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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젠 독일

떠나는 준비, 헤어지는 연습

아들 곁을 떠나면서

by 수평선

두 달이라는 시간이 꽤 긴 줄 알았다.

그래서 첫 한 달은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본에 있는 딸 집에서 일주일, 아헨의 아들 집에서 일주일...

가까운 거리도 아니지만 그리 먼 거리도 아니라 딸과 아들 집에 일주일씩 머물면서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아들 집에서 마지막 일주일을 보내고 나니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기 열흘 전. 이틀 후면 아들과 헤어지고 딸 집에서 일주일을 머무르다 한국으로 돌아간다.

아들이 학교 가고 나면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청소를 한다. 원룸의 작은 방을 청소해봤자 30분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떠나고 나면 아들이 혼자 지내야 하는 곳이기에 더욱 정성스레 청소를 한다. 좁은 공간에 가구들이 모여있어 구석구석 손길이 닿지 않은 부분이 많다. 빗자루로 쓸고,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로 닦고 나면 찬 바람이 불어오는데도 불구하고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다. 찬장과 냉장고를 열어 꺼내 쓰기 편하게 다시 정리를 해놓고 양념통에 각종 양념들을 채워 넣는다. 파를 썰어 냉동실에 얼려놓고 양파와 감자는 잘 다듬어 비닐팩에 넣어 놓는다.
배추 두 포기 사서 통마다 김치를 채워 넣는다.

아직 떠나려면 이틀을 더 지내야 하는데 미련이 남을 부분을 자꾸만 들추어낸다.
괜스레 담요도 빨아 놓고, 화장실 변기와 샤워실도 청소를 한다. 막상 떠나려고 하니 해야 할 일이 쌓여만 간다.

잊고 가는 부분이 없기 위하여, 미련을 남길 일이 없기 위하여, 한동안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도록 연구하고 또 연구를 한다.


이제 떠날 준비는 된 것 같다.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아들의 몫으로 남겨 놓아야지.

하지만 아직 헤어질 준비를 못했다. 떠날 준비는 서둘러했다지만 헤어질 준비는 언제부터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왈칵 눈물이 앞선다. 그동안 많이 헤어졌었지만 또다시 헤어지려니 가슴이 저려온다. 아들의 눈동자를 들여다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괜찮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괜찮지가 않다.


헤어짐이라는 단어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울지 않을 용기, 울더라도 참아낼 용기, 가슴 먹먹함을 이겨 낼 용기가 필요하다.


오늘 밤부터는 용기를 불러야겠다. 마음부터 단단해지도록 강한 용기를 부르는 연습을 하리라.

아들이 돌아오기 전에 눈물부터 닦아야겠다. 연약한 엄마의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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