서 암컷이 수컷에게 느끼는 아름다움은 ‘우월한 생존능력’과 ‘자손에 대한 투자’입니다. 허나 영장류에서는 오랑우탄과 뇌용량과 도구의 진화 간극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두 가지 아름다움 이외의 다른 아름다움이 성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렇기에 그 아름다움의 기준이 현재의 우리에게도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모나리자를 보고 감탄을 내뱉게 만드는 DNA가 옛날 옛적 손도끼 대신 호모 에렉투스의 머리카락을 다듬게 만드는 DNA와 동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위키피디아 –sexual selection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 포스트 드 발(2017)
Self-recognition in an Asian elephant – Joshua M. Plotnik, Frans B. M. de Waal and Diana Reiss, PNAS November 7, 2006
이기적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슨(2010)
SEXUAL SELECTION IN THE GIFT-GIVING DANCE FLY, RHAMPHOMYIA SULCATA, FAVORS SMALL MALES CARRYING SMALL GIFTS LeBas NR, Hockham LR, Ritchie MG, August 2004
[1] http://michelelersch.com/what-is-beauty/
[3] http://koc.chunjae.co.kr/Dic/dicDetail.do?idx=17875&divNo=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